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母 女(모녀)
소정이가 어미가 되어갈수록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해할 수 없음이 더욱 미움과 원망으로 커져 갔고 민정이를 지켜야 한다는 이상에 빠져 들게 했다.
병원을 다녀온 소정이는 진이에게 지속적인 이사를 요구했다.
" 민정이 입학식 때 다른 엄마들이 고아원에서 온 아이라고 수근 거리는 소리를 들었어...."
소정이의 말에 진이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소정이에게 진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고아원에서 사는 아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지만 민정이가 학교에 입학을 하면서 어린 날
이름 한번 불려 본 적 없이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던 어린 날 그 어린 여자 이아를 소환하는 엄마와 매일
만나는 것이 힘들었다. 그런 소정이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엄마는 그런 딸을 보며 그저 박복한 자신의
팔자만 한탄하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괘씸한 마음으로 소정이를 지켜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원생들과 소정이의 관계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진이 또한
소정이를 점점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소정이는 원일에서도 소홀했다. 아침에 민정이 학교를 보내고 집안 청소를 하고 민정이가 먹을 음식을 따로 만들었다. 그런 소정이 모습은 그동안 무조건 소정이 편이었던 진이를 힘들게 하는 행동이었으나 소정이는 애써 진이를 모른 척하였다.
그럴수록 소정이를 둘러싼 틈은 처음과 달리 점점 사이가 벌어지고 있었고 모른 척할수록 걷잡을 수 없이 벌어져 결국 무너질 것을 알지만.... 과거의 원망과 현제의 의심을 멈출 수 없었다.
" 소정아 이야기 좀 하자..." 그동안 말이 없던 진이가 소정이를 원장실로 불렀다.
이사를 가자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아무 말이 없던 진이가 부르니 내심 기대를 한 소정이가 한층 밝아진 얼굴로 원장실에 들어섰다. 진이는 소정이를 보고는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허브티를 두 잔을 가지고 앉아
소정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 여보 결정 한 거야?? 우리 이사하면 당신이 원하는 둘째도 낳고... 별체는 방이 원룸이라 앞으로 소정이 공부 방도 만들어 주려면 너무 좁아 "
진이는 허브차를 한목 음 마시며 소정이를 바라본다. 그렇게 한참을 말이 없는 진이를 바라보며 소정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여보 이사 문제로 이야기하자는 거 아니었어?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어 민정이도 생각해야지...."
" 여보 내 말 듣고 있어? "
말이 없던 진이가 입을 열었다.
"소정아.... 우리가 결혼할 때 우리는 원에 있는 아이들을 사랑하며 이 아이들에게 진짜 가족이 되어 주기로 했어... 집이 좁아 이사를 하더라도 이렇게 이사하는 건 무리야... 지금 원에 있는 아이들이 소정이의 이런 행동을 힘들어하고 상처받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어?"
숨을 크게 돌린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개인 방 없어 대신 공부할 수 있는 공부방을 만들어 줬고..."
진이는 낮은 목소리로 소정이에게 최대한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니.... 그럼 지금 민정이를 원에서 키우겠다는 거야??" 소정이의 목소리가 조금은 커졌다.
소정이는 진이의 말이 들이지 않았다. 이해도 하려 하지 않았다.
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소정아 민정이를 원에서 키우자는 이야기는 아니야... 다만 지금 우리 형편에 이사를 하고 출퇴근을 하는 것이 힘들 거야 그리고, 우선 소정이가 원하면 별채를 리모델링 공사를 해서 민정이 방을 만들어 주는 방법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저번에 원 리모델링 했던 업체에서 별채를 공사해 주겠다고 연락도 왔고...."
소정이는 알았다. 진이에게 더 이상 이야기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둘이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원장실 밖으로 큰소리가 나는 날이었다.
소정이가 벌떡 일어나 원을 나왔다. " 할 이야기 다 한 거지??"
별채로 돌아온 소정이는 잠이든 민정이를 바라보며 속이 상한지 눈물이 흘렀다. 원에 남아 진이 또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늦은 저녁 소등은 이미 한 상황이었고 어둠이 내려앉은 고아원 복도 끝 여자 아이들의 소근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미란이다.
" 거봐.... 소정언니는 이제 우리들과 민정이가 어울리는 게 싫은 거야.... 처음부터 나는 아니었다고"
복도 끝이 고등부 방이다. 미란이는 원장실 앞에서 원장 오빠와 소정이가 하는 대화를 몰래 들고 있다가
고등부 방에 들어와 주절주절 오빠 언니들에게 전달을 했다.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시킨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미란이 입을 막는 이도 없었다.
