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얼굴이 변하면, 세계도 변한다.
너는 어제보다 조금 더 달라졌다.
분명히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정확히 어디라고 말하기는 애매하다. 얼굴 위의 작은 뾰루지나 체중계의 눈금이 살짝 바뀐 것을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듯이. 너의 변화는 아직까지는... 온전히 너만의 것이다.
눈? 코? 입? 표정의 결?
아니, 그건 아니다. 마치 네 얼굴 위에 새롭게 얇은 막이 한 겹 더 씌워진 것처럼, 너는 네가 아닌 것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말하지 않았다. 너는 그게 더 불안하다. 조바심이 나지만 참느라 그게 더 고역이다. 이상한 것은 오직 너의 마음뿐이다.
“요즘 괜찮지? 너답게 아주 잘하고 있어.”
회사에서 팀장이 말한다. 너는 멋쩍게 웃는다. 너의 그 웃음을 보며 나는 웃지 않는다. 문득 손끝이 차가워져 온다. 다시 한기가 느껴진다. 너는 원래 그렇게 웃지 않는다. 너의 입꼬리가 눈보다 먼저 올라간다. 입만 웃고 눈은 웃지 않는 것이 어쩐지 어색하고 오싹해 보인다. 공기가 다시 추워진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다시 너를 봤다. 사람들은 저마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고, 그들의 얼굴은 네가 거기 없는 것처럼 통과하고 있다. 이제는 네가 희미한 것인지, 그들이 희미한 것인지 헷갈린다. 온통 투명한 얼굴들이 뭉개져서 서로를 통과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너는 뜨거운 커피를 들고 창가에 섰다. 반은 얼고 반은 녹아 있는 겨울 강물을 바라보며 너는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분다. 입김이 피어오르는 유리 너머에 펼쳐진 풍경을 마치 다른 계절과 세계를 보듯 서있다. 유리 밖의 세계는 진짜일까?
지구라는 이 세계는, 이 순간에도 발을 딛고 선 땅과 천장같이 매달린 하늘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리 밖의 세계는 고요하다. 잘 찍은 선명한 사진처럼 어떤 움직임도 흔들림도 없다. 이제는 도무지 감각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너는 유리창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풍경을 더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가져다 댄다. 유리 위에 묻은 얼룩을 너는 가만히 바라본다. 얼굴의 흔적이 지나간 유리창 얼룩 위로 이제는 추운 겨울 강물이 아니라 너의 얼굴이 비친다. 그 모습이 어딘지 한 박자씩 미묘하게 다르다.
0.3초 정도. 아니 0.2, 0.1...?
지구가 끊임없이 스스로 돌고 있는 속도만큼. 그토록 사소하면서도 아주아주 거대한 어긋남.
너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다. 너의 감각은 항상 너를 속이므로, 너는 너의 오감이, 아니 오감 다음의 육감이 발견한 작은 변화들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는 그런 너를 본다. 사실, 자신 외에는 아무도 스스로를 속일 수 없음을. 모든 변화와 서사와 흐름도. 지금 제자리에서, 이 우주 속에서, 홀로 돌고 돌고 도는 너 자신도 결국 한자리에 그대로 박혀 고정된 자국처럼 느끼듯, 모든 현실은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되돌리고 되돌리는 그림자일 뿐임을. 너는 지금 거대한 세계의 거울 앞에 서있다.
너는 아직 모르고 있다. 그것이 우리 세계의 안타까움이다. 너는 누구보다 너 자신에 대해 모른다. 아니 너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다. 너는 어디서 왔으며, 지금 어디에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를. 그러니 너는 당연히 이 세계도 모른다. 이 세계는 곧 너 이므로, 너의 것이므로, 너에게 속한 것이므로.
그렇다면 유리 속의 너는 답을 알고 있을까? 그는 지금 너보다 현명하게 먼저 고개를 기울인다. 그는 너보다 지혜롭게 먼저 미소를 짓는다. 눈을 깜박이고 입꼬리를 올린다. 아까보다 더 변화된 모습으로, 이제는 두 박자씩은 미묘하게 다르다. 마치 네 움직임을 예측하고, 그다음에서야 네가 그를 따라 하는 것처럼.
