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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도서관을 훔친 아이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의 희망, 도서관

by 별총총하늘


책만 읽으면 무겁게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11시쯤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뜬 나는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폰을 찾는다. 3시 30분, 시간을 확인한 후 알림을 누른다. 블로그 댓글이 하나 달려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확인해도 될 텐데 굳이 부신 눈을 부릅뜨려고 노력한다. 좋은 댓글임을 확인하고 다시 잠을 청한 나, 아침 7시 무렵 다시 잠이 깼다. 그래도 어제보다 잠을 푹 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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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훔친 아이」를 읽기 시작했다. 책은 한번 읽어서는 이해를 제대로 못한다. 나만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처음 읽을 땐 지겹고 지루하다고 여겼던 내용들이 두 번 읽을 때는 앞뒤의 퍼즐이 맞추어지며 이야기의 촘촘함, 작가가 들려주고 싶은 의미를 발견한다. 좋은 책인 건 알겠는데 이 이야기는 누구를 향한 것일까?를 고민한다.


내가 수업하는 아이들에게 빈민가 소년의 사연이 와닿을까?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에 슬픈 감정을 느끼는 건 단순한 감정의 공유일 뿐 진실한 공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일지라도 아이들에겐 희망이 있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제든지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카밀로의 부어오른 눈두덩이는 아버지가 행한 폭력의 증거다. 술집 주인은 카밀로의 눈두덩을 보고도 자신의 볼일만 신경 쓰느라 흘려버린다. 어머니와 친구 안드레스, 도서관 사서 마르 선생님. 카밀로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는 이들 세 사람은 그의 현실이자 이상이다.


처음 도서관을 훔친 아이라고 했을 때 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책을 훔친 게 아니고 어떻게 도서관을 훔친다는 걸까? 이제 보니 카밀로는 도서관의 벽돌을 훔쳐 와 자기 집을 지었고 도서관의 책을 훔쳐 와 아버지의 술을 샀다. 11살의 어린아이에게 벽돌을 훔치게 하고 돈도 주지 않으면서 술을 가져오라는 아버지는 구제불능에 죽어 마땅한 인간이다.


가장 답답한 점은 어머니도 카밀로도 구덩이에 빠진 것 마냥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가족이란 말을 붙일 수는 없었다. 자식이 카밀로 하나였다면 차라리 어머니에게 연민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아기가 있다는 사실이 어머니를 원망하게 했다.


이상하다. 나는 왜 카밀로의 어머니를 탓하는 것일까? 아버지는 어쩔 수 없는 구제불능이니 아예 배제해 버린 것일까? 이 가정의 불행은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냐고 묻는 것 같다.


도시의 맨 꼭대기에 사는 카밀로는 비가 내리면 물에 잠기는 집에 살고 있다. 아버지 술값을 대느라 초등학교에도 다니지 못하는 아이는 그럼에도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의 야경이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신은 행운아라고 말하지만 독자가 보는 카밀로는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좀 더 자라면 도시를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 싶은 안드레스와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다는 카밀로. 집이 지옥일지라도 몸을 피할 수는 있어야 하기에 먹을 것을 훔치고 물건을 훔치고 급기야 도서관의 책을 훔쳐 아버지의 술을 사는 카밀로.


카밀로와 안드레스는 어디를 가나 잘못했다고 혼이 난다. 소리치는 사람들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그들은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한 권 훔친다. 탐지기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그들은 의아해하며 다시 도서관을 찾고 마르 선생님은 이미 그들이 책을 훔쳐 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 스스로 깨치도록 기다려 주는 것.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만 현실은 조그만 잘못에도 비난하고 때리고 급기야 아이들이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작가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카밀로처럼 고립된 아이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있는 아이들에게 작은 빛을 선물하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어른들에게는 사회와 개인이 한 아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할 것이다.


훔쳐 온 벽돌로 만든 집은 비가 내릴 때마다 씻겨 검은 벽돌의 본체를 드러내고 도서관 벽돌과 같은 벽돌임이 들통날까 두려운 카밀로는 그때마다 진흙을 발라 벽돌을 가린다. 진흙에 손을 담글 때마다 부드러워지는 피부는 아이들에게 궁금증을 일게 한다. 더러운 진흙은 왜 피부를 곱게 만드는 걸까? 누군가는 부모의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자식에게 책을 읽게 하고 누군가는 책이라도 팔아 술을 사게 하는 세상에서 책이 진흙처럼 카밀로의 마음을 부드럽고 말랑하게 변화시킨다는 의미일까? 작가는 영리하게 진흙과 책을 대비시키고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카밀로가 아버지에게 맞은 흔적을 바라보는 술집 주인과 마르 선생님의 태도는 우리가 그런 처지에 놓인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반성하게 했다.


엔딩은 내가 원했던 결말은 아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내내 어둡고 우울하게 흐르고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희망적으로 끌고 가지 않는다. 카밀로는 드디어 집을 뛰쳐나왔지만 여전히 비가 오면 물이 들어오는 허름한 집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마르 선생님이 내어 준 책을 읽으며 그는 다른 세상을 보았고 가장 친한 친구 안드레스가 있어 따뜻한 하룻밤을 보내게 될 것 같다.


마법처럼 짜잔 하고 모든 것이 달라지는 동화가 흔한 일은 아니기에 이처럼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줄 것 같다. 다만 아이들이 읽기에 조금 어렵고 어둡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는 내포 독자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작가는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책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희망과 의지를 갖게 할 책을 쓰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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