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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독회] 폭력과 차별, 시로 대항하기

-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하는 김승일/주민현 시인과 함께 하는 낭독회

by 줄기

* 제6회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한 김승일 시인, 주민현 시인과 함께 하는 낭독회 : 2022년 11월 26일 (토요일)


“반달과 5펜스 시낭독회” 6회는 김승일 시인과 주민현 시인, 두 명의 시인과 함께 한 시간이었다. 반달과 5펜스 필사모임에서 김승일 시인의 시집 2권과 시와 산문 모음집 1권에서 발췌한 시 13편과, 주민현 시인의 시집 2권에서 발췌한 시 10편을 필사한 후였다.

김승일 시인으로 말하면 우리 동네 시인이자 반달서림을 아끼는 동네 주민이기도 해서, 앞서 소개한 다른 시인들의 시낭독회나 북토크 프로그램에 청중으로 꾸준히 참석하여, 그때마다 다른 참석자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같은 청중 자격으로 시낭독회와 북토크를 즐겼는데, 드디어 김승일 시인이 주인공인 시낭독회 시간을 맞이한 것. 한편 주민현 시인은 첫 방문인지라, 익숙함과 신선함으로 대표되는 두 시인 각자의 시세계가 만나는 시낭독회가 기대되었다.


김승일 시인의 시 「수학의 정석」과 주민현 시인의 시 「킬트의 시대」 현수막 아래 나란히 앉은 김승일 시인과 주민현 시인

김승일 시인의 시 「수학의 정석」과 주민현 시인의 시 「킬트의 시대」 현수막 아래 나란히 앉은 김승일 시인과 주민현 시인은, 서로 번갈아가며 시를 낭독하고 청중과 함께 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시낭독회는 진행하였다.

먼저 ‘아픈 사람들이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우리 안에 따뜻한 심장이 있다는 걸 기억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는 김승일 시인의 시는 너무 아프지만, 그래도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눈으로 밟으며 읽어야 하는 시라고 말하고 싶다. 학교폭력이나 군대폭력을 소재로 한 시가 많은데, 시를 읽어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시인의 과거 경험으로부터 온 시라는 것을 가슴으로 알 수 있다. 짧지 않은 기간 그 힘든 시간을 잘 헤쳐나가 지금의 김승일 시인으로 존재함이 고맙고, 특히 학교나 지역 도서관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시는 활동이 감사하다. 청소년들과 함께 시를 읽고 쓰고 짓는 활동 내용과 그 감상을 종종 김승일 시인의 SNS으로 접하는데, 많은 청소년들이 시활동으로 위안과 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여 기특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연보라색 『킬트, 그리고 퀼트』 시집 표지 색깔과 깔맞춤 한 연보라색 마스크가 인상적인, 재기 발랄한 여동생 이미지의 주민현 시인은 의외의 연속이었다. 먼저, 주민현 시인이 직장을 다니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공무원 수험서를 출판하는 출판사를 직장으로 두고, 출퇴근 시간에 시를 쓴다는 사실에 놀랐다. 시인 이외의 직업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시 혹은 문학 관련 분야의 직업일 거라 예상했는데, 뜻밖에 공무원 수험서를 출판하는 출판사라니…… 어쩐지 주민현 시인의 멀티 페르소나를 접한 듯했다.

또 하나 의외는 주민현 시인이 자신은 스코틀랜드에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에서 왔다. 주민현 시인의 시는 다양한 국가와 인종이 등장하여 글로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시가 많았는데, 그중 「킬트의 시대」는 단연 돋보였다. 스코틀랜드 어느 광장에서 킬트를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축제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킬트로부터 파생된 시적 상상력이 참 인상적이라고 생각해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라고 생각했다. 이렇듯 생생하게 스코틀랜드 어느 광장의 축제를 묘사하고 있는데, 시인의 상상력의 산물이었다니…… 깜찍한 충격을 받았다.


본격적인 시낭독은 주민현 시인의 시 「철새와 엽총」으로 시작되었다. ‘오늘은 나의 이란인 친구와 / 나란히 앉아 할랄푸드를 먹는다’로 시작하는 시는, 주민현 시인이 페미니즘 시를 써보자고 마음먹고 쓴 시. 주민현 시인에게 실제로 이란인 친구가 있는지, 그 친구와 할랄푸드를 먹었는지, 이란인 친구는 정말 히잡을 두르고 있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시적 자아는 시인과 구분되고 시적상상력은 한계가 없으니, 중요한 것은 내 나름대로 시를 이해하고 의미를 찾아보는 것일 뿐이다. ‘철새를 사냥하듯이 총을 들고 숲을 뒤졌다고 했다 / 그녀의 친구가 옆집 남자와 웃으며 대화했다는 이유로’.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

이십여 년 전 대학생 시절 동네에서 과외 아르바이트로 가르쳤던 한 중학생 남자아이를 떠오르게 하는 시였다. 지금 생각하면 허세가 조금 든 보통의 사춘기 소년일 뿐이었는데 어느 날 수업 시작하기 전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고요. 여자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냐고 제가 따끔하게 한 마디 했어요.” 그러니 여자는 그 이야기를 듣고 담배를 껐다고, 제법 자신의 충고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꼈던 듯했다.

