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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던 때가 자꾸 떠오른다

더워서 그런가보

by 별총총하늘

둠벙(작은 못이나 저수지를 가리키는 사투리)에서 우렁이 잡고, 갯벌에서 꼬막을 주웠다.

복숭아를 먹고 두드러기가 올랐던 적도 있었다.

뒤란에서 오이를 따 먹다가 결국 참외 밭에서 서리를 했던 일까지.

이제 와 돌아보면 마치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듯 하나하나 떠오르는 기억에 절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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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복숭아를 파는 리어카를 만났다. 과일가게 진열대에도 발그레한 복숭아들이 나란히 올라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복숭아를 유난히 좋아했다. 물복과 딱복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물복이다. 말캉하고 보드라운 과육에 달콤한 과즙까지 더해진 물복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얼마나 좋아했는지, 매실 색깔의 복숭아를 따먹은 적이 있었다. 두드러기로 고생을 하고서야 열매 표면의 하얀 솜털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걸 알았다. 잊고 지내다가도 복숭아만 보면, 그날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우렁이도 잊을 수 없다. 요즘은 우렁이를 이용해 잡초를 제거하고 토양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걸 알지만, 그땐 그저 먹거리일 뿐이었다. 시골에 살던 나는 겁이 없었다. 거머리가 꿈틀대는 논에도 성큼성큼 들어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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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 옆에는 둠벙이 있었다. 연못처럼 작지만, 깊이는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어두컴컴했다. 그 벽을 타고 우렁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장구벌레나 물벌레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물속에 손을 집어 넣어, 우렁이를 잡는 일에만 집중했다.


지금은 길을 걷다가 무언가 몸에 스치기만 해도 호들갑을 떠는데, 그때만 해도 벌레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밤나무 아래 서식하던 풍뎅이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었는데… 도시생활을 너무 오래 한 걸까.


바다!

다시 가보고 싶은 그 바다는, 밀물일 때보다 썰물일 때 더 빛을 발했다. 여름이면 다른 지역에서 사람들이 피서를 오기도 했다는데, 정작 나는 물놀이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물은 썩 좋아하지 않으니, 그때도 그랬던 모양이다.


하지만 꼬막 잡으러 갈 때만큼은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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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 같은 건 필요 없었다. 비닐봉지 하나 들고 바다 원정에 나섰다. 봉지 가득 꼬막을 주워 올 때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우리 갯벌엔 꼬막 말고는 다른 조개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내 눈엔 오직 꼬막만 보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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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란에는 작은 밭이 있었다. 책에서 자주 보던 채마 밭이 우리 집에도 있었던 셈이다. 여름이면 솔부추를 비롯해 호박과 오이가 주렁주렁 열렸다. 노란 꽃이 피고, 시간이 지나면 손가락만 하던 열매가 조금씩 자라났다.


우리 집에서는 주로 동그란 호박을 키웠다. 그래서 한동안은 호박이 다 그런 모양인 줄로만 알았다.


오이를 잘 키우려면 줄기가 잘 뻗어야 했다. 나뭇가지를 세우고 그 사이에 줄을 엮어두면, 오이 덩굴이 그 줄을 타고 쭉쭉 올라갔다. 어느새 기다란 오이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과자 대신, 아이스크림 대신 먹었던 오이였는데, 이젠 반찬으로만 먹고 있다.


비 오는 날, 동생과 나는 참외가 너무너무 먹고 싶었다. 우리 집은 수박 농사만 지었고, 참외는 키운 적이 없었다. 수박밭을 오가는 길에 참외 밭이 하나 있었는데, 외부인의 침입을 막으려는 듯 울타리까지 둘러져 있었다.


결국 동생과 나는 몰래 울타리를 넘었다. 참외 몇 개를 따서 도망치듯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동생을 나쁜 길로 데려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그때는, 참외가 너무 먹고 싶었을 뿐이다.


그 시절엔 그런 일이 많았다. 꼬막을 주우러 가던 길에 밭에 있던 양파를 캐서 먹은 적도 있었다. 몰래몰래, 나쁜 짓을 조금씩 했던 그때의 기억들이 한데 섞여, 지금은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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