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自繩自縛(자승자박)
소정이가 아이와 병원에 다녀왔다. 민정이도 고단했는지 소정이 품에서 잠이 들었다.
원에 손님들은 다 돌아가고 아이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소정이는 스스로 자신을 옭아매고 있었다. 끝없는 엄마의 불신은 점점 걷잡을 수 없었다.
그런 소정이를 바라보는 진이 또한 걱정이 커 저만 같다.
잠을 자는 민정이를 보며 소정이는 끔찍했던 어린 날이 자꾸만 스스로를 괴롭히고 자기 연민에 한없이
빠져 들게 했다.
소정이 방 창문으로 푸른빛이 들어온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소정이는 커피물을 끓인다.
인기척에 진이도 일찍 일었다. 식탁에 앉아 설탕과 프림이 들어가지 않은 검은 커피 알을 넣고
마신다. 진이와 소정이가 즐겨 먹는 커피다.
밤새 잠을 못 잔 소정이를 바라보며 진이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 상담을 받아 보는 건 어때??" 진이는 소정이가 아이가 태어난 이후 불안감 커져가는 소정이가 안쓰러웠다.
진이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린 날 채워지지 않은 사랑의 욕구와 학대는 어른아이가 되어
스스로 어린 날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커피잔을 내려놓은 소정이는 조금은 날카롭고 가는 목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하듯 " 내가 알아서 할게......"
소정이 답지 않은 대답이었다. 집안에 냉기가 도는 듯하다. 창밖에 어김없이 새들이 찾아와 일찍부터
지저귀는 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요란하다.
알 수 없는 가슴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엄마의 불신으로 울화가 소정이를 점점 병들게 하고 민정에게 집착하게 만들고 있었다.
민정이가 이번달부터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했다. 소정이도 민정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원장실로 출근한다.
독립하는 아이들과 입소하는 아이들 그 밖에 후원서류 등등 원은 늘 바쁘게 돌아갔다.
소정은 진이를 도와 대부분 원장실에서 일을 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어린 아이들이 있는 사랑방으로 들어갔다. 보통 점심은 사랑방 아이들과 같이 먹는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있는 그룹은 사랑방이라고 부른다. 진이와 소정이가 사랑방이 들어 서니 소정이 엄마가
국을 담고 었었다. 진이 옆에 앉아 밥을 먹는데 소정이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소정이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바로 화장실로 달려간다. 소정이는 먹은 음식을 토해 버렸다. 소정이는 이후 원에서 먹은 식사를 특별한 날이 외 하지 않았다. 그런 딸을 바라보며 소정이의 엄마는 늙고 병든 자신을 지금처럼 대하는 딸년이
괘씸했다. 하지만 겉으로 띠를 내거나 말을 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소정이는 점점 말라갔고 별체 도어록과 cctv 가 추가 되고 불안함에 민정이가 유치원에서 하원을 하면 민정이를 데리고 별체에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늘 원장 오빠에게 관심이 많았던 미란이는 그런 소정이를 보며 소정이가 변했다고 생각하고 마음속에 소정이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옭아버린 고통은 주변인에게 까지 전염되고 있었다.
원에 아이들이 소정이가 아이들 낳고 자신들을 피하고 거리를 둔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그런 생각이 자연스러웠다. 세상 속 많은 사람들이 고아원에 산다고 하면 거리를 두고 피하니 말이다.
가난과 불행이 마치 전염병이라도 되듯이 말이다.
세상을 너무 일찍 배워 버린 아이들은 상대의 작은 행동에도 민감하게 받아 드리며 금세 마음을 닫아 버린다.
소정이는 민정이가 먹는 음식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정작 소정이는 늘 바게트 빵에 커피가 전부였지만
민정이에게는 직접 시장을 보고 되도록 양념을 하지 않은 건강식을 먹게 했다. 물론 소정이의 그 유별한 행동은 원 아이들과 더욱 거리를 만들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민정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민정이는 국민학교를 졸업하는 마지막 세대였다. 진이와 소정이는 민정이 입학식에 함께 했다. 오른쪽가슴에 하얀 가제수건을 옷핀으로 꼽고 까까머리에 귀여운 남자아이들과 요란하게 머리를 땋은 아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일렬로 앉아 앞에 나와 함께 동요를 지도하시는 선생님을 열심히 따라 한다. 진이와 소정이는 열심히 동요를 부르며 반짝 반짝 빛이 나는 민정이를 바라보며 흐뭇했다. 그도 잠시.... 소정이 귀에 한 여자의 소리가 들린다. " 저기 고아원에서 나온 모양이야..." " 어디? 어디? " 자원봉사로 따라왔던 한 학부모가 진이를 알아본 모양이다.
소정이 가슴이 덜렁 내려앉았다. 얼굴이 웃긋불긋 빨갛게 달아올랐다. " 괜찮아?? 민정엄마?? 괜찮아??"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 어찌 된 일이야" 소정이가 몸을 일으키며 진이에게 묻는다. " 당신 쓰러 졌었어.... 의사 선생님께서 당신 영양실조도 심각하고 빈혈이 도 심해서 영향제를 처방해 주셨어...."
소정이는 진이의 이야기를 듣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한동안 잘 먹지도 못하고 잠도 잘 못 잤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 소정이를 바라보며 진이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널.... 어쩌면 좋니... 소정아...." 진이는 잠든 소정이 손을 잡고 앉아 소정이 바라보았다. 간호사의 배려로 옆침대에 민정이가 잠들어 있었다.
소정이는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고 있었다. 스스로를 꽁꽁 묶어 한 발짝 한 발짝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소정이는 앞으로 다가올 비극을 어쩌면 그 무렵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진이는 훗날 생각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