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드러내는 용기

어떤 어른-김소영 에세이

by 별총총하늘

에세이집을 읽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책의 작가는 독서 교사로 어린이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작가의 전작을 읽어본 적이 있어 이번 작품도 비슷한 내용일 거로 생각했다. 책 초반에는 내 예상이 들어맞는 듯했지만, 진도가 1/3쯤 나갔을 때 ‘이렇게까지 솔직하다고?’라는 대목을 만나게 되었다.


작가는 강연에서 독자들과 만나 자신의 경험과 글에 담긴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강연에서 느꼈던 불안과 자책이 여과 없이 담겨 있었다. ‘강연을 망쳤나?’ ‘한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한 걸까?’ ‘질문에 제대로 답했을까?’ 이런 자문들은 자연스럽게 결론을 예상하게 했다. ‘그래도 결국 잘 마무리했겠지’라는 식의 긍정적인 결말을 말이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는 강연이 끝난 후 패닉 상태에 빠졌던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특히 모 공공기관의 직원 연수에서 청중과 강연 내용으로 언쟁을 벌였던 이야기는, 읽는 나조차도 낯 뜨거운 순간이었다. 작가는 그때 느꼈던 감정과 실수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작가의 글은 내가 강의를 막 시작했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싫어하면서도 가르치는 일은 하고 싶었다. 덜덜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수업 시연을 하던 날,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을 때의 긴장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베테랑 작가조차 심장이 쿵쾅거리고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힘든 순간을 겪었다는 사실이 나에게 뜻밖의 위로가 되었다. 작가는 그때 일을 쉽게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했던 말을 되새기며 그 순간이 정말 그랬는지 내내 고민했고, 해답을 찾기 위해 글을 썼다고 했다.


누군가는 솔직한 글을 용기라고 표현했다. 솔직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용기란 결국, 나를 왜곡하지 않고 온전히 표현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나 역시 글을 솔직하게 쓰고 싶다는 열망을 품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글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독자가 내 글을 지루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가능한 좋은 내용을 담고 싶다는 욕심, 그리고 속내를 드러내는 것에 대한 망설임까지.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글을 솔직하게 쓴다는 게 얼마나 용기가 있어야 하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의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하면서도 글쓰기를 통해 고민의 순간을 이겨내고 있는 건 아닐까? 에세이의 결말이 힘든 순간을 이겨낸 성찰을 담고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는 오히려 더 큰 메시지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진정한 용기는 완벽함이 아니라 그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데 있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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