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겨울 햇볕은 참 귀하다. 한동안 뜸했던 햇살이 오랜만에 맑은 하늘 아래 내려앉았다. 연일 흐리고 차가웠던 세상은 환한 빛을 머금고, 마치 봄이 온 듯 싱그러운 공기로 채워졌다. 걱정과 우려로 뒤숭숭했던 정국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해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이런 날엔 반드시 산책을 나가야 한다. 나만의 산책은 우리 아파트 옆 산길과 도서관 근처의 오솔길을 걷는 일이다. 그날그날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두 길을 모두 걸을 때도 있고, 하나만 골라 천천히 걸을 때도 있다.
청명한 하늘과 대비되는 앙상한 나무숲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때 초록빛으로 가득했던 숲은 이제 차분하고 단조로운 풍경으로 변해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보았던 숲인데 오늘의 숲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평소라면 숲을 가로지르는 길을 선택했을 테지만, 오늘은 정상을 향해 곧장 오르는 나무 계단 길을 택했다. 빠르고도 험난한 코스였다. 그러나 중반에 이르기도 전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터질 듯 뛰는 심장과 점점 무거워지는 허벅지가 더는 움직일 수 없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멈춘 채로 올라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차갑고 맑은 공기가 가슴속을 시원하게 채웠다.
그때 문득 몇 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이 길을 걸을 때마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 무렵마다, 아니 나뭇잎이 흩날리기 시작할 때마다 그 일이 어김없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글 쓰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실시간 줌 강의를 신청했었다. 당시 나는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조차 모르는 생초짜였다. 초보자를 위한 수업이라 부담이 덜할걸로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매시간 발표와 글쓰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짧은 글을 완성해야 했다. 주제는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을 묘사하기’였다. 당일 아침, 나는 이른 산책을 다녀왔다. 내리막에서 멈춰 서서 나뭇잎이 수북하게 깔린 길을 사진에 담았다. 까치들이 보였고, 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시선을 위로 옮겼을 때, 앙상한 가지 사이로 청명한 하늘이 보였다. 그 풍경이 유난히 마음에 남아 글로 풀어냈는데, 뜻밖에 피드백이 들어왔다.
“이 글은 시선이 맞지 않아요. 발밑에서 까치로 옮겨갈 때 눈이 밑으로 내려가지 않겠죠? 보통은 위쪽을 향하거나 나무를 보지 않을까요? 그렇게 인식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요?”
여기서 멈췄다면 좋았을 텐데, 수강생 중 한 사람이 강사님의 말에 동의하며 나섰다. 내 묘사가 어색하다고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얼굴이 화끈했다.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대신 분한 마음이 차올랐다.
‘대체 뭘 안다고 저렇게 말하는 걸까….’
안다. 내 글이 일반적인 시각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걸. 그렇지만 강사님은 먼저, 내게 어떤 장소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물어보는 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그랬다면 나는 당시의 기분과 분위기를 설명했을 테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문제점을 깨달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다음 수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불편하면 도망치는 습관 탓이지만, 그 일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을 가르치게 된 후, 나는 아이들에게 자주 묻는다. "여기에 뭐가 있어? 지금 어떤 상황이야? 기분이 어땠어?" 그런 뒤, "내용을 추가해 써보자"라고 조언한다. 그 일이 아니었다면 글쓴이가 글에 담고 싶은 이야기를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좋지 않은 기억이지만, 그 경험으로 배운 점이 있었다.
몸을 돌려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하늘은 푸르렀고, 공기마저 달고 맛있었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