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거리에서

나의 인생을 내 영혼이 계획했다면

by ASTER


"쯧..

다른 집에 태어났으면 고생 좀 덜했을 텐데., "



어느 날 친정집에 누위 잠이 막 들려던. 순간 그 소리가 들렸다. 결혼하고 10년이 지나고 있었고 1년에 몇 번씩 의례적으로 겨우 친정에 들를 때였다.


지나가는 듯 그저 흘러간

그 바람 같은 말들은

여러 날 아니, 어떤 날이면

나를 유독 후려치고

가끔은 그때의 그 슬픔. 좌절. 원망이 목까지 가득 차면서 터질 듯 마구 나를 몰아간다.


그래!
나는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서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었을까..?

이런 환경만 아니었으면..

이런 부모만 아니었다면..

편한 인생 살았겠지 고생 안하고


친정을 떠난 지 20년이 지났고 ,

아이 태어난 후로는 시댁 도움 계속 있어서 다른 워킹맘보다 수월했다고 남들은 말하지만, 내 속을 알까? 단 하루도 쉬운 날은 없었다고..


좋은 직장이라지만

늘 남의 일 해주느라 쫓기듯 종종 려야하고 맘 편히 쉴 틈 없어 일만 하는 큰 딸이

오직 제 부모 눈에만 안타까웠으리라.


생각해 보니


처음 부모를 원망한 것이 고2 때였고,

그 뒤로는 남몰래 샐 수도 없이 원망했으며

나이 앞자릿수가 4를 넘어가면서부터는

나에 대한

안쓰러움, 슬픔, 연민이 가득 들어찼다.


나 혼자 잘해서 손 안가는 자식이었고

일찍 독립해 돈벌고 알아서 컸다고

스스로 척척 다 잘해서 여기까지 살아왔다고 그것이 가장 큰 자부였다.


투자 대비 잘 된 자식,

나름 가성비 있는 딸이라며

혼자 남모를 씁쓸함도 삼켰.


잘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나는 잘 살아온 걸까?

스무 살 되자마자 부모 품 떠나 가시밭길, 고생길 스스로 자처하

객지에서 홀로 고군분투.

참, 헛똑똑 인생이다.


꽃처럼 귀하진 못했어도

최선을 다한 부모님 정성도 알기에

홀로

속을 태우고 또 태운다.


그러나 여전히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의 날들이다.


이제는 남들 보기 그럴듯하고 잘 사는 듯 보여도

실속 없이 움츠러들고

그래서 더 비굴하지 않으려 애썼나 보다.


남들 눈에 좋은 거 다 부질없다.


누군가 나를 위해 해준 말,

내가 그동안 진심으로 부러웠던

인생들 하나둘 떠올려본다.


내편이 있는 인생.

응석 부릴 수 있는 인생.

도움받고 도와달라 손 내밀수 있는 인생.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면

이번 생애의 내 삶을 이미 모두 계획했다는데..

나는 도대체 왜 이런 부모에게 태어났으며

내 아이는 왜 나를 부모로 선택했을까.




80년대 춥고 배고픈 거리,

동대문구 단칸방 어딘가

시내에서 가능한 먼 곳에 자리를 잡은 젊은 부부는

가끔 사치를 내어 돼지 곱창을 먹었을 테지.


그 가난한 부부에게 무언가를 주고 싶었을까?

단박에 그들의 첫 아이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을까.

춥고 배고픈 그 거리에 나도 함께 서성이고 있었으리라.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가끔 희망나 소망 같은 알맹이없는

단어들만 간간히 나부끼고 있었겠지.

그런것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내는

순진한 그들이 가엽고 안타까웠겠지.

나처럼.


아!!


사실은 모두 내가 선택한 거야

이번 생 아직 망하지 않았어!

나는

아빠 엄마의 자식으로 살아서 참 좋어!

누구보다 행복했어!!!



세월과 시간이라는 착각에 흐려져

전생의 기억, 현생의 목적, 영혼의 계획 같은

어디 내놓기도 민망하고 허무맹랑한 것들은 이제 기억조차 없어졌지만,


가끔씩 늦고 피곤한 밤,

깊이 잠든 내 아이의 머리맡에 가만히 누워

들숨과 날숨에 나의 숨 맞추다 보면

먼 옛날, 그 다짐들이 다시 들리는 듯.



희망도 기대도 없고

그저 일하고 잠자고 다시 일하기 위해 잠자는,

세상 뻔하디 뻔한 내 인생에도

이 아이가 찾아와 빛이 되어 주었듯


불현듯 나도,

어느 겨울 밤 나의 부모가 있던 창가, 골목, 단칸방 어디든.


그들이 있는 그 곳에 찾아가

희망을, 기대를, 사랑을

어떻게든 부여잡

젊고 순수한 그 영혼들을

나의 부모가 될 그들을

오래, 그리고 염없이

눈여겨 바라보았을 것이다.


(2026.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