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아름다웠던 우리의 평범은,

by 혜온

조금 늦게 일어났다. 해가 중천쯤 떠있었을까. 블라인드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침대 위에 가느다란 선들을 그어놓았다. 마치 누군가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정확한 평행선들. 나는 그 빛의 줄무늬 속에서 하얀 천장을 바라보며 심장이 일어날 박동까지 올라오길 조금 기다렸다.


이상한 일이다. 매일 반복되는 이 순간이 어째서 늘 새로울까. 잠에서 깨어나는 것, 의식이 서서히 몸으로 스며드는 것, 심장이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매번 똑같으면서도 매번 다르다. 오늘의 햇빛은 어제와 같은 각도로 들어오지만, 어제의 나는 이미 어제에 남겨두고 온 것이니까.


심호흡을 하며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또 하루의 시작이다.


프리랜서로 사는 삶은 나름 내 일정을 최대한 나에게 맞출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내가 어떤 것에 이끌려다니기보다는 내가 하루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자유로움이 때로는 무한한 선택지 앞에서 나를 주저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은 어떤 카페를 가볼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나는 늘 같은 딜레마에 빠진다. 내가 좋아하는 인더스트리얼한 날것의 느낌이면서도 모던하면서도 차분한, 그런 담담한 무채색의 카페는 참 찾기 힘들다. 온통의 것들이 뻔해도 너무 뻔한 원목 카페가 참 많으니. 노출 콘크리트와 검은 철제, 적당히 무심함이 느껴지는 바테이블이 있는 곳. 그런 곳에서 작업할 때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아무렴, 맨날 고민하다 가는 곳은 주구장창, 오늘도 내 어쩔 수 없는 애착의 스타벅스가 되겠지.


스타벅스 구산점 창가를 낀 구석자리. 나만의 지정석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주 앉는 그 자리에서 나는 노트북을 펼친다. 말차프라푸치노 한 잔과 함께.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앉아있다. 노트북을 열고 뭔가를 열심히 타이핑하는 사람들, 이어폰을 끼고 화상회의를 하는 사람들, 책을 읽으며 뭔가를 메모하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작업에 몰두해 있지만, 동시에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나는 쉭쉭 소리, 누군가 의자를 끄는 소리,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교향곡을 만들어낸다.


그런 소음들 사이에서 나는 글을 쓴다. 브랜딩 기획서를, 마케팅 전략을, 때로는 에세이를. 내 손끝에서 태어나는 문장들이 모니터 화면에 차곡차곡 쌓여간다. 이 평범한 일상이, 이 반복되는 루틴이 전해져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고,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하나의 세상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해가 지고 있다. 카페 창밖으로 노을이 번져간다. 오늘도 작업량이 많다.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심야 카페로 향할 것이다. 24시간 카페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 새벽까지 작업을 하는 그 시간들.


심야 카페는 또 다른 세상이다. 낮의 카페가 활기참과 분주함으로 가득하다면, 밤의 카페는 고요함과 집중으로 가득하다. 각자의 사정으로 밤늦게 나와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 시험 공부하는 학생, 야근하는 직장인, 나처럼 작업하는 프리랜서들.


새벽 두 시쯤, 카페에 남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 고요한 시간 속에서 나는 가장 솔직한 글을 쓴다. 낮에는 미처 떠오르지 않았던 문장들이 새벽의 정적 속에서 피어오른다. 그 시간의 집중은 묘하게 달콤하다. 세상이 잠든 틈을 타 혼자만의 시간을 훔쳐낸 것 같은 배반감과, 고요함에 온전히 잠긴 나만의 세계에서 느끼는 깊은 만족감이 뒤섞인다. 형광등 불빛 아래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마저 특별해 보이고, 모니터 화면에 차곡차곡 쌓이는 문장들이 마치 보석처럼 빛나 보인다. 이 고독한 몰입의 시간이 내게는 가장 사치스러운 순간이다.


이런 일상.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평범한 하루가 무슨 특별할 게 있냐고. 매일 같은 카페에서, 같은 음료를 마시며,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하지만 나는 안다. 바로 이것이 내 작품이라는 것을. 늦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는 것, 어떤 카페를 갈지 고민하는 것, 결국 늘 가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 그 안에서 작업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 그리고 심야 카페에서 새벽까지 버티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루틴이고, 하나의 리듬이고, 하나의 작품이다. 프리랜서라는 삶의 방식을 택한 나만의 일상이라는 작품. 매일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 같지만, 실상 매일매일이 조금씩 다른 색깔을 칠해가며 완성되어가는 거대한 캔버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예술가가 아닐까. 각자만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어떤 사람은 회사라는 무대에서, 어떤 사람은 집이라는 작업실에서, 어떤 사람은 카페라는 갤러리에서.

스타벅스 구석자리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는 내 모습도, 심야 카페 형광등 불빛 아래 집중하는 내 뒷모습도, 모두 하나의 작품이 되어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평범해 보일 수 있지만, 내게는 가장 소중한 나만의 일상이라는 작품.


그렇게 우리의 평범은 별안간에 작품이 되어있을거다. 우리가 그것을 알아차리기만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