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마음을 울리는 책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자가 펼쳐가는 이야기 방식이 새로워서 또 한 번 놀랐다. 그저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한 남자의 슬픈 사연? 정도로만 여겼는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한 남자가 예술작품들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메트의 거대한 공간 속에서 사람들과 교감하며 삶의 의미를 다시금 찾는 서정적인 에세이였다. 10년이란 세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시간은 그를 다시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한다.
저자는 소위 엘리트 출신으로 선망받는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던 인물이었다. 형의 죽음으로 세상이 멈추어 버린 것 같던 그때 미술관의 경비직으로 일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베일을 벗기듯 서서히 드러난다. 경비원으로서 첫 근무를 서던 날, 낯선 곳에서의 마음을 잔잔하게 풀어내던 그가 형의 병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란 무엇이기에 한 남자의 인생을 정지시켜 버린 것일까?
그럼에도 삶은 이어지고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저자는 이야기의 중반이 지날 때까지도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저자가 당연히 결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직장을 그만두는 게 조금은 쉬웠을 거라고, 언제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리라 짐작했었다. 형의 장례식이 있던 날은 저자의 결혼식이 열리기로 예정된 날이었다. 성공 가도를 달리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단순한 경비 일을 선택한 것을 설득시키는 순간이었다. 얼마나 지쳤기에 멈추어 선 채 노선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것일까.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을 저자는 거대한 미술관을 찬찬히 둘러보듯 독자를 설득시킨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동안 나는 메트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가 들려주는 해석을 따라 작품을 보고 싶었고 저자와 이야기를 나누던 경비원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미술관에 가서 한 번도 경비원들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언젠가는 질문을 던져보아야겠다 생각했다. 미술품에 대한 견해도 달라졌다.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작품을 공부한 적은 없었던 것이 내심 아쉬웠는데 먼저 눈에 담고 마음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려 한다는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며 작가의 의도가 어떻고 배경이 어떻고 보다 그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지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는 무엇인지 살펴보고 싶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거장 미켈란젤로와 지스 밴드 퀼트 작품전이었다. 천재 조각가이자 화가로 알려진 미켈란젤로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으며 고되게 일을 해왔으면서도 매일매일 성실하게 꾸준히 작품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이다. 퀼트 전시회에 초대된 작품을 만든 퀼트 작가도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어 한 것이지 예술가로서 즐기지는 않는다고 했다. 지금껏 타고난 천재, 즉 재능이 있는 작가들은 즐기면서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즐긴다는 의미가 꼭 이걸 할 때 재미있고 행복하다는 아니지만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마인드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들도 생업으로 여기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특별한 작품을 만든다고 특별한 사람인 것은 아니구나. 그들도 우리처럼 같은 고민을 하며 사는구나,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구나를 이해하게 되었다.
모호한 표현이지만 이 정도밖에 쓸 수 없다. 나는 저자처럼 작품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도 못하고 작가들의 경력이나 이력도 잘 모른다. 그렇기에 내가 이해한 대로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쓸 뿐이다. 작품의 처음과 끝은 시작이면서 또 다른 시작이었다. 사실 마무리가 이렇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돈을 많이 벌던 원래의 직업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텐데 그는 예상을 깨고 다른 길을 가려 한다. 저자의 삶을 응원한다 이런 흔한 말보다, 영혼을 충만하게 하는 삶을 선택하는 그의 용기가 부러웠다. 생각은 있지만 행동하지 못하는 인생, 앞으로 내가 풀어야 할 숙제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