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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 클라라 Mar 16. 2023

더 이상 무거운 것을 올리지 않아서 좋다

늙어보니 좋다


드라마에서 극 중 백수인 한 청년이 김혜자 씨에게 묻는다, ‘할머니, 늙어서 좋은 거 한 가지라도 있어요?’ 김혜자 씨는 ‘있다’라고 대답한다. 놀란 청년은 (절대로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진 표정으로 물었었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 김혜자 씨는 ‘나는 니들이 불쌍해. 니들은 뭐라도 해야만 하잖아. 직업도 꼭 구해야 하고. 늙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아무도 뭐라고 안 해. ’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이런 내용으로 말했다) 맞다!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나 자신도 남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아니 뭐라도 하려고 하면 이제 남들은 뭐라고 한다.

      

만약 드라마 속의 그 청년이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무언가 더 얹으려고 죽을힘을 다하지 않아도 돼. 그게 좋아’라고 대답하겠다.


몇 번에 걸쳐서 피트니스 센터를 다니며 PT를 받아본 적이 있다. 근력운동은 옳은 자세로 하지 않으면 안 하느니만 못하고, 제대로 근력에 자극을 주지 않으면 시간낭비라고 한다. 코치가 꼭 필요한 이유란다.


그러나 코치마다 옳은 자세에 대한 정의가 달라서 코치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그들은 나의 운동 자세가 잘못되었다면서 많은 것을 고치려고 들었다. 공통점도 있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면 내가 견딜 수 있는 무게에서 그들은 1~ 2 개를 더 얹었고, 스쾃를 할 때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10개를 더 시켰다. 불타오르는 온몸의 근육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오면 그날 하루는 꼬박 몸살을 앓았다. 계속 횟수와 무게를 늘려나가야 하는 이런 상황을 견딜 동기도 의지도 없었던 나는  2~ 3 개월 안에 낙오되었고 당연히 몸의 근육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달리기한 지 한 달 후부터 근력운동도 시작했다. 이번에는 달리기가 주가 되고 근력운동은 잘 달리기 위한 보조 역할로 한정 지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홈트레이닝이 유행하면서 그것에 대한 정보가 온라인상에 넘치도록 많다. 유튜브를 통해 몇 가지 동작을 익혔다. (내비 없이 운전하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듯이 유튜브 없어 늙는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다. 유튜브는 나의 스승이다)


물론 유튜브에는 가짜인 엉터리 선생이 많다. 진짜이고 좋은 선생님이라도 같은 이론을 다른 동작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많다. 나에게 맞는 진짜 선생님을 찾아내는 것이 학생인 나의 역량이다. 시간만 조금 들이면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운동 목적에 맞는 몇 가지 동영상을 찾아 내 마음에 들면 잠깐 따라 해 본다. 내 몸에 무리가 없고 효과가 있겠다 싶으면 동일한 이론을 주장하는 다른 유투버들의 영상을 몇 개 더 찾아본다. 여러 사람들이 공통되게 인정하는 바른 동작을 익힌 후에 나의 운동프로그램에 포함시킨다.

      

여담이지만, 유튜브의 수익 구조에 대한 이해가 없는 나는 유튜브가 무한정 베풀어주는 이 무상 교육 서비스가 고맙고 황송하다. 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10~ 15년 이내로 현존하는 70% 정도의 사람의 일자리를 AI가 대신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AI가 대체할 수 없어서 그때에도 살아남을 10대 직업 중에 하나가 피트니스 강사라고 한다.


이 예측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나의 두 딸들은 피트니스 센터를 다니며 주기적으로 PT를 받고 있다. 본인들 비용으로 건강해지는 운동을 하는 것이니 적극 환영하지만 그 레슨비는 내 기준으로는 비싼 것을 넘어서 폭리라고 까지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 실력 있고 유명한 강사들이 유튜브 채널을 열고 열과 성을 다해서 좋은 운동 프로그램들을 하루가 멀다고 업데이트해서 소개해서 무료로 강의를 해주고 있으니 이런 횡재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딸들은 유튜브를 보면서 혼자 동작을 따라 하는 엄마를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관찰하다가 잔소리를 한다. pt를 받게 되면 강사는 원하는 부위의 근육들이 제대로 형성되도록 하나하나 연구해 가면서 동작을 가르치고 잘못된 자세를 교정해 주지만, 유튜브에서 보이는 데로 혼자서 따라 하다가는 엉뚱한 근육만 키운다는 이유에서다. 강사의 강요 없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근육을 자극해 주면 근육은 제대로 생기지 않는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늙어서 좋은 점 한 가지가 발견된다. 더 이상 팔랑귀 만은 아닌 내 고집이 생겼다는 거다. (물론 노인의 고집이 덕목인 것만은 아니다) ‘마이웨이’를 주장하며 팔과 등, 복부, 하체 이렇게 3 파트로 몸의 운동부위를 나누고 하루씩 돌아가면서 40분 정도씩 운동을 한다. 팔과 등의 근력을 키우기 위한 덤벨 운동을 하면서 6개월 동안은 1킬로그램 무게의 덤벨을 사용했고, 지금은 2킬로그램으로 올려 4개월째 하고 있다. 젊은 나였다면 그 덤벨 무게를 훨씬 전에 3~ 4킬로짜리로 늘렸을 거고 앞으로도 계속 늘려야 한다는 강박 속에 있을 거다. 스쾃를 지금의 나는 맨 손에 깍지만 끼고 하고 있지만 젊은 나였다면 바벨을 어깨에 얹고 무릎의 고통을 감내하며 횟수를 세고 있었을 거다.


젊었던 나는 PT코치의 지시에 따라 내 몸에 뭔가를 더 얹고 죽기 살기로 버티느라 내 몸의 변화는 살펴볼 경황이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내 몸을 살핀다. 딸들의 우려와는 달리 10개월이 지난 현재의 내 몸에는 바람직한 근육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경직되었던 어깨와 승모근이 유연해지고 엉덩이와 팔다리는 제법 단단해졌다. 11자 복근이 생길 기미는 아직 없어 보이지만 늘어지던 복부의 지방은 줄어들었다.

     

달리기에서도 나는 더 보태지 않는다. 쉰아홉 살에 달리기를 시작했으니 5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감지덕지하다. 남을 이기거나 기록을 단축시킨다는 욕심을 부리는 건 언감생심이다. 기대가 없으니 좌절도 없고 포기할 일도 없었다. 5킬로를 달린 자체만으로 축포를 쏘고 싶을 만큼 기쁘고 만족스러웠다.


죽기 살기로 하지 않아도 되고, 계속 빠른 속도로 발전하지 않아도 되고, 단시간 내 결과를 얻어내지 않아도 되고, 기대치를 낮추어도 되고, 조금의 진전에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게 늙음의 특권이 아닐까. 그래서 드라마 속의 그 청년에게 말해주고 싶다. ‘매일 무게를 더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어깨에 계속 얹어야 하는 니들이 나는 불쌍해. 늙으면 무거운 거 내려놓을 수 있어. 그게 참 편안하고 좋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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