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 서랍은 늘 잘 닫히지 않는다. 힘껏 밀어도 어딘가 걸리는 소리가 나며 살짝 열린 채로 남아 있다. 서랍 속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오래된 공책, 잉크가 다 마른 펜, 한 번도 쓰지 않은 메모지들. 그 아래에는 낡은 이어폰, 아끼는 옷들의 여분 단추들 그리고 어딘가에서 받은 기념품 같은 것들도 있다. 나는 그 서랍을 열 때마다 잠시 멈칫한다. 무언가를 꺼내려다 보면, 그 안에 든 물건들이 나를 붙잡는 것 같다.
그날도 서랍을 열었다가 닫으려 했지만, 끝까지 닫히지 않았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매번 참고 지냈지만 그날은 조금 짜증이 몰려왔다. 나는 결국 서랍을 완전히 열고 안에 든 물건들을 무작정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의 흔적인 손때 묻은 공책들, 그리고 갖가지 펜이 집혔다. 그 빛바랜 공책에는 강의 시간에 끄적였던 낙서와 6~7년전 대학축제 시즌 선배들과 나눴던 쪽지메모가 남아 있었다. 고등학교 수험생 시절 아껴쓰던, 가격도 꽤나 나가던 펜은 이미 잉크가 말라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손에서 놓기가 쉽지 않았다. 한때는 나에게 중요했던 것들이었으니까.
서랍 속에는 그런 물건들이 많았다. 한때 소중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설레지 않는 것들. 나는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며 생각했다. 설렘이 사라진 물건들을 계속 붙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들을 버리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그것들이 한때 나에게 의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의미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나는 공책과 펜을 재활용 더미에 넣었다. 낡은 이어폰과 기념품들은 쓰레기 봉투에 담았다. 하지만 몇몇 물건들은 여전히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대학시절 친한 선배들과 나눴던 메모 한 장이 그랬다. 이젠 연노란 빛으로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찢어질 것만 같기도 한 종이였지만, 대학 자취방에서 그 추억의 메모를 보았던 축제날 밤의 내가 떠올랐다. 결국 나는 허름해진 쪽지를 다시 서랍 안에 넣었다.
정리를 마치고 나니 서랍 안에는 여백이 생겼다. 여백이 생긴 서랍은 거의 7년만에 조용히 닫혔다. 빈 공간을 보며 생각했다. 이 자리에 무엇이 들어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언젠가 또 다른 설렘으로 채워지겠지.
그날 저녁, 창밖으로 비가 내렸다. 빗소리가 일정하게 들렸다. 나는 창문 너머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봤다. 어쩌면 내일은 맑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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