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마케팅 기획자로서, 까다로워진 나를 마주하며
예전에 석사를 중퇴하고 생명과학도에서 브랜딩/마케팅 기획자로 '업'의 전향에 대한 마음을 다지며 썼던 글이 있다. 그때가 2022년 9월 28일이었고, 이 글을 발행하게 되는 오늘이 2025년 9월 28일이니 정확히 3년이 지났다. 그때의 나는 좋아하는 '업'에 도전한다는 설렘과 기대로 가득했다. 물론 그 이전에 나에게 이런 삶의 기준을 다잡게 해준 가족의 아픔도, 또 그간 나름의 경력 단절(?)의 상황을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군 복무라는 시간도 있었고.. 실제 이 마케팅/브랜딩 분야에서 일한 경력은 1년 정도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왔다.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나는 조금 더 까다로워진 것 같다. 예전보다 훨씬 섬세해졌고, 완성도에 대한 기준이 올라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못 참는 것들이 생겼다.
브랜딩/마케팅 기획이라는 분야에 발을 담그고 일을 해나가면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점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처럼, 이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금씩 그 윤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예전의 나라면 '트렌디한 컬러 조합', '감각적인 카피라이팅', '눈에 띄는 비주얼 아이덴티티' 같은 표면적인 요소들에 감탄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분야에 첫발을 내딛을 때는 그런 것들이 전부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런 겉모습들 너머에 있는 더 깊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감각이라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취향을 넘어선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만나는 지점, 그 미묘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진짜 브랜딩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1년간의 실무를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브랜딩과 마케팅 기획이 결코 '수법'이나 '기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에는 온갖 브랜딩 매뉴얼과 마케팅 기법들이 넘쳐나지만, 그것들을 아무리 완벽하게 구사한다 해도 진정한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제로 그렇다. 그렇게해서 완성되는 것이라면 세상의 모든이들의 사업이 성공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은가?
진짜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 브랜드를 마주하는 사람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순간에 마음이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진정성 있는 경험을 설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브랜딩의 본질이다.
요즘 나는 회의실에서 "(그냥 재밌는 컨셉이라)요즘 트렌드가 이런 거니까", "(그냥 최신 유행이니)이런 기법을 써보면 어떨까요?" 같은 말들을 들을 때마다 속이 답답해진다. 그런 접근방식으로는 절대 사람들의 마음에 진정으로 닿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오히려 그런 겉핥기식 접근은 브랜드를 더욱 공허하게 만들 뿐이다. 중요한 건 무엇을 하더라도, 무언가를 하는 '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들이 쌓이면서 내 안의 기준이 높아졌다. 예전에는 그럭저럭 괜찮다고 여겼던 것들이 이제는 눈에 거슬린다. 진정성 없는 메시지,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은 인터페이스, 브랜드의 본질과 동떨어진 표현들... 이런 것들을 마주할 때마다 분명 사업을 하는 것인데, 이 사업의 흥망에 직결되는 책임자는 "왜 이렇게 대충 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상식적인 것에서 출발하는 기획이 가장 강력하다는 것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복잡하고 현란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본질에 충실한 단순함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단순함에 도달하기까지는 수많은 고민과 검증이 필요하다는 게 어려운 부분이다.
이 1년간 가장 크게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협업'에 대한 이해다. 처음에는 내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다른 팀원이 마케팅과 브랜딩에 대한 의견을 내면 마치 내 영역을 침범당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무의식중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곤 했던 날도 있었다.
하지만 협업이라는 것은 서로의 의견을 공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걸 깨달았다. 타인의 의견을 유연하게 흡수할 수 있어야 하고, 내 의견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더 나은 의견을 지지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디자이너가 마케팅 의견을 내는 것이 침범이 아니라 시너지라는 것을. 개발자가 사용자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월권이 아니라 더 나은 결과를 위한 제안이라는 것을. 지금은 누군가 내 아이디어에 반대하면 '내가 생각해도 좀 별로네' 하면서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마음가짐의 변화는 업무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예전에는 완벽한 기획안을 혼자서 만들어서 발표하려고 했다면, 이제는 오히려 초기 단계부터 다른 팀원들과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놓친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고, 결과물의 완성도도 훨씬 높아진다.
