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by 사공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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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때부터 자주 가던 은행이 있었다.


처음 방문한 이유는 단순했다.

적금을 들기 위해서였다.


이자가 조금 더 높다는 이유 하나로,

집과는 제법 떨어진 그 지점을

우리는 '굳이' 찾아갔다.




번호표를 뽑고

매칭된 창구로 향했다.


샛노란 머리색이

유독 눈에 띠던 그 직원분.


그날 처음 만난 그 직원분의 인상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분은 먼저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 어떤 상황인지,

우리가 알아보고 갔던 상품들 중

어떤 선택이 더 나을지.


타 은행에서 익숙하게 마주하던 방식과는 달리,

고객의 입장을 먼저 보려는 얼굴이었다.

그 진심이 내 마음에 깊게 닿았다.


그때 느낀 감정이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첫인상을 남기고

우리는 생각보다 더 괜찮은 적금에 가입했다.




그로부터 한 6개월쯤 지났을까.

뱃속에 아이를 품고

다시 그 은행을 찾았다.


"어머, 안녕하세요~?"


단번에 우리를 알아보는 눈빛이었다.

조금 놀란 마음에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저희를 기억하시네요~?"

수많은 고객 중에

우리를 기억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괜히 감사하게 여겨졌다.


"그럼요~
어? (불룩 나온 배를 보고)
아이가 생기셨나 봐요!
너무 축하드려요!"

그 한마디가 참 따뜻했다.

업무를 보는 중간중간

상냥한 미소로

임산부인 나를 챙겨주었다.




출산 후,

어쩔 수 없이 적금 하나를

중도해지해야 할 일이 생겨

다시 그 지점을 찾았다.


번호표는 신기하게도

또 그 직원분에게 연결됐다.


직원분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

우리
"며칠 전에 아이 낳고
조리원에서 잠깐 나왔어요~"


짧은 업무를 마치고

돌아서려는 순간,

그분은 우리를 향해 말했다.


몸조리 잘하시고요.
아이도 잘 키우세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신혼부부였던 우리가

어느새 부모가 되어가는 순간을

누군가 기억해주고 있다는 느낌.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분에게 많은 감사함을 느꼈다.




아이가 백일쯤 되었을 때,

이번엔 아이와 함께 은행을 찾았다.


담당 창구가 아니었는데도

그 직원분은

반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나와

우리가 있는 창구 밖까지 걸어나왔다.


생글생글 웃으며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인사를 건넸다.


그저 그 모습 하나로 마음이 꽉 찼다.




오늘은

그 지점에서 들었던

마지막 적금이 만기라

혼자 은행을 찾았다.


‘혼자 오면
못 알아보실 수도 있겠지.’
조심스레 생각했는데,


“안녕하세요!
아이 잘 크고 있죠?
몸은 이제 좀 괜찮으세요?”


역시나 기억하고 계셨다.


작은 안부를 나누고,
또 작은 사은품을 건네받았다.


큰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오래 남았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그 직원분의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곱씹게 되었다.


작고 사소한 행동 하나가

한 사람에게

이렇게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단골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구나.



신혼부터 임신, 출산을 거쳐

부모가 된 지금까지

약 3년.


그 은행을 찾은 횟수는

고작 네다섯 번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나를, 우리를 기억해 준 사람이 있었다.


요즘처럼

조금은 삭막해진 세상에서

이런 따뜻함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괜히 위로가 된다.


아직은

살아갈 만한 세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단골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단골은
기억으로 만들어진다.


예전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손님들의 얼굴과 취향을

기억하려 애썼던 적이 있다.


그 작은 노력이

다시 찾아오는 발걸음으로 이어졌다.


그게 비단

카페나 음식점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은행에서도,

어쩌면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문득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관계는 난로처럼-

혜민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 읽었던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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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는

너무 가까이 가면 뜨겁고,

너무 멀어지면 차갑다.


관계를 난로에 빗댄 이 문장은

그때 큰 여운을 남겼고,

지금까지도 내 마음속에

오래 남아 있다.


그 직원분의 태도는

마치 난로 같았다.


너무 다가오지도,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게.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에서

따뜻함을 건네는 방식.


나의 사소한 변화를

조용히 기억해 주는 것.


아마도 그것이

고객을 단골로 만들 수 있는

가장 큰 무기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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