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을 위해 어떻게 없던 성을 쌓고 귀족 행세를 시작했나
보르도 와인병을 집어 드는 순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라벨 한가운데 떡하니 박힌 웅장한 건축물 그림, 금박으로 휘갈겨 쓴 필기체 단어 'Château(샤또)'.
이 단어는 단순한 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나는 족보가 있는 귀족이다"라고 외치는 무언의 압박이면서 지갑을 열게 만드는 강력한 주문이다. 우리는 그 그림을 보며 중세 시대의 기사가 말을 타고 포도밭을 누비는 낭만적인 상상을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상상은 거의 틀렸다.
물론 라피트나 마고 같은 소수의 특급 영지들은 18세기부터 귀족들의 저택(Manor)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당신이 마트에서 보는 수많은 '샤또'의 원형은,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닭이 울고 소가 밭을 가는 실용적인 농가(Farmhouse) 였거나, 투박한 양조장(Chartreuse)에 불과했다.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화려한 샤또의 이미지는, 와인이 브랜드로 변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1. 1855년, 욕망이 건축을 만나다
시간을 18세기 무렵으로 돌려보자. 당시 보르도 와인 생산자들은 자신들의 와인을 뭐라고 불렀을까? 대부분 'Cru(크뤼)'나 'Clos(끌로)' 또는 'Domain(도멘)'이라고 불렀다. 지금 부르고뉴에서 쓰는 그 소박한 단어들 맞다. 당시 보르도는 귀족적인 저택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생산 시설은 화려함보다는 와인 생산에 최적화된 농업 시설이었다.
그런데 19세기에 들어서며 판이 바뀐다. 산업혁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신흥 부르주아(Bourgeoisie)들이 등장했고, 와인은 단순한 술이 아닌 '럭셔리 사치품'으로 신분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특히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와 공식 등급 제정(Classification)은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었다. 생산자들은 깨달았다. 이제 와인은 맛으로만 파는 게 아니라 '보이는 것(Image)'으로 팔아야 한다는 것을.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영국의 귀족이나 파리의 금융가들에게 비싼 와인을 팔아먹으려니, 'OOO네 농장'이나 'OOO 크뤼'라는 이름은 너무 촌스러웠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럴듯한 서사, 즉 '귀족적인 포장'이 필요했다.
이때 당시의 마케팅 천재들이 꺼내 든 단어가 바로 '샤또(Château)'다.
원래 샤또는 왕이나 영주가 사는 군사적 요새나 성을 뜻하는 단어다. 하지만 보르도의 땅주인들은 19세기 중반부터 이 단어를 자신의 포도원에 전면적으로 차용하기 시작했다. 법적으로 "와인을 만드는 시설이 있으면 샤또라고 부를 수 있다"는 느슨한 규정을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다.
2. 금융 자본의 상륙작전: 로칠드 가문의 '성(Castle) 쌓기'
이 '샤또 마케팅'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바로 당대 유럽 최고의 금융 재벌, 로칠드(Rothschild) 가문이었다. 이들의 등장은 보르도 와인이 농업에서 '금융업'으로 진화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1855년 등급 제정이 있기 직전인 1853년, 나다니엘 드 로칠드(Nathaniel de Rothschild)는 '샤또 브란 무통'을 매입해 자신의 이름을 딴 '샤또 무통 로칠드(Château Mouton Rothschild)'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1868년에는 제임스 드 로칠드(James de Rothschild)가 당대 최고의 와이너리였던 '샤또 라피트'를 천문학적인 금액에 사들여 '샤또 라피트 로칠드(Château Lafite Rothschild)'로 재탄생시켰다.
이 금융 재벌들은 와이너리를 단순한 농장이 아니라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영지'로 만들고 싶어 했다. 그들은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어 기존의 건물을 화려한 궁전처럼 증축하거나 리모델링하고, 사교계의 명사들을 초청해 파티를 열었다.
"보시오, 이것이 로칠드의 와인입니다."
로칠드 가문이 주도한 이 웅장한 성과 화려한 라벨은 1855년 등급 체계와 맞물려 보르도 와인의 새로운 표준(Standard)이 되었다. 이때부터 주변의 다른 와이너리들도 깨달았다.
"아, 비싸게 팔려면 일단 건물부터 올리고 이름 앞에 '샤또'를 박아야 하는구나."
3. 라벨은 19세기의 인스타그램이었다
이름만 바꾼 게 아니었다. 그들은 실제로 '보여주기 위한 건축'을 시작했다.