주말, 원 대청소를 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부터 진이가 원에 클래식 음악을 크게 들었다. 아침을 먹고 각자
알아서 청소 도구를 챙겨 청소를 시작하는 듯하다.
진이는 오전에 청소를 빨리 끝내고 오랜만에 축구를 하자고 제안했고 아이들은 신이 났다.
운동장이라고 해야 작은 뜰이지만 몇몇 퇴소를 앞둔 아이들이 나와 운동장 쓰레기 줍고 큰 돌덩이가 튀어나온 곳을 정리하며 걸어 다녔다.
토요일이라 민정이도 운동장에 나와 걸었다. 소정이는 민정이가 운동장에 나간 줄도 모르고 집안 청소를 한다. 민정이는 반가운 오빠 언니들이지만 대면대면 어색하게 다가간다.
" 아악~" 민정이가 넘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조용히 등을 돌리고 원으로 들어간다.
민정이는 너무 아프지만 자신이 크게 울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적인 생각에 꾹 참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은 원장실에서 진이가 지켜보고 있었다.
진이는 밖으로 나와 민정이를 안고 원장실로 들어왔다. 무릎이 까져서 피가 났는지 옷에 피가 묻었다.
우선 진이가 구구급 약통에서 빨간 소독약을 꺼내 발라 주었다.
집에 민정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챈 소정이가 민정이를 부르며 원장실로 들어왔다.
"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진이가 대신 대답을 했다 "운동장에서 넘어졌어...." 진이의 말이 들이지 않은 소정이가 민정이를 보며 쏘아붙였다. " 누가 밀었어? " "아니..." 아이의 대답에 화가 난 듯 " 앞을 똑바로 보고 다녀야지.... 왜 넘어져..." 속이 상한 소정이가 민정이를 데리고 원장실을 나갔다.
시안 폭탄 같은 소정이 옆에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다. 물론 소정이 엄마 또한 소정이가 원에 오면 주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진이가 별채로 와서 소정이를 부른다. "오후에 리모델링 업체 직원이 올 거야... 공사 날짜 잡히면 당분간 원에서 지내야 하니 짐을 미리 좀 정리를 해야겠는데.... 정인이랑 수진이를 부를까? " 정인이와 수진이는 퇴소를 앞둔 큰 원에서 가장 큰 아이이 들이다. "당신 혼자 정리하려면 힘들잖아" 진이 말에 소정이가 차운 말투로 대답했다. " 됐어 내가 할게..."
소정이는 원 창고에 박스를 모조리 가져와 짐을 챙겼다. 그리고는 차곡차곡 굳이 창고가 아닌 원장실로 그 박스를 하나하나 옮겨 놓았다. 그리고 커다란 살림은 창고로 들어갔다.
"당신 하고 민정이는 당분간 믿음방에서 지내는 게 어때?" 진이가 말했다.
민정이가 신이 났다." 아빠 나는 좋아.... 언니들이랑 함께 자는 거...."
그런 민정이 팔을 잡아끌어놓고는 소정이가 말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는 원장실에서 당신하고 지낼 거야." 진이가 차분하지만 강한 어조로 소정이를 바라보며 " 여보 그런 힘들어 좁기도 하고 당신이 옮겨 놓은 이 상자들도 그렇고 공사하는 중에 외부인도 많고...."
소정이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런 소정이 손을 뿌리치고 민정이가 원장실을 뛰어 나가면 말했다. " 엄마 나는 좋아요 믿음실에 갈게요" 뻘겋게 달아 오른 소정이는 차갑게 돌아서 믿음실로 가는 듯했다.
그렇게 소정이와 민정이 진이까지 고아원에서 그녀의 엄마와 함께 지내게 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달리 도리가 없던 소정이는 민정이 이불을 챙겨 원장실을 나간다. 그리고는 한마디 진이에게 쏘아붙였다. "이불도 가져가지 말라고 하지 마..."
엄마가 된 소정이는 엄마인 듯 어린 시절 어린 딸아이인 듯 그 어느 쯤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무도... 어느 누구도 소정이가 스스로 만들어 버린 지옥 같은 소정이 세상에서 꺼내 줄 수 없었다.
원 생활은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어쩌면 아무렇지 않은 듯 누구에게는 설레는 시작으로 누구에게는 두려움과 경계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