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의 시선이 닿을 때 덜 아프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후, 율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된다. 마음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고,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다. 누구도 자신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율은 시간이 흐르면서 깨닫는다. 누구나 말하지 못한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율의 시선저자김민서출판창비발매2024.04.26.
『율의 시선』은 초반부터 만만치 않았다. 생각보다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만하고 약한”
“강약약강”
“인간관계는 전략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척하라.”
“기억하는 건, 발.”
율의 시선 중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이 불쑥불쑥 나오고, 이야기 사이에서 감정의 공백이 느껴졌다. 도대체 이 아이는 어떤 상처를 안고 있기에 이토록 마음을 닫아버린 걸까. 그 물음이 이 이야기를 끝까지 붙잡게 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뿐만 아니라 여러 청소년이 겪는 아픔이 마음에 와닿았다. 좋아하는 마음을 거절당한 상처,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 말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쌓여 가는 불안과 분노, 그리고 가정폭력 때문에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마음까지. 모두가 저마다의 이유로 조용히 버티고 있었다.
“삶은 고난의 연속이 아니라 극복의 연속이라고. 우리는 극복하며 살아가는 거야. 그 끝에 기다리고 있을 더 멋진 나를 위해. 그러니까 포기하면 안 돼. 포기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율의 시선 중에서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해 발끝만 보던 율은, 마침내 시선을 들어 친구의 아픔을 바라본다.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때도 있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순간도 있지만, 율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이 좋았다. 조용하지만 분명히, 희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두고 온 여름저자성해나출판창비발매2023.03.17.
두고 온 여름은 또 다른 결의 상처를 이야기한다.
기하와 재하는 부모님의 재혼으로 잠시 한 가족이 되었다. 기하는 여덟 살이나 어린 동생이 탐탁지 않았고, 지나치게 밝은 태도도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그는 새어머니를 ‘저기’ 혹은 ‘그쪽’이라 부르며 거리를 두었다. 이야기는 기하와 재하, 두 사람의 시선을 오가며 당시의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기하가 진짜 형이었으면 하고 바랐던 재하의 마음, 그러나 오래가지 못한 짧은 행복의 순간.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은, 끝내 말하지 못한 미안함을 가슴에 품은 채 각자의 길로 돌아선다.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
“가감 없이 표현하고 바닥을 내보이는 것도 어떤 관계에서는 가능하고, 어떤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저는 알고 태어난 것일까요.”
“헤어진 이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뉘었다. 다신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한 번쯤은 더 만나도 좋을 사람.”
두고 온 여름 중에서
이 책의 제목은, 풀지 못한 채 마음속에 남겨 둔 그들의 꼬인 감정을 되돌아보게 한다. 닿지 못한 마음과 끝내 전하지 못한 말들. 남겨진 미련과 어른이 되어서야 마주한 감정의 깊이가 잔잔히 전해진다.
“재하야, 니는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나?”
두고 온 여름 중에서
재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그때는, 기하에게는 아버지를 잃은 것 같은 시간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아이들의 부모는 각자 어떤 마음으로 그 여름을 견디었을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