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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친네, 빨리 죽지도 않아.

by 여유

진상.

자기네 집으로 할머니를 모신뒤

발길을 끊은 우리 집을 다시 찾았다.


할머니가 동생을 보고 싶어 한다는 핑계다.


동생과 나는 할머니를 보러 갔다. 난 굳이 할머니를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했다.

할머니는 방을 혼자 쓰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할머니의 요강은 한편에 자리 잡았다. 하얀 머리, 그날 내 기억 속 할머니는 골룸 같았다. 잔뜩 구부려진 허리.


무슨 일인지. 할머니가 정신이 나간 건지

공주야


하며 나를 불렀다. 왜 그랬을까?

날 부르는 호칭이 달라졌다.

도그 하우스. 개집으로 불리던 나는 갑자기 신분이 상승됐다.


천민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왕족으로 칭호 되었다.




친척동생들은 학원에 가고 없었다.

할머니에게 둘째 며느리는 아들을 둘이나 낳은 위대한 며느리다.


둘째 작은 엄마는 할머니 밥을 챙겨 가지고 왔다. 오봉이라는 작은 쟁반에 밥, 국, 김치, 나물, 도시락용 김.


소고기를 좋아했던 할머니였는데.


난 반찬을 보고 흠칫 놀랬다. 할머니는 동생과 식사를 했다.


나는 따로 둘째 작은 엄마방에서 밥을 먹었다. 부엌이라 할만한 공간이 있긴 했지만, 시멘트 바닥에 화장실이 붙어 있어 식사를 하기엔 힘든 구조였다.


작은 엄마는 당시 초등학생이던 내가 밥을 먹든 말든, 듣든 말든, 어린 나에게


노친네 꼴도 보기 싫다. 노친네가 주는 대로 먹지 매일 반찬투정이야?

요강도 그래! 그냥 걸어서 화장실 가면 될 것을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반찬투정과 요강에 대한 투정이다. 할머니는 요강을 쓴다. 할머니 요강 쓴 게 하루 이틀인가? 엄마는 결혼 후 1년을 제외하고는 할머니 요강을 10년 넘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치웠다.


그걸 몰랐나? 난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둘째 작은엄마의 투정이 나에겐 매우 작고, 하찮기 그지없었다. 어쩌라고.




할머니가 죽길 바라는 작은 엄마.

노친네, 빨리 죽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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