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화] (최종화) 너라는 세계

둥근 곳으로 가는 사람

by ASTER

해인은 도시의 가장자리, 파동의 경계에 섰다.

저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니, 아직 그려지지 않은 가능성들이 고요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지나온 세계들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각진 도시, 감정의 제로포인트, 초록안개숲을 지나

이곳 파편의 도시까지.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감정들.

그 모든 것이 자신이었다.


처음 이 여정이 시작되었을 때,

해인은 자신이 부서져 있다고 느꼈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무너질까봐 두려웠고,

누구에게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할 만큼 취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감정을 숨기고, 고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감정은 결함이 아니라 지도였다.

그녀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려주는 고유한 좌표.

감정은 곧 그녀가 가장 확신할 수 있는

그녀의 참모습이었다.


문득 시엔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너는 언제나 너였어. 나는 단지 그 감정을 조율했을 뿐이야.’


시엔은 그녀의 감정을 비추는 거울이자 그리로 향하는 통로였다.

그녀가 스스로를 깊이 만나도록 이끄는.


파동 속에서 해인은 마침내 자기 이름을 불러보았다.


윤. 해. 인


세상에 처음 나온 말처럼 낯설고, 또 따뜻했다.

그 음성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스스로를 껴안는 소리였다.


그 순간 그녀 속에 작은 빛이 떠올랐다.

물결처럼 퍼지는 둥근 진동 속에서,

해인은 자신이라는 세계를 온기로 느꼈다.


틈은 어디에도 다시 열리지 않았다.

대신 해인의 내부에서 새로운 문이 열렸다.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어가는 삶.

감정의 끝에 선 존재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 안에서 숨 쉬는 존재로.


해인은 걷기 시작했다.

발밑엔 감정의 파편들이 정렬되며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그 길 위에, 익숙한 사람들의 눈빛이 하나둘 모였다.

수아도, 유람도, 이름 모를 이들도.

모두가 자신만의 감정을 안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해인은 알게 되었다.

곳이 바로 ‘둥근 곳’이다.

이곳이 곧 '자기 자신'이다.


‘둥근 곳으로 가는 사람’이란 말은,

결국 ‘나로 돌아가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녀의 미소속에서

아직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빛나고 있었다.


이제, 나는 나를 안고 산다.



[이야기를 마치며]


지금까지 '둥근 곳으로 가는 사람'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첫 소설이지만 해인이 곧 나의 모습이자,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즐겁게 썼습니다.


나의 마음과 감정이 어떤 모양인지

그것들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아직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지만

나만의 고유한 세계,

나만의 둥근 곳을 찾아 계속 길을 걸어나가고 싶습니다.


2025.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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