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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r Oct 08. 2024

지옥에서 태어난 아이

5. 홀로서기 [단편소설]

소정이는 한동안 그렇게 잠을 잤다. 아무런 의욕도 욕구도 없는 그러나 태어나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쉼이고 가져보지 못한 평안이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우선 복지센터에서 가져다 놓은 나랏미로 밥을 지어 어디선가 보내준 김치를 꺼내 밥을 먹었다. 그리고 바로 소정이는 집을 나섰다. 병원 진단서며 병원입원확인서등 서류를 때고 학교에 갔다.

병원에 한 간호사가 예전에 일했던 성형외과 명함을 주며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간호사들은 소정이에게 과한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물론 보통은 호기심의 눈빛이었다.

소정이는 미용실에 들러 그동안 하나로 질끈 묶고 다닌 머리카락을 단발커트하고 버스를 타고 학교까지 가는 길... 이제 여름이 시작이 된 듯하다. 거리마다 초록잎으로 물들어 있었다.

파란 하늘 따스한 햇살이 소정이 눈에도 들어왔다. 학교에 도착해 캠퍼스를 걸으며 처음으로 대학의 이곳저곳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 행정실에 들어선 소정이는 장기결석의 관련 서류를 제출하였다. 다행히 결석 처리는 되지 않았다. F학점 겨우 면한 샘이다. 행정실을 나오는데 소정이에게 한 여학생이 다가온다.

" 김소정 씨?? 무슨 일 있었어요? 저는 같은 과 한소희이에요."

그렇게 소정이에게 소희는 다가왔다. 그동안 병원에 입원하면서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소희는 학교 앞 정말 맛있는 건강식 음식점이 있다며 이미 소정이에게 팔짱을 끼고 음식점으로 이동하는 듯했다. 말없이 소희를 따라간 소정이는 음식점이 아닌 학교 앞 작은 빌리로 가게 되었다.

" 소희 씨 여기는 음식점이 아닌데요......" 소정이가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기 우리 집에요.... 사실 우리 엄마가 엄청난 건강식 요리사예요." 소희는 멋쩍은 듯 웃으며 소정이를 집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어제 엄마가 붙여 주신 음식이 있는데 우리 같이 밥 먹어요"

소정이는 어리둥절했지만 그런 소희가 싫지 않았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꽃바람처럼 소희는 소정이에게 다가왔다. 작은 식탁에 이것저것 반찬을 꺼내 접시에 담았다. 향긋한 오이무침, 각종 견과류가 들어간 멸치볶음, 향긋한 깻잎 김치, 메추리알이 들어간 소고기 장조림, r감자조림... 국은 뽀얀 사골국인 듯하다. 거기에 소희가 계란 프라이를 두 개 더해 작은 식탁이 한상 거하게 차려졌다.

소희는 강원도에서 서울로 유학을 왔다고 한다. 조부모님과 부모님 함께 살다가 타지에 와서 소정이를 보며늘 말이 없고 조용한 소정이에게 눈길이 간 모양이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은 소희는 여동생이 있었는데 소아암으로 하늘나라에 갔다고 한다. 소정이는 어릴 적 함께 놀런 동생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얼굴에 흉이 생겨 고개를 자꾸만 숙이는 소정이에게 소희는 피부 화장품을 선물했다.

소정이 얼굴에 흉터는 아물어 가며 진한 파운데이션을 바르면 어느 정도 가려지니 생각했던 거보다 절망 적이지 않았다.

소정이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모두 소희에게 말할 수 없었지만 엄마와 둘이 살다가 엄마의 가정 폭력으로 힘들게 지내다 얼마 전 엄마가 실형을 받게 되면서 혼자 살고 있다는 정도만 알았다. 소희은 사회복지 과를 다녀 가정 내 폭력이나 차상위계층의 관련 여러 사례를 배우고 있었기에 그중 하나의 사례로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에는 많은 아이들이 악마 같은 어른들에게 유린당하며 살기에... 그저 짐작을 할 뿐이다.

소정이는 태어나 처음 생긴 단짝 친구가 마치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 같았다. 소희의 모든 것이 빛나 보였고 그런 빛나는 소희가 자신의 친구라는 것이 때론 믿기지 않았다.

둘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말이 없는 소정이는 소희의 이야기가 늘 재미있었다. 소희는 조용하고 말이 없지만 늘 덤벙거리는 자신을 챙겨주는 소정이가 좋았다.

 그렇게 소정이의 대학 생활은 꿈같이 흘렀다.

학교를 다니며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하고 때론 소희와 하루종일 종로교보문고에서 책을 보고 종로 거리를 걷고 그렇게 걷다 동대문까지 걷게 된 둘은 시장 안에 국숫집에서 국수를 먹고 젊음의 소지품 같은 쇼핑몰을 구경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사춘기 소녀들처럼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즐겁고 재미있었다.

