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회자정리 (會者定離)
창밖에 햇살이 병실 안으로 들어온다. 소정이가 누워 있는 곳은 병원이었다.
"정신이 드니?..." 소희 엄마가 소정이 곁에 있다.
"제가 왜 여기 있어요??" 소정이는 꿈같은 지금의 상황이....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듯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주도에서 둘은 둘만의 졸업파티를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교통사고가 났다고 한다.
"소희는요...? 소희는 어디 있어요??" 소정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희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소희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어...."
소정이는 어둡고 긴 터널에 갇혀버린 듯했다. 병원에서 하루하루는 살아 있어도 사는 게 아니었다.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어린 날 이유 없이 엄마에게 목이 졸려 죽음 앞에 숨을 몰아쉬던 그때의 절망이 매일 매 순간 소정이에게 찾아왔다. 아니 그보다 더 아프고 그보다 더 슬펐다. 어쩌면 소정이에게 소희는 소정이가 사는 세상이었다.
긴 시간 소희는 잠을 자는 듯했다. 졸업식.... 소정이는 소희가 없는 졸업식에 가지 않으려 했지만 소희엄마의 부탁으로 함께 졸업식에 참여했다.
4년의 행복하고 소중했던 시간을 봄날에 꽃바람처럼 다가온 소희가 옆에 없다....
집중 치료실에 있는 소희에게 소정이는 졸업장을 안겨 주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소희 이불을 적시고
소정이는 소희와 함께하는 모든 것을 잠시 소희침대 한편 놓아두고 살아내야 했다.
소정이는 병원 근처 복지센터에 취업을 했고 일하는 시간 외 시간은 늘 소희 옆에 있었다.
소희엄마와 소정이가 교대로 소희 곁에 함께 했다.
병실에서 점점 앙상하게 말라가는 소희를 닦아주고 굳어가는 소희의 팔,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떨리는 목소리... 소정이가 소희를 주무르며 속삭이며 말했다. "소희야.... 무슨 꿈을 꾸는 거니... 내 꿈에도 한 번만 만나주러 오지 않을래....? " 소정이는 곧 쓰러질 것 같았다.
소희엄마는 그런 소정이가 걱정이 되었다. 이제는 가족이 되어버린 소정이...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우선 소정이가 잠시라도 편안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병원과 직장 가까운 거리에 집을 옮겨 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소희 가족들과 소정이는 소희를 소희 동생이 있는 하늘나라로 보내 주어야 했다. 그렇게 반짝여야 하는 시간 소정이는 제주도에 소희와 함께 멈춰 버린 듯했다.
두 딸을 하늘나라로 보낸 소희 부모님은 소정이를 딸처럼 생각하셨다. 그렇게 함께 아파했던 시간 은 서로를 더욱 각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소정이도 주말이면 강원도에 내려가 가든 일을 돕고 소희부모님에게 소희를 대신할 수 없지만 딸이 되어 드렸다. 소정이는 일상을 찾아갔다. 늘 소정이는 마음으로 소희와 함께 했다.
소정이의 세상은 누구도 들어올 수 없이 소희로 가득했다.
소정이의 시간은 세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듯했다. 더딘 듯 빠르게.... 빠른 듯 더디게....
소정이는 직장에서 복지사라기보다 행정직으로 사무보조일을 더 많이 했다. 센터일은 그리 힘든 일은 없었다. 센터 막내로 들어간 소정이는 선임들의 배려와 사랑을 받았다.
사무실에 남진이란 남자 직원이 있었는데 소정이를 많이 좋아하고 있었다. 사실 소정이만 빼고 직원들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퇴근 후 병원으로 달려가는 소정이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남진은 고아원에서 자랐다. 늘 밝고 명랑한 남진은 고아원에서도 늘 인기가 있었다.
태권도를 잘하는 남진은 어릴 적 고아라고 놀리는 학교 친구들을 몇 번 혼내주는 바람에 고아원 원장엄마의 속을 태우기도 했지만 늘 원에 동생들을 잘 챙기는 정이 많고 따뜻한 아이였다.
남진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고아원에서 자라 부모님의 기억은 없지만 부모 없는 아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 귀티 나는 외모에 밝은 성격과 상위권 성적을 놓치지 않았다.
여러 번 입양의 기회가 있었지만 남진은 그때마다 입양을 거부했다. 원장엄마는 그런 남진을 억지로 입양을 보내지 않았다. 사회복지사가 된 남진이 고아원에서 일하길 바랐지만 원장 엄마는 사회 나가 많은 경험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고 오라고 조건을 붙였다.
원장엄마 마음은 남진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사랑 많고 남진처럼 밝고 명랑한 여자를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 남진이 늘 주말이면 고아원에 와서 동생들과 함께 했다.
눈이 내리는 겨울이 이었다. " 소정 씨 제가 아는 건강식 잘하는 집이 있는데 우리 같이 가서 밥 먹을래요?"
남진이 용기를 내고 소정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놀란 소정이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어느새 소정이 눈망울에 눈물이 차올랐다. 소정이는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남진에게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저녁 창밖에 불빛에 더욱 반짝이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남진과 소정이는 창가쪽자리에 앉아 있었다. 남진이 말한 건강식은 설렁탕이었다. 운명처럼 느껴진 남진이 소정이는 싫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여느 연인들처럼 함께 했다.
소희 이야기를 들은 남진은 소정이와 함께 소희가 있는 납골 공원에 함께 가기도 했고 강원도 소희네 가든에 가서 소희 부모님께 이제는 소정이에게도 부모님이 되어주신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기도 했다.
누구보다 기뻐해주시고 축복해 주셨다.
물론 원장엄마도 소정이를 이뻐해 주셨다. 평범한 집안에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아니었지만 남진 눈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둘은 그렇게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