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r Jun 20. 2024

수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


점심시간이 되어갈 때쯤 메시지한통... 함께 점심을 먹자고 연락이 왔다.

너무나 좋아하는 언니 연락에 내가 나를 보지 못했지만 내 얼굴에는 붉은 동백꽃이 활짝 피었을 것 같다 

사실 한국에 와서 지금 사는 파주로 이사 오게 된 것도 언니 때문이다.

언니는 산속 이쁜 대안학교와 교회를 부군 목사님과 함께 섬기고 있다.

외국에서 국제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이 한국에 와서 일반 학교에 적응을 힘들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쉬움이

있었기에 이 예쁜 산속 대안학교에 입학을 시키려 이사까지 결정을 하게 되었다.


우선 나는 언니와 통화를 한 후에 학교 근처에 갈치조림집으로 예약을 하고 시간을 맞춰 집 나섰다. 

5월이라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에 시원한 바람이 기분이 좋아 차문은 내리고 션루프까지 열며 라디오에 흘러나오는 모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따라 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나오면 논밭에 축사들이 있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살았던 나는 이곳에 이사 온 후 운전하는 것이 좋아 아이들 스쿨버스도 신청하지 않고 대신 내가 직접 픽업을 하고 있다.

웃픈 일은 요즘 들어 좋아하는 운전을 아이들 픽업 어쩌다 가는 대형 마트 가는 게 전부이다.


기분 좋게 식당에 도착했다. 전통 한옥 건물에 마당이 크게 있는 식당. 이런 곳에 식당이 있나 싶을 만큼

논밭과 축사들 컨테이너 창고들이 있는 곳에 있다. 이곳은 예전에 한두 번 언니소개로 와본 곳이다.

미리 주문해 놓은 갈치조림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시간이 길어졌다.

음식도 맛있지만 기분 좋은 수다. 내 말을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내 말이 옮겨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는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는 언니를 알기에 음식만큼이나 수다가 맛이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쉬운 마음에 근처 언니가 알고 있는 운전할 때는 보이지 않았던 축사 앞 너무나 예쁜 카페를 가게 되었다. 작은 화분이 곳곳에 있고 소품 하나하나가 아기자기 한 카페였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역시나 나의 사교성 없는, 관계가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대화였다.

예민하기도 하고 늘 교회 안 소그룸모임을 가지고 나면 에너지 소모가 커서 집에 돌아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위 있게 된다고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늘 협소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셋보다 둘이 좋고 둘보다 혼자가 편한 내가 엄마가 되고 그럴 수만 없기에 사람들을 만난다.


언니는 관계 속에 늘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언니는 이런저런 작은 일에도 대응하는 방법이 역시나 달랐다. 대화 중 언니가 집에 통화해서 아이들 스케줄을 챙겨줘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 같다.  

언니는 요즘 자주 깜박깜박 잊어버린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니는 자녀들 말고도 교회 여러 가지 경조사나 노회모임, 신방..... 바쁜 걸로 안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한 집이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지하철역이나 병원등 아이들 픽업도 돕고 계신다고 하셨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스케줄을 물어보시고 집에 "동생이 있는지 거실을 봐줄래?" 언니의 물음... "지금 그럴수 없어요" 대답인 듯했다. 보통은 방문 열고 한번 보면 되는 일인데 화를 내거나 뭐 하고 있는 중이냐 물어볼 텐데 언니는 " 아하~ 그래 그렇구나 알았어 엄마가 동생에게 전화를 해볼게..."라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언니에게 물었다. 방문만 열어 보면 되는 일을 밖에서 전화를 했으면 급한 일 일수 있는데 목소리 한번 커지지 않고 그렇게 전화를 끊을 수 있냐고... 언니는 그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그 말 그대로 믿어주고 존중했을 뿐이라고 오히려 나를 보며 웃는다.

어쩌면 내가 언니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런 것일까? 인격적인 존중과 배려.... 언니의 그 여유로움이 부러웠다.

관계를 생각하며 나이 불문 인격적인 배려와 말 그대로 받아드려 주는 것...

언니와 모처럼 수다가 나를 돌아보게 되고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었다. 대화를 하다가 잠시 밖을 보니 꽃이 보였다. 꽃이름이 마가렛트라고 알고 있었다. 대화가 잠시 멈춘 시간 같은 시선 속에 언니가 꽃을 보며 "나는 이 꽃을 계란 꽃이라고  한다"라는 말에 나는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보니 내가 좋아하는 빨간 머리 앤이 생각이 났다. 곳곳에 이름을 붙여 이야기하는 앤...

차를 마시고 나오며 카페 앞 주차장 화단에 피어있는 꽃을 보며 앤과 다이애나가 되어보는 상상을 했다. 아줌마들의 수다가 소녀의 수다로 바뀌는 것 같았다. 어제 비가 많이 내려 하늘은 평소보다 파랗고 작은 조각구름이 하늘을 더욱 이쁘게 만들었다.

밤새도록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쉬움이 남는 수다가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 알기에... 우리는 서로의 차를 타고 시골길을 빠져나왔다.


돌아오는 길 아이들을 픽업하고 수다라는 영양제를 먹고 온 듯 몸도 마음도 가볍고 딸아이의 이야기에 자꾸만 웃음이 난다. 마음이 꽃밭이면 듣은 말도 꽃이 되어 미소라는 향기를 품게 되는구나....


 


작가의 이전글 아이스커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