네가 먼저인지, 유리 속의 네가 먼저인지. 나는 헷갈린다. 오직 너뿐인, 오직 너 혼자만 서있는 이 세계에서 그 찰나의 순간 너는 불현듯 알게 된다. 네가 평균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세계가 너를 기준으로 평균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걸. 네가 정상이 아니라면, 지구도 정상이 아닐 거라고, 어쩌면 빠르거나 느린 속도로 돌기 시작했다는 걸.
그날 오후 퇴근길, 오랜만에 동기 민지를 마주친다. 너에게는 몇 안 되는 '친구'중에 하나다.
민지와 너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어느 부분에서 의견이 갈린다.
“우리,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잖아.”
너는 멈칫한다. 너는 민지와 고등학교를 함께 다니지 않았다. 그는 회사에 입사해서 만난 동기다. 너는 고등학교를 다닌 기억이 없다. 있다 해도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는 없다. 너는 그걸 알지만 우기지 않는다. 너는 그저 천천히 웃으며 얼버무린다.
“아… 맞다. 그래 그랬지.”
거짓말이었다. 그래도 크게 문제 될 건 없다. 불편한 건 너이지 민지가 아니니까, 민지는 한껏 신이 나서 떠든다.
“너 그때도 좀… 특이했어. 지금처럼. 쿡쿡”
특. 이. 하. 다.
난생처음 듣는 단어다. 너는 그 단어를 한 글자씩 낱낱이 분해해서 그 의미를 눈앞에 떠올려본다. 너의 세계에는, 아니 적어도 너와 관련된 것들 중에는 특이한 것이 하나도 없다. 너의 옷도, 너의 가방도, 네가 취향이라고 부를만한 물질들, 너에게 속한 그 어떤 것도 특이한 것은 없다. 너는 흑백 같은 사람이다. 너에게는 채색이 없다. 그런 네가 특이하다고? 너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이내 증발해 버리고 너는 어느 아침 회의실에 서있다.
네가 들어온 걸 보지 못했는지 회의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신나게 누군가의 험담을 하고 있다.
“원래 말 많았잖아.”
“원래 되게 싸가지가 없었지.”
“원래 승진 욕심도 엄청 많았잖아.”
그들은 '원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험담의 주제는 '원래'다. '원래'는 그들에게, 그들이 믿고 바라는 모든 것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그들의 동질감, 그들의 믿음과 의구심, 이 험담을 영원히 이어가고 싶은 그들의 아름다운 소망은 '원래'로 인해 점점 더 커져서 이제는 회의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원래'는 그들의 적이자 친구이고 그들의 존재 이유다.
물론 그들의 기억은 매번 다른 ‘원래’를 말하고 있지만, 너는 그때마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의 원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의 원래는 충분히 타당하다. 너도 원래를 싫어는 것 같다,라고 생각하던 그때. 네 얼굴은 일그러진다. 원래 그랬던 모습에서 벗어나서 점점 원래를 잊은 모습으로. 차츰 기울어진다.
광대가 올라가고, 눈빛이 단단해지고, 입술이 얇아진다. 날렵해진 콧날 끝에서 새로운 자아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너는 아직 알지 못한다. 너는 원래 살던 세계를 이동시킨다. 사람들이 너의 변화를 보지 못하는 게 아니라, 네 변화에 맞춰 세계가 기억을 수정하고 있다. 이 세계는 불안을 견디지 못한다. 변화와 혼란을 견디지 못한다.
평균에서 벗어난 존재, 원래의 균형을 벗어나는 존재를 그냥 둘 수 없어 세계는 스스로 파멸한다.
이제는 처음의 너와 거의 닮지 않는 네가 길을 걷는다. 거리 속 유리창에 비친 너는 이미 타인만큼이나 달라져있다. 너는 원래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의 네가 누구인지도 희미하다. 너는 이제 휴대폰을 보고 있고 나는 그런 너를 보고 있다. 그때 일림과 함께 메시지가 네 눈앞을 흘러간다.
“... 평균 편차 보정 진행률 62%”
너는 고개를 들었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너의 주변은 이미 사라졌다. 그 배경 속에 담긴 지금의 너도 사라지고 있는 중이다. 나는 달린다. 너를 붙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사라지기 전에 어떤 얼굴이었는지를 기억하고 싶어서. 내가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그런데—
문득 멈췄다.
내 손끝이 낯설다. 너를 잡으려던 내 얼굴이,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아주 천천히 조금씩 변하고 있다.
(3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