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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점

始發 셋째

by 여유

난 항상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난이 아니었다.

일곱살 때는 청주에서 가장 좋다는 최고급 유치원에 다녔고, 동생은 최초 어린이집을 다녔다.

어린 날의 삼 남매에게 썼던 비용은 직접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온 보상비였다.

아이를 어딘가에 맡겨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워킹맘의 마음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치아교정을 했었다.

그땐 치아교정이 대중화가 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창피하긴 했지만,

지금 교정하는 이들을 우리가 부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걸 보면 좀 살았구나 싶다.


초록색 칠판 오른쪽에 아래에 적힌 내 이름이 하루 종일 나를 괴롭게 했다.

미납자 명단.

수업료, 급식비, 우유 급식비.

행정실에서는 방송으로 나의 이름을 불렀다.

창피했다.


학교에서는 건강보험료 영수증을 갖고 오라고 했다.

건보료에 따라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가난한 애들은 혜택을 받았는데 난 받을 수 없었다.

건보료는 뭐지? 왜 난 혜택을 못 받지?



부유 속 가난이었다.

끝도 없이 나가는 할머니의 병원비. 보약. 택시비.

할머니를 돌보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소요됐다.


모든 것이 할머니 탓은 아니다.

엄마는 해외로 납품하는 일을 했었다.

잘 나가던 한국이 IMF가 터지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그로 인해 슬슬 지출을 절감했다.

1차는 나의 교육비를 줄이는 것.

그런데 할머니에게 드는 비용은 줄지 않았다.




셋째 도발.

셋째 시발.

셋째의 시발점은.

할머니의 재산에서 시작된다.

할머니한테 재산이 있다고?


뭔 소리야!?



시발점(始 : 비로소 시 發 : 필 발)

어떤 일이나 사물이 처음 시작되는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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