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끝없는 나, 그리고 세계의 흔들림
'너도 곧 삭제될 거야.'
그 목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느덧 옆에 와 있는 듯 더 가까워졌다.
내 안에서 울리던 소리가 이번에는 바로 내 뒤에서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는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닥이 살짝 기울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네가 균형을 잡으려 발을 옮기던 그 순간, 아스팔트였던 바닥이 갑자기 나무 마룻바닥으로 변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너는 눈을 깜빡였다.
다시 아스팔트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변이 다르게 보였다.
건물들은 허물어지고 이내 낯선 건물 안에 들어와 있었다.
한 걸음 물러서는 너의 옆으로 또다시 바뀌는 풍경들
지하철 플랫폼.
비어 있는 교실.
어두운 방.
책장, 그리고 그 위에 쓰러진 잡동사니들.
영사기에서 스크린을 향해 쏘아 올린 장면들처럼 현실의 모든 것이 하나둘 겹쳐졌다.
겹쳐졌다가 /갈라졌다가/ 겹쳐졌다가/ 갈라졌다가
마치 여러 세계가 갈래갈래 한 공간 위에 포개진 것처럼.
그 포갠 틈사이로 너는 눈을 감았다. 나도 감아본다.
나는 눈을 감았다.
세계는 어지러웠다. 단지, 네 시선이 다시 머무는 곳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너는 눈을 크게 떴다.
나잖아?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였다.
조금 더 어린 나. 아니다 더 어려진 나.
머리를 틀어 올리고, 손에는 펜을 들고 노트를 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장면이다.
처음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던 날.
그 어린 나는 아직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눈앞에 노트라고 보이는, 사실은 헛것이 '허공'을 향해 글을 쓰고 있었다.
열심히, 그리고
장면이 다시 흔들렸다.
이번에는 다른 내가 나타났다.
회사 책상에 앉아 있는 나.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곤한 얼굴. 투명하게 뻥 뚫린 얼굴.
무언가를 망설이고 있었다.
나는 그 장면도 기억하고 있었다.
퇴사를 고민하던 밤,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 좋을 것이라며
그리고 또 바뀌었다.
이번에는 어두운 방.
책상 위에는 원고뭉치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거기 앉아 있었다.
그리고 눈을 들어 거울 속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끊임없이 반사되는 나의 존재들이 또다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너무 많아서 중간에 세는 것을 멈추자 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헙!
나는 숨을 멈췄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다시 돌아왔다 현실로-
'너도…'
그 입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곧 삭제될 거야.'
공간이 아득한 진동 속에 크고 깊게 흔들렸다.
너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나도 함께 비틀거렸다.
그리고 수많은 장면들은 어지럽게 겹쳐진다.
내가 만나본 나
다른 선택을 한 나
이미 포기한 나
아직 오지 않은 나
수십 개의 내가 한 공간을 빙글빙글 돌면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 모든 나에게서, 나의 가슴에서
은빛 실이 이어져 있었다.
은줄들이 모두 너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나도 역시 그 은줄들 사이에 있었다.
수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속삭일 때 은줄들은 흔들렸다.
'우리는 하나였어.'
'우리는… 하나씩 사라지고 있어.'
우리 중 하나가 너를 보고 웃었다.
(7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