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 아이는 21살이다. 초등학교까지는 공부를 곧잘 했는데 중학교에서는 중상위권, 고등에서는 하위권에 가까웠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땐 이렇게 생각했었다. 매일 조금씩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놓으면 중·고등학생 때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이 되겠지. 일명 자기주도학습으로 가는 기초를 다졌다고 할까. 자기주도학습법이 한참 유행하던 시기여서 엄마 주도를 거쳐 자기 주도로 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꿈도 야무지지. 따라서 아이가 공부를 안 하던 시기에 나는 많이 고민했었다. 아니 이해가 안 됐었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학생이 공부 말고 도대체 뭘 하겠다는 건지…. 뚜렷한 진로 목표가 있다면 모를까 내 보기엔 그저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아이 친구 엄마와 차를 마시던 자리였는데 그분과의 대화에서 내 교육관이 현실적이지 않고 이상만을 추구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분은 중학교 1학년이 뭘 알겠느냐며 부모가 가이드라인을 잡아놓고 그에 맞는 공부를 시키는 게 맞는다고 했다. 나는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하다 보면 스스로 갈 길을 찾지 않겠냐고 했었다. 누구 말이 맞는지 알 수 없으나 그때 서로에게 실망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끼리는 친할지 몰라도 교육관이 맞지 않으면 엄마끼리는 친해질 수 없다는 걸 느꼈다. 공부를 잘하길 바랐었다는 내용을 써놓고 이상적인 교육 운운이 혼란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변명을 늘어놓자면 우리 아이는 별다른 꿈이 없었기 때문에 공부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뜻이었다.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초등에서는 전인교육을 잠시 실천하다가 중학교만 올라가도 입시를 향해 달리는 게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이는 얼마 전 에듀 코칭 강의에서도 확인했던 사실이다. 강사님이 보여준 사례가 교육계를 대표하는 내용은 아닐 테지만 대학에서는 입시 평가 방법을 절대로 바꾸지 않는다며 공부 성적이야말로 아이들을 선별하는 가장 큰 기준이라고 했다. 높은 성적 안에 아이의 성실성을 포함한 인내심과 끈기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문득, 우리나라에서 가장 똑똑한 학생들만 모여 있다는 서울대에서도 고학점을 받기 위해 교수의 말을 그대로 적어낸다는 EBS의 다큐멘터리가 기억나 강사님께 이렇게 말했다.
“교육이 그러면 안 되잖아요.”
초등 교사이기도 한 강사님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나는 21년 동안 한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봤고, 현재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기초학력 미달 수준의 아이들도 누구나 공부를 잘하고 싶어 한다. ‘공부하기 싫은데요’는 해도 ‘공부 못하고 싶은데요’하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잘하고 싶지만 누적된 학습결손, 환경적 영향, 낮은 지능, 지루한 것을 참는 능력 등 다양한 요건들로 인하여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공부 외에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고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데 이 역시 아이들이 처한 여건상 쉽지 않은 일이다.
학생들 대부분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들 뒤에는 적극적으로 서포트하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있을 것이고 훌륭한 롤 모델이 되어주는 멘토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삶이 있다면 사회 한쪽에는 방황하는 청소년이 여전히 학교밖에 머물러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청소년도 있다. 그들의 사정을 모두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이를 사회현상의 하나로 인식하며 살아간다.
우리 아이는 공부를 하지 않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좋은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고 했다. 재수하면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그동안 가르쳤던 아이들은 중·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저 한 시절 나와 만나며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기를 바랐었고 사람에 대한 예의와 하기 싫은 공부를 조금은 참아가며 할 수 있기를 원했었다. 우리 아이에게는 내가 무엇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재수를 하며 자신의 공부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깨달았지만 몰랐던 여러 장점을 발견하는 중이다. 모두 같은 길을 가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만나는 학생들을 포함한 일부 학생들에게 자신을 긍정하고 무엇이 되었든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전하고 싶다. 공부를 포함하여 인생에는 왕도가 없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