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원을 통해 사계절의 얼굴을 배운다. 봄이면 연둣빛 새잎들이 고개를 내밀며 생명의 시작을 알리고, 여름이면 짙푸른 잎들이 정원을 가득 채운다. 가을에는 화려한 빛깔로 물들며 한 해를 정리하고, 겨울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고요히 침묵한다. 그 변화는 마치 인생의 여정과도 같다. 어느 순간에 가장 아름답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의 어느 계절도 헛되이 흘러가는 법이 없다는 걸 정원은 가르쳐 준다.
특히 치자꽃이 피는 초여름이면, 나는 유년의 기억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치자꽃 향기는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오던 그 향기만으로도 마음이 한껏 들떴다. 이제는 그 꽃을 내 손으로 가꾸고, 그 향기를 다시 맡으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얼마나 깊은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삶이란, 어쩌면 그리운 향기를 따라 천천히 돌아가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정원은 늘 제 자리를 지키며 내 삶의 쉼표가 되어 준다. 복잡한 일상 속에서도 이곳에 서면 마음이 정리되고, 나 자신을 다독이게 된다. 세상은 끊임없이 경쟁과 비교를 요구하지만, 정원에서는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가 없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저마다의 이름으로, 모양으로, 색으로 존재할 뿐이다. 나도 그렇게 나의 속도와 방식대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을 이곳에서 배운다.
때로는 가뭄으로 메마른 흙을 만나고, 갑작스러운 비바람에 꺾인 가지를 마주하기도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정원의 일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상처 난 자리에 다시 싹이 틀 것을 믿으며 기다리는 것, 그것이 정원을 가꾸는 일이자, 나를 가꾸는 일이기도 하다.
삶이란 늘 빠르게 흐르는 강물처럼 바쁘고 복잡하다.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때론 얼마나 고된 일인가.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정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나만의 퀘렌시아,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주는 그 공간으로.
정원은 내게 단순한 취미나 볼거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정원을 바라보고, 가꾸고, 손끝으로 식물의 결을 느끼는 그 모든 과정은 나의 내면과 맞닿아 있다. 매일 달라지는 빛의 온도, 바람의 방향, 식물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내 마음의 상태와도 닮아 있음을 알게 된다.
식물은 결코 조급하지 않다. 제 속도대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뻗고, 어느 날 문득 꽃을 피워 낸다. 이 단순하고도 명징한 생명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나는 삶의 본질과 마주하게 된다. 빨리 피는 것이 잘 피는 것이 아님을, 조용히 움트는 싹 하나에도 온 우주의 질서가 담겨 있음을, 정원은 나에게 속삭인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유나 지위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 아는 일이다. 그러나 그 질문은 결코 가볍게 답할 수 없다. 삶의 고요한 틈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원은 그 틈을 내게 마련해 준다. 흙을 만지고, 마른 잎을 정리하며, 물을 주는 순간마다 나는 나와 더 가까워진다. 식물이 시들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보고, 새순이 나면 기쁨에 설레며, 정원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깊어진다. 그 속에서 비로소 ‘나다움’을 찾게 되는 것이다.
정원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지만, 침묵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 조용한 대화 속에서 나의 마음은 조금씩 평안해지고, 삶의 결도 부드러워진다. 삶의 질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마음 놓고 숨 쉴 수 있는 공간 하나, 눈길 머무는 곳마다 평안을 주는 풍경 하나면 충분하다. 정원의 꽃들은 자신을 꾸미기 위해 피지 않는다. 그저 제 자리에 충실할 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나에게는 진정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나는 오늘도 정원에 서 있다. 여름 햇살 아래 고개를 든 보랏빛 라벤더와 수줍게 피어난 치자꽃 향연에, 고요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힐링하고 있다. 이곳이 나의 퀘렌시아다. 꾸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환영해 주는 곳. 삶의 중심을 다시 세우고 진정한 나를 만나는 곳, 우리 집 정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