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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빨간 머리 앤〉

시즌 1 3~4

by 별총총하늘

3-4화에서 앤은 처음으로 학교라는 세상에 발을 내딛는다. 친구를 사귄 적도, 학교에 다닌 경험도 없는 앤은 다이애나를 비롯한 여자아이들과 친해지려 하지만 오히려 무시당한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한다. 다음 날부터 여자아이들의 따돌림이 시작되고, 그 여파가 마릴라 아주머니에게까지 미친다. 레이첼 부인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전해 들은 마릴라는 앤의 말과 행동 때문에 동네에서 망신을 당했다며 화를 낸다. 하지만 매슈는 오히려 앤을 걱정하며, "앤처럼 어린아이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고 견뎌왔는지 모른다"라고 안타까워한다. 그 순간, 마릴라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는다.


나는 원작을 읽어 앞으로의 전개를 알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는 앤의 트라우마를 깊이 있게 다루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린 게이블즈에 입양됨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동안 앤의 이야기를 새 가정과 학교에 적응하며 벌어지는 크고 작은 실수와 성장으로만 여겼다. 하지만 드라마는 앤이 고아로서 겪은 상처와 고통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앤은 그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기 위해 상상과 공상에 의지했을지도 모른다. 4화는 특히 이런 의도가 두드러지는 에피소드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길버트 브라이스와의 첫 만남과 갈등보다, 드라마는 앤이 왜 그렇게 엉뚱하고 수다스러운 소녀가 되었는지에 집중한다. 순간, 나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왜 앤은 그렇게 공상에 빠져들었을까?” 드라마 제작진과 작가는 아마 이 질문을 품고 자신들의 해석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을 것이다.


앤은 영리하고 똑똑하다. 앞으로도 여러 어려움이 닥치겠지만 그때마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런 앤의 모습을 보며 나는 단순히 엉뚱하고 실수 많은 소녀로만 보았던 내 시선을 돌아보게 되었다. 드라마는 앤의 과거와 내면에 숨겨진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그녀를 한층 더 입체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려냈다. 나는 이런 새로운 시각과 해석 덕분에 앤의 이야기를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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