자본을 갖춘 와이너리들은 낡은 농가를 허물고, 그 자리에 뾰족한 첨탑을 세우고 화려한 정원을 꾸몄다. 마치 테마파크의 성처럼, 사람이 살기 편한 집보다는 '라벨에 그렸을 때 아름다운 집'을 짓는 것이 목적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그 유명한 '샤또 마고(Château Margaux)'다. 19세기 초, 그들은 당대 최고의 건축가를 불러 신전(Temple)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네오-팔라디안 양식의 건물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 건물을 라벨 메인에 박아 넣었다. 효과는 폭발적이었다. 사람들은 와인의 맛을 보기도 전에 그 압도적인 건축미와 라벨의 권위에 매료되었다.
이 성공 방식을 본 너도나도 "나도 샤또다!"를 외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보르도에서는 샤또라는 단어가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성이 없으면 탑이라도 하나 세우고, 탑을 세울 돈이 없으면 라벨 그림이라도 그럴듯하게 그려서 '샤또' 간판을 달았다. 심지어 밭 한가운데에 뜬금없이 비둘기 집(Pigeonnier)을 성탑처럼 높게 지어놓고 "이것이 우리 샤또의 상징"이라고 내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즉, 지금 우리가 마트 와인 코너에서 보는 수많은 '샤또 OOO'들은, 와인을 농산물에서 럭셔리 상품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19세기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치밀한 브랜딩의 결과물이다.
4. 예외는 있다: "성이 없어도 나는 왕이다" (페트뤼스의 반란)
물론 모든 보르도 와인이 이 '성 쌓기 놀이'에 동참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아주 흥미로운 예외가 등장한다. 바로 보르도에서 가장 비싼 와인 중 하나인 '페트뤼스(Pétrus)'다.
페트뤼스의 라벨을 보면 거기엔 웅장한 성 그림도, 화려한 장식도 없다. 심지어 이름 앞에 'Château'라는 단어조차 없다. 그냥 붉은 글씨로 'PETRUS'라고만 적혀 있다. (최근 빈티지에는 작게 표기하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그들은 샤또를 내세우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페트뤼스가 있는 포므롤(Pomerol) 지역은 1855년 등급 분류 당시에는 촌동네 취급을 받던 곳이었고, 페트뤼스 농장에는 자랑할 만한 '성' 따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소박한 농가 건물 하나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들은 건물을 짓는 대신, 땅과 포도에 미친 듯이 집착했다. 그 결과, 지금은 샤또 마고나 라피트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페트뤼스의 존재는 샤또 마케팅의 허상을 꼬집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페트뤼스는 ‘샤또’라는 단어가 없어도 이미 가격으로 증명된 와인이다.
5. 부르고뉴의 반전: 진짜 성주들은 조용하다
재미있는 것은 보르도의 라이벌, 부르고뉴다.
보르도가 너도나도 '샤또'를 표방할 때, 부르고뉴 생산자들은 여전히 'Domaine(도멘)'이라는 단어를 고집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건물이 아니라 '땅(Terroir)'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르고뉴 와인 중에도 드물게 'Château de OOO'라는 이름이 붙은 와인들이 있다. 샤또 드 라 투르(Château de la Tour), 샤또 드 뫼르소(Château de Meursault), 샤또 드 포마르(Château de Pommard) 같은 곳들이다.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보르도의 샤또가 '마케팅용 신축 건물'에 가깝다면, 부르고뉴의 샤또는 진짜 '성(Castle)'일 확률이 높다. 이들은 19세기에 급조된 부르주아들이 아니라, 중세 시대부터 그 지역 영주나 수도원과 관련된 진짜 유서 깊은 가문이거나 시설인 경우가 많다.
보르도에서는 누구나 샤또를 쓰지만, 부르고뉴에서는 진짜 성을 가진 소수만이 샤또를 쓴다. 역설적이게도 '샤또'라는 단어의 물리적 무게감은 마케팅에 능한 보르도보다, 흙을 파먹고 사는 부르고뉴 쪽이 훨씬 더 무거운 셈이다.
6. 우리는 무엇을 마시는가
솔직히 말해, 이게 자본주의다. 하지만 적어도 알고는 마셔야 한다. 보르도의 생산자들이 "우리는 귀족이다"를 연출하며 성을 쌓아 올릴 때, 우리는 그들이 설계한 무대를 보고 감탄하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당신이 어느날 보르도 와인을 딸때 라벨을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 웅장한 성 그림 뒤에는, 자신의 와인을 단순한 농산물이 아닌 '명품'으로 만들고 싶었던 170년 전 금융 재벌들과 와인 상인들의 우아한 욕망이 숨어 있다.
결국 우리가 마시는 건 포도즙만은 아니다.
본 연재글은 향후 도서 출판을 목적으로 기획/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