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쑥쑥 크는 할머니를 꿈꾼다.
딸아이 문제로 정형외과를 방문했다가 내가 골밀도 검사를 받았다. 딸이 검사받는 동안 무료하게 기다리는데 간호사가 다가와 말을 붙였다.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운동을 하는지, 칼슘이나 비타민 D 등의 영양제는 섭취하는지 등을 묻는다. 유산균 이외에는 어떤 영양제도 먹지 않는다고 말하니 골밀도 검사를 바로 해보자고 권한다. 몸을 돌보지 않고 사는 딱한 사람이라는 간호사의 생각이 읽힌다. 전문가가 걱정하니 나도 걱정스러워져서 검사에 응했다.
키와 몸무게부터 측정했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 체중은 예전의 정상 무게를 되찾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키였다. 평생 기억하던 나의 키에서 2cm가 줄어있다. 따로 사는 큰 딸이 만날 때마다 왜 이렇게 사람이 줄어들었냐고 성화를 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충격을 받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40대 이후부터 평균적으로 10년마다 키가 1cm 정도씩 줄어든다고 한다. 60대에 접어든 나는 딱 평균 치 만큼 작아져왔던 거다.
골밀도 검사 결과가 바로 나왔다. 수치보다 그래프가 한눈에 읽힌다. 모든 영역이 파란색 막대 안에 들어와 있다. 골밀도는 높고 뼈는 튼튼하단다. 걱정하던 간호사도 관리를 잘했다면서 칭찬해 준다. '아~' 하는 탄식이 나왔다. 슬픔과 기쁨이, 아쉬움과 대견함이 교차한다. 달리기를 1년 동안 했더니 나의 뼈가 튼튼해졌다. 기쁘고 대견한 일이다. 40대 이후부터 19년 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던 나의 키는 2cm가 줄어있었다. 슬프고 아쉽다.
키가 줄어드는 것은 노화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척추의 뼈와 뼈 사이를 지탱해 주는 디스크가 얇아져서 간격이 좁아지는 게 주원인이고, 골밀도가 약해져서 뼈가 변형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디스크의 노화를 예방하고 골밀도를 높이면 나이가 들어도 키가 줄지 않는다는 이론이 성립되고, 실제로 키가 줄지 않은 노인들도 제법 있단다.
현재의 나의 키를 지키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운동, 음식, 생활 습관 및 자세 등으로 나누어서 계획을 세워본다. 운동은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을 적절한 시간과 강도로 병행하라고 한다. 30분씩 주 3~4회를 달리는 나의 유산소 운동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단다. 1시간씩 주 2~3회 하는 근력운동도 무산소 운동으로 훌륭하다고 하고.
칼슘과 단백질, 콜라겐, 비타민 D가 풍부한 음식뿐 아니라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골고루 충분히 먹으라고 한다. 내 나이에는 많이 먹으면 비만으로 연결된다. 음식량을 조절하면서 채소, 과일, 통곡물, 그리고 고기와 달걀 및 유제품을 빠지지 않고 먹으려고 신경을 쓰고는 있지만 분명히 부족한 영양분이 있을 것이다.
영양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라고들 하지만 나는 영양제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화학 첨가물이 들어간 고함량의 합성 영양분이 내 몸에 들어와서 순기능만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양제도 유행을 타는 것을 목격한 영향도 있다. 안 먹으면 큰 일 날 것처럼 매일 미디어 등에서 소개되던 영양제가 얼마 안 가서 다른 걸로 대체되고, 유행에서 밀린 그 영양제의 부작용에 대한 뒷담화가 이어지는 패턴을 보아온 탓이다.
뼈를 지킬 수 있는 천연영양제가 있다. 햇빛이다. 주름과 기미가 싫어서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쓰지만 팔, 다리 등의 몸의 일부는 햇살에 노출시킨다. 내게는 테라스라는 소중한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꽃을 가꾸고 채소를 수확하느라 하루 1~2시간을 보내노라면 비타민 D가 내 몸에서 착실히 만들어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성장호르몬도 적극적으로 소환해야 한다. 딸들의 키를 키우기 위해 노심초사했던 적이 있다. 부모의 키 유전자 면에서 불리한 터라 비유전자 적으로 해볼 수 있는 건 최대한 시도해 봤다. 특히 ‘새벽형 인간 되기’에 공을 들였다. 성장호르몬이 가장 많이 분비된다는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깊은 잠에 빠져있도록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도록 했다. 덕분인지 현재 아이들의 키는 만족스럽다. 60대에도 적은 양이지만 성장호르몬은 분비되고 있다. 이 소중한 호르몬이 역할을 최고도로 하도록 10시 전에 잠자리에 들고 숙면을 취하는 습관을 들이려고 한다. 숙면에 도움이 된다는 아로마 세러피도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도 키를 키울 수 있는 놀라운 비밀이 있다. 숨은 키를 찾아내는 것이다. 체형이나 자세를 바르게 고치면 2cm 정도의 숨어있던 나의 키를 복원시킬 수 있다고 한다. 거북목을 교정해 주고, 구부러진 등과 접힌 어깨등의 체형을 바로 잡아주기 위한 치료와 운동이 필요하다. 바른 자세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등을 펴고 배꼽을 척추 쪽으로 끌어당기며 엉덩이를 바싹 당기고 앉는 자세, 코어에 힘을 주고 위에서 누가 머리를 당기는 것처럼 목과 머리를 곧게 세우며 턱을 들고 서고 걷는 자세를 유지하면 당장이라도 키가 커 보일 수 있다.
새로운 목표가 생겨서 신이 난다. 시들어 갈 일만 남은 게 아니라 내 몸에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게 기쁘다. 인생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 인생의 후반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아닐까? 달리기를 하고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기막히게 멋진 일이 쉰아홉의 나이에 벌어졌던 것처럼 어느 날 나의 키가 쑥~ 자란 것처럼 보이는 사건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