'세상의 많은 브랜드는 누군가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라는, 내 안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조수용 CD(Creative Director)님의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이 문장을 떠올리고 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단순히 브랜드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군가'는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 브랜드를 만나는 소비자일 수도 있다.
사실, 나 역시 이 일을 통해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생명과학도에서 브랜딩/마케팅 기획자로 업을 지향하게 된 것도, 표면적인 기법보다 본질을 추구하게 된 것도, 모두 보다 더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한 선택들이었다.
때로는 주변에서 "왜 굳이 어려운 길을 가느냐"고 묻기도 한다. 세상은 원래 다 그런 거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해도, 내가 믿는 것을 지켜나가고 싶다. 그것이 이 복잡하고 현란한 세상 속에서 '나를 나답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귀감으로 여기는 조수용 CD, 혹은 작가님(사실 이 분은 어떤 호칭으로도 정확히 담기 어려운 듯 하다)의 '일의 감각'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어떤 수법과 비법, 기술보다도 진정성 있게 무언가를 하면 사람들은 그 진심을 느낄 수 있다"는 문장이 내 마음 깊이 박혔다.
이제 나는 모든 프로젝트에서 이런 것들을 자문한다. "이 브랜드가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만들어내는 이 경험이 정말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지금 진심을 다하고 있는가?"
진정성은 어떤 기법이나 매뉴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그 브랜드의 가치를 믿고, 그것을 통해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런 진심은 결국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겨우 1년 경력이 벌써 말이 많네." 그런 시선이 있을 거라는 걸 안다. 실제로도 그랬고,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실무 경력으로는 1년이지만, 이 길을 선택하기까지 그리고 실제로 이 분야에 대해 고민해온 시간을 모두 합치면 3년이 넘는다. 군 복무 기간에도 나는 계속해서 브랜딩에 대해 생각했고, 좋은 브랜드들의 사례를 모아보며 나만의 관점을 키워왔다. 전역 후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고, 합쳐서 이 1년이란 기간은 그동안 쌓아온 생각들을 실전에서 검증하고 다듬어가는 시간이었다.
그 밀도 있는 시간들이 나에게는 충분히 의미 있었다. 매일매일 이 일에 몰입했고,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기 전까지 브랜딩에 대해 생각한 날도 많았다. 주말에도 이 분야 저 분야의 좋은 브랜드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경험을 소비자로서도 직접 체험해보았고, 책을 읽고, 케이스 스터디를 분석하고, 현업 네트워킹을 통해 조언도 듣고, 실패도 해보고, 작은 성공도 맛보았다.
3년 전 그 9월 28일, 생명과학도에서 브랜딩/마케팅 기획자로 전향을 결심했을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확실히 다르다. 더 까다로워졌고, 더 섬세해졌고, 더 본질을 추구하게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일이 더 어려워졌다고 할 수도 있다. 예전처럼 겉모습에만 만족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변화가 내게는 성장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이 분야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도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부르기 나름인 부분이 있다. 누군가는 그냥 마케터라하고, 누군가는 콘텐츠 기획자라고도 부르고.. 하지만 나는 '브랜드 경험 디자이너'라는 말이 스스로에게는 더 본질적으로 포인트를 짚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브랜드를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브랜드와 만나는 모든 순간의 경험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본질을 추구하는 브랜드 경험 디자이너로 성장해 나가고 싶다. 기법과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브랜드 경험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단 한 번뿐인 인생,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그때의 다짐을 이제는 더욱 구체적인 모습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그림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조금씩, 손을 더 뻗어, 손아귀에 쥐어나가는 내일을 생각하며.
다시 찾아온 9월 28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