소정이는 가끔 악몽을 꾸거나 날이 흐린 날이면 얼굴의 상처가 가렵고 얼굴 근육이 경련이 일어나 불편했지만 꿈같은 대학생활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어린 날 상처는 그렇게 소정의 삶 속에 하나씩 지워져 가는 듯했다.


소희네 집은 유복한 가정이었다. 부모님은 강원도에서 소희 조부모님이 하시던 가든을 이어 운영하고 계셨다. 방학이면 소희는 가끔 소정이를 데리고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가든에 함께 갔다. 소정이는 소희의 부탁으로 방학 동안 소희네 가든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물론 소희네 가든에 아르바이트생이 꼭 필요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소희 동생을 많이 닮은 소정이는 소희 부모님의 남다른 사랑을 받기도 했다.

소희네 집에서는 소정이를 마치 막내딸처럼 대해 주셨다. 소희와 소정이는 늘 함께 했다.

그동안 고단하고 힘들었을 소정이 삶이 보상을 받는 듯했다. 소희를 통해 소정이는 세상으로 한 발짝씩 나오고 있었다. 때론 소희집에서 함께 라디오를 밤새 들으며 사연을 보내기도 하고 밤새 취업이야기…같은 과 인기 많은 과대 오빠 이야기를 하며 여느 소녀들처럼 소희와 소정이는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어느덧 4학년 겨울방학.... 소희는 소정이와 함께 여행을 계획했다. 제주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소정이를 위해 소희가 계획한 여행이었다.

태어나 처음 타보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했다. 운전을 하는 소희는 작은 경차를 빌려 예약해 놓은 경치가 좋은 펜션으로 이동했다. 작은 펜션이었지만 바닷가를 바라보는 예쁜 온수풀이 있는 펜션이었다.

둘을 짐을 풀고 근처 카페에 가기로 했다. 카페에 도착한 둘은 빵과 커피를 마시며 창밖 겨울바다를 보며 행복했다.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렇게 함께 하는 것만으로 이미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늘 붙어 있지만 여행은 또 달랐다. 3박 4일 동안 함께 가볼 만한 카페며 식당을 체크했다.

소희와 소정이는 함께 바닷가를 걷기로 했다. 추운 겨울이지만 추운 것도 모르고 둘은 걸었다.

펜션으로 돌아온 소정이와 소희는 온수풀에 들어갔다. 바다를 바라보며 따뜻한 온수풀에 있으니 마치 영화 속 여배우가 된 느낌이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소희야 난 가끔 두려워 너를 잃어버릴까 봐...." 소희는 소정이 말에 멋쩍게 웃으며 " 그러니까 내 옆에 꼭 붙어있어 잃어버리지 않게...." 소희는 소정이에게 가족이 되어 주었고 소희에게 소정이는 어느 날 떠나버린 동생이 돌아온 듯했다. 서로에게 소중했다.

둘은 깊어가는 밤 서로의 천사가 되어 마음에 작은 등불을 비춰 주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소희와 소정이는 두가 먼저라고 할거 없이 일어나 소희는 어제저녁 마트에서 사 온 빵으로 토스트를 만든다. 소정이는 어제 카페에서 사 온 핸드드립 커피를 내렸다. 둘은 창가 쪽 소파에 앉아 함께 아침을 먹으며 일정을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일정은 맛집이나 카페였고 오후에 바닷가 쪽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저녁은 근사하게 호텔에서 디너를 서프라이즈로 소희가 예약했다. 미리 하는 졸업 파티 같은 거였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함께 길을 나선 두 사람은 인터넷으로 미리 알아본 그래픽 영상이 재미있다는 아이비가든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유명연예인이 운영하는 바닷가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함께 바닷가 둘레길을 걷기로 했다가 그날따라 바람이 불어 추워진 날씨에 드라이브를 했다.

그렇게 둘의 꿈같은 시간은 바다에 반짝이는 윤슬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저녁 무렵 예약된 호텔로 차를 돌렸다. 완벽한 하루였다. 호텔로 들어서니 반듯하게 잘 차려입은 직원이 자리를 안내한다.

호텔에서 음식을 처음 먹어 보는 소정이는 소희를 따라 포크와 라이프를 들고 마치 소꿉놀이를 하듯 즐거웠다. 입안에 마치 혀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소정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작고 소중한 새싹이 피어오르는 듯

간질간질 몸 안에 세포가 함께 춤을 추었다.

그렇게 둘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고 행복한 저녁을 함께 하며 내일을 그렸다. 졸업을 하고 서로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 비슷한 시기에 애인을 만나고 비슷한 시기 결혼을 하자며 끝없는 내일을 함께 꿈꾸며 가장 밝고 빛나게 반짝였다.

그리고 아쉬운 식사자리는 마치고 펜션으로 돌아가는 길..... 가장 완벽하게 행복하게 빛나던 그날 소정이와 소희는 둘의 마지막 식사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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