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나요? 익숙함 속의 낯선 경험
곤죽이 된다는 말 아는가?
거의 철철철 녹아버리는 거다.
늦은 퇴근길 전철에서는
피로에 섞여 곤죽이 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흐물흐물 녹고 있는 사람들.
얼른 이어폰을 꽂고 눈이라도 붙이고 싶은데..
근데.. 가만
귀가 어디 갔지?
이어폰 꽂기를 포기하고
인터넷뉴스를 본다.
반은 의식 반은 무의식 중에
활자가 어눌하다.
잠깐 이게 무슨 말이지?
분명 읽고 있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파민 과다로 문해력이 떨어진 걸까
몸은 나른함속에 계속 녹아내리고 의미를 모르는 눈만 뻐끔댄다.
생각해 보면
오늘 하루 종일 문서작업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 오늘 출근해서 먼저 한 일
- 어제 쓰다만 보고자료 수정하기
2. 오늘 퇴근 때 마지막 한 일
-퇴짜 맞은 보고서 다시 수정하기
3. 내가 기억하는 오늘의 마지막 파일명은?
- "ㅇㅇㅇ 추진안. ver21.docx"
아.. 이젠 보고서로 광파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수정과 반복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내가 보는 활자들이 전부 찌그러져 있다.
세상에 나와서 처음 보는 것처럼
게슈탈트 붕괴에 빠지셨네요
[게슈탈트 붕괴현상]
늘 보던 단어가 생소하게 느껴져 마치 이 조합을 처음 본 것처럼 느끼는 현상
어떤 대상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그 대상에 대한 개념 또는 정의를 잊어버리게 되는 기이한 현상
이 현상이 일어나면 전체성을 잃고 개별적인 것만 인식하게 됨으로써 평소 느끼지 못했던 '생소한' 감정을 느낀다.
흥미로워서 찾아보니 원래 게슈탈트는, 독일어로 ‘형태(gestalt)’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분과 전체의 조합이 인간의 지각을 구성한다는 독일의 게슈탈트 심리학이 아닌 일본의 괴담에서 유래된 은 어라고 하니 세상 참 요지경, 어느 것이 정확한 정보인지는 인터넷 서치만으로 알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괴담에 따르면 매일 거울을 보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 하고 되뇌다가 결국엔 내가 누군지 아예 '잊어버렸다'는 이야기. 아니 나에 대한 인식을 '잃어버렸다'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사람들은 말도, 그에 어울리는 그럴싸한
의미도 참 잘 만들어낸다.
반대 의미로는 '데자뷔' 또는 '기시감' 현상이 있어서 게슈탈트 붕괴는 '자메부' 또는 '미시감'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게슈탈트 붕괴에 집중한 사이 집에 거의 도착했다.
결국 이번 퇴근길도 쉬지 못했구나!
대충 하는 게 더 어렵다.
그런데..
내가 늘 내리던 역이 이 역이 맞던가?
어딘가 어색한데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쿠키: floccinaucinipilihilification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 출처: 네이버영어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