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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독서는 어때?

by 별총총하늘

아무리 감명 깊게 읽은 책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릿해진다. 감상을 글로 남기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인상 깊었던 이유를 끈기 있게 되새기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책을 깊이 새기는 일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나는 오랫동안 단순히 읽는 재미만을 추구했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적극적으로 댓글을 남긴다. 흔히 말하는 '인생책'은 아니어도 내가 좋아했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그렇게 소개한 책들이 있다. 〈나폴리 4부작〉, 〈긴긴밤〉, 〈데미안〉,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같은 책들.


인생책을 갖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끝을 알 수 없던 고민은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고, 그 사유는 달콤한 양분이 되어 내 마음을 채웠다. 책은 어떤 형태로든 내 일부가 되어 삶의 방식이나 사고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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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은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OTT 서비스 '왓챠'에서 〈나의 눈부신 친구〉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드라마를 처음 보던 날, 설레고 가슴이 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내가 상상했던 릴라와 레누와는 조금 달랐고, 내용도 책만큼 세밀하지 않아 아쉬웠다. 그럼에도 나는 이 작품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오디오북으로도 다시 들었다. 책으로 읽고, 드라마로 보고, 오디오북으로 듣는 과정을 거치며 이 이야기는 나에게 더없이 특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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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예로, 동화 〈긴긴밤〉이 있다. 5~6년 전, 수업 교재로 선정했을 때는 크게 인상 깊지 않았던 책이다. 하지만 최근 다시 읽으며 뜻밖에 눈물을 흘렸다. 가족과 친구를 잃은 슬픔에 세상을 향한 복수를 다짐했던 흰 바위 코뿔소와, 가족이라곤 코뿔소뿐인 어린 펭귄. 너무도 다른 두 존재가 함께한 긴긴 밤들 속에서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모든 아픔과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모습은 또 다른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게 해주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생각과 함께.


기억에 남는 책을 떠올릴 때마다, 그 당시의 감정을 새삼 되새겨본다. 뭉클함, 짜릿함, 슬픔, 고독, 갈망, 희망, 그리고 때로는 분노까지. 그 감정들은 단순히 지나간 것이 아니었다. 나를 깊이 흔들었고,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독서를 이렇게 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책을 읽고 느꼈던 감정을 다시 떠올리며, 그때의 나와 현재의 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생각해보는 것. 어쩌면, 그게 독서의 진짜 의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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