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대, 7대, 8대 종부 이야기
“얘야! 빨리 일어나~”큰 소리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휴~ 다행히 꿈이다. 언니 오빠가 많아 집안일 이라고는 통 해보지 않은 철없는 처자를 7대 종갓집의 종손인 청년이 좋다고 졸졸 따라다닌다. 결혼 적령기도 되었고 나 좋다고 목매는 남자 있을 때 선심 쓰듯 결혼해 주자 했다. 벚꽃이 화사한 봄날 시부모님 되실 분들을 처음 뵈었다. 어른들을 뵙고 온 날 밤 꿈을 꾸었다. 무서운 모습의 시 어머님께서 늦잠 잔다고 호통치며 깨우시는 꿈이다.
처음 본 며느리 될 처자에게 고되었던 당신의 시집살이 경험담을 이야기하신다. 당신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뜻인지 아니면 시집살이 안 당하려면 잘해야 한다는 말씀인지 잘 모르겠다. 옛말에 “시집살이도 당한 사람이 시킨다.”란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 왠지 남 이야기 같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 없고 철없던 처자는 덜컥 겁이 났다. 좋다고 따라다니던 청년에게 꿈 이야기를 하며 무서워서 결혼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청년은 그대로 부모님께 전한 모양이다. 걱정하지 말라 하신단다. 그렇게 시집살이 걱정은 잊은 채 그해 12월 가뭄에 단비가 촉촉이 내리던 날 결혼을 하고 만경 노 씨 집안의 7대 종갓집 종부라는 타이틀 하나를 더 얻었다.
12월에 결혼하고 그듬해 1월에 처음 맞이한 설 명절이다. 시골에 있는 시댁에 내려갔다.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 자랑이라도 되는 듯 “어머님 저 아무것도 해본 것 없으니 가르쳐주세요. 배워볼게요”하고 말씀드렸다. “그래 친정에서 잘했어도 가풍이 달라 다시 배워야 하니 천천히 배우렴” 하고 편안하게 말씀하시며 하나하나 가르쳐 주신다. 시댁에 갈 때는 고운 앞치마부터 챙겼다. 시댁의 가풍과 일을 배우는 것은 며느리로서의 당연한 역할이려니 생각했다. 어머님을 도와 설 명절에 차례 음식 준비를 다 해놓고 나니 남자들끼리 만 차례를 모신다. 일은 여자가 다 하는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하다. 밥도 남자들은 방에서 여자들은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먹는다. 그것도 이상하다. 시댁의 대청마루는 높았다. 시아버님께서는 높은 마루가 자랑이시다. 양반집은 마루가 높아야 상민들이 마루 아래 마당에서 문안 인사를 올리는 거란다. 저 높은 마루를 하루 세끼 밥상을 들어 나른 시어머님께서는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그래서 지금 다리도 허리도 편치 않으신 거다. 왜 시아버님의 눈에는 그런 것은 안 보이고 높은 마루가 자랑 꺼리실까? 새댁의 눈에는 이상한 것투성이다. 하지만 갓 시집간 새댁은 이 이상한 나라의 규칙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상하면 이상한 채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7대 종갓집에 8대 종손이 태어났다. 집안에 대를 이어 책임을 다했다는 자부심일까? 7대 종부는 이상한 걸 이상하다 표현하기 시작했다. 높은 마루는 시어머님을 저렇게 편찮으시게 만든 개선해야 할 문제 거리다. 여자들이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밥 먹어야 하는 불편함도 토로했다. 시부모님께서는 밤 8시면 주무시고 새벽 3시면 일어나신다. 부모님의 기침(起寢)을 느끼고 나면 편히 잠을 잘 수가 없다. ‘며느리는 시부모님 기침하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라는 친정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다.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새벽부터 깊은 잠을 못 자니 피곤하다. 이러다 시댁에 가기 싫어질까 염려된다. 바쁜 일 없는 날은 부모님께서 일어나셨어도 늦게까지 자겠다. 말씀드려 허락을 얻었다. 허락받은 뒤론 마음 편히 늦잠도 잤다. 이렇게 시부모님께 불편한 것을 말씀드리고 허락을 얻어 개선할 점들을 개선하고 보니 시댁이 그리 불편한 곳만은 아니었다.
그러다 8대 종부를 맞이했다. 7대 종부는 8대 종부에게는 나처럼 이상한 나라의 경험을 하지 않게 하자 생각했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불편했던 부분은 미리 이야기해 주었다. 차례나 기제사 불편하면 참석 안 해도 된다. 절도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고 미리 말해주었다. 설거지도 나름 민주적으로 했다. 8대 종부가 들어오고 첫 명절 시아버지까지 윷놀이로 지는 사람이 하는 걸로 정 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한 편을 먹고, 아들과 내가 한 편으로 윷놀이를 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편이 윷놀이에서 졌다. 시아버지는 설거지를 제법 잘한다. 며느리를 잘 가르치며 하도록 했다. 공평하게 정해졌다. 생각했다.
예쁜 옷이 물에 젖을까 봐 고운 앞치마를 8대 종부에게 건네줬다. 앞치마를 하지 않겠다고 거절한다. 며느리를 궂은일이나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구나! 하고 느낀 듯싶다. 설거지나 하는 사람이 아니란 뜻의 거부로 느껴졌다. 순간 낯선 시댁 부엌에서 혼자 일 하며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내가 왜 이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의 식사 수발을 들으며 이러고 있는지 낯설고 황당했던 새댁 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전생에 내가 이 집안에 무언가 대역죄라도 지었나? 하는 생각도 했었던 기억이다. 얼른 알아차리고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그 뒤로 며느리 혼자서는 설거지를 절대 시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항시 아들도 시아버지도 같이하도록 했다. 이제는 며느리도 혼자만 부당하게 설거지하라 하지 않음을 깨달았으며 옷 앞자락이 젖으니 불편했는지 스스로 앞치마를 잘 챙겨 입고 즐겁게 설거지를 곧 잘한다.
6대 종부는 불을 때고 난 부엌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타고 남은 불씨로 몸을 데우며 한 끼 식사를 때우는 것을 순응했지만 7대 종부는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7대 종부가 시댁에 가면 앞치마 질끈 동여매고 부엌으로 들어서서 일하는 것이 며느리라는 이름의 역할이라고 당연히 받아들였다. 8대 종부는 시댁이란 곳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와 주방일을 해야 하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7대 종부도 몰랐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고가 변하는 것까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다. 7대 종부는 8대 종부를 맞이하고 나서야 6대 종부도 나름 7대 종부에게 당신이 겪었던 불편한 시집살이를 겪지 않게 하려고 마음을 써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7대 종부도 8대 종부를 맞이하고 처음에는 지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이야기해 주며 뭔가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7대 종부가 겪었던 지난 이야기는 8대 종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시대에 맞지 않는 이야기란 걸 알았다. 7대 종부도 6대 종부가 지난 이야기를 해주실 때 왜 그렇게 사셨을까? 의아하고 이상했듯이 8대 종부도 그럴 거라는 걸 알았다. 이제는 지난 시절의 이야기로 가르치려 하기보다는 새롭게 변화하는 환경과 사고를 같이 알아가며 동반성장 하는 동료적인 사이로 지내려 노력한다. 먼저 가신 시어머님께 철없던 며느리의 행동을 이해해 주시고 기다려 주셨음에 감사드리는 마음과. 지난 세대를 살아온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지혜로운 나의 며느리에게도 고마운 마음이다. 한때는 며느리였고. 지금은 시어머니로서 나의 자리와 내 역할을 인지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려 노력하며 오늘도 깨달음의 시간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