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1권을 읽으며 냄새와 향, 그리움.
유월이는 기화 덕분에 평사리에 가게 됐다면서 좋아했다. 그리고 나들이에 설렌 듯 머리를 털면서,
“청솔가지로 빨래 좀 삶았더마는 온통 불티다.”
기화도 유월의 옷에 앉은 불티를 털어준다.
“밖에서 삶았나 부지요?”
‘토지 11권, 335쪽’
유월이 불티를 털어내는 장면에서 그을음 냄새가 났다. 동시에 그을음 묻은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탄내가 밴 옷가지와 함께 아궁이에 불을 때던 정경이 머릿속에 겹쳐졌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던 연기가 있었다. 곤로(석유를 사용하는 취사도구)도 있었지만, 물자를 아낀다고 나무를 때서 밥을 지었다.
부뚜막에 단단히 고정된 가마솥은 집안의 심장 같았다. 아침에는 밥을 짓고, 저녁에는 물을 데우느라, 가마솥은 쉴 날이 없었다. 겨우내 불을 때던 아궁이에서 스며나온 냄새가 집안 가득 있었을 것이다.
나는 중학생이었지만 둔한 편이라, 집에 배인 냄새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동네 친구와 옷을 바꿔 입기로 했다. 그런데 친구가 옷을 건네받자마자 말했다.
“잠바에서 끄으름 냄새난다.”
그제야 알았다. 아궁이에서 스며 나온 냄새가 이미 옷가지에도 깊이 배어 있었다는 것을.
영화 『기생충』에는 ‘냄새로 드러나는 가난’이 있다. 성공한 사업가 역의 이선균은 운전사 송강호에게서 풍기는 반지하 냄새에 본능적으로 코를 막는다. 기사로 취직하며 깔끔한 복장과 태도를 갖추었지만, 몸에 밴 그것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가난의 냄새’가 후각처럼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잔혹하게 다가왔다.
한편으로는,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할머니 냄새’라는 글을 읽었다. 글쓴이는 “제가 할머니랑 사는데, 최근 친구들이 저한테서 할머니 집 냄새가 난대요. 이 냄새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요”라고 적었다.
댓글에는 할머니와 함께한 경험을 나누며 다정함과 그리움, 때로는 눈물 섞인 고백들이 이어졌다. 영화 『써니』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는데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살던 주인공 나미는, 할머니를 껴안으며 “음, 할머니 냄새!”라면서 행복해한다.
‘할머니’라는 정서가 불러일으키는 따뜻함과 그리움은, 같은 냄새를 전혀 다른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낡고 오래된 집의 냄새일지 몰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랑받던 시간의 향기로 다가온다.
냄새는 냄새일 뿐이다. 어떤 냄새는 익숙함과 따뜻함으로, 어떤 냄새는 곤궁함과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유월의 불티, 옷에 배인 불 냄새, 그리고 영화 속 가난과 사랑—모든 냄새는 결국 삶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나는 불탄 냄새를 추억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때는 기억이었고 때로는 창피함을 주던 그을음이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