지금이야 횡단보도와 보도 경계로부터 5미터 이내는 금연 구역으로 설정한 지역이 많지만, 당시에는 횡단보도에서의 흡연은 허용적인 분위기였다. 그래서 학생에게 사람들이 많은 횡단보도에서 흡연을 하는 것은 공중보건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긴 하지만, 유사한 상황에서 흡연을 하는 남자에게도 그렇게 똑같이 충고를 할 수 있는지? 할 수 있지 않다면, 상대방이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여자라서 충고를 한 것은 공정하지 않은 성차별적인 발언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좀 뻘쭘한 듯 학생은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화제를 돌렸고, 나 또한 말을 덧붙이지 않고 수업을 진행했다.

한편 횡단보도에서 흡연을 했다는 여자에게도 의문이 들었다. 지금은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성별에 무관하게 주변사람의 눈총을 받지만, 그땐 그래도 대놓고 거리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남성으로 여성은 희소하여, 여자라는 이유로 충분히 부정적 시선을 받을 때였다. 그럼에도 거리에서 흡연을 하였다는 것은, 여성의 거리 흡연으로 시비 거는 사람에게 어떤 형태로든 대응할 수 있는 단단한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짐작되는데, 중학생의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은 여자도 반박을 했지만, 학생이 허세를 부리느라 내게 그 이야기는 쏙 빼고 전한 것이었을까?

여하튼 여성 차별을 포함, 여러 차별적 요소를 찾아내어 소통하며 없애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 더 나은 사회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민현 시인이 낭독한 다음 시는 「가장 완벽한 핑크색을 찾아서」 였다. 「가장 완벽한 핑크색을 찾아서」에서 시적 자아는 ‘린응사의 여성 불상을 보고 / 핑크 성당을 향해 걸었’고 ‘핑크란 어떤 색일까 생각했다’. 시에서 시적 자아가 완벽한 핑크색을 찾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빨강에 하양을 더해 만드는 색, 핑크. 수많은 빨강과 수많은 하양의 조합으로 지구상 존재하는 인구수만큼의 핑크가 만들어지겠지…. 저마다 자신에게 맞는 핑크색이 완벽한 핑크색일 것이다. 자신에게 맞는 핑크를 조합하여 가는 과정, 또 다른 완벽한 색을 찾는 과정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주민현 시인의 마지막 낭독시는 『킬트, 그리고 퀼트』 시집의 표제작 「킬트의 시대」. 스코틀랜드에서는 남자가 치마를 입는다는 사실이, 당시 주민현 시인의 관심사였던 이분법적인 것을 허문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하기에 쓴 시였다고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마치 스코틀랜드 어느 광장의 축제에 참여한 기분이 드는 시, 언어적 유희로 전통적 성역할에 대해 유쾌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였다.

주민현 시인의 『킬트, 그리고 퀼트』 시집의 표제작 「킬트의 시대」필사


주민현 시인의 시에 성차별과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면, 김승일 시인의 시에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담겨 있다. 김승일 시인은 「수학의 정석」낭독을 시작으로 「가만히 있는데 심장이다」와 「낙성 씨」를 차례로 낭독하였다.

「수학의 정석」은 김승일 시인의 이전 시집 『프로메테우스』의 「홍성대 著」를 떠올리게 했다. 고등학교 수학의 제2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는 참고서 ’수학의 정석’의 저자는 ‘홍성대’이니 자연스러운 연상. 두 시 모두 학교폭력과 학교폭력을 외면하고 무마하는 학교의 모습을 공통적으로 담고 있어 서글펐다.

‘….
그들은 책장과 책장 사이로 집합과 행렬만을 바라보았다
그 너머가 없었다
언젠가 그 두꺼운 책의 숫자는 모조리 빼고 글자들을 걸러
알아도 몰랐습니다 적당히 넘어갑시다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있다 저희들끼리 키득거리고 어디론가 흩어진다
…’

이렇게 솔직한 시를 청소년들이 접하면, 저마다 다르겠지만 시적 자아에 대한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조금은 용기를 내는 사람도 서로에 대한 관심을 키우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김승일 시인이 하고 있는 시활동은 한창 예민한 청소년들에게 자기와 주변을 돌아보고 깊이 생각하여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 같다.

김승일 시인의 『나는 미로와 미로의 키스』 시집의「가만히 있는데 심장이다」필사

「가만히 있는데 심장이다」는 과거 폭력의 트라우마를 표현한 시라고 한다. 나를 살게 하는 심장이 나를 죽게 만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울고 있는 자신이 느껴졌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김승일 시인에게 잘 극복하고 있다고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 세상 어디, 그 누구도 완전하게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란 어려울 테니까, 그저 잘 이겨내고 있다고 격려해주고 싶다. 심장박동이 느껴질 때는 주로 힘들 때 혹은 기쁠 때. 힘들 때 느껴지는 심장박동은 보람차고 힘든 운동을 했을 때만, 그 외에는 다양한 기쁜 일로 심장박동을 인식할 수 있도록 심장이 부서질 때마다 다시 단단하게 기워야겠다.


마지막으로 김승일 시인이 낭독한 시는 「낙성 씨」. 시의 주석에 ‘낙성’ 씨를 처음 만나고 그 뒤 강박적인 행동을 하는 그를 관찰하면서 쓴 시로, 김승일 시인도 강박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시기가 있었다고 말하였다. 다른 것들을 찾고, 특별한 것을 특별하게 보는 것이 시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김승일 시인은, 다른 것 중 하나로 강박적인 행동을 찾았고, 강박적인 행동을 마음속의 채워지지 않는 구덩이를 채우는 행위로 보았다. 「낙성 씨」의 강박적 행동으로는 마음의 구덩이를 온전하게 채우는 데 한계가 있을터,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한편 나에게도 마음속에 크고 작은 구덩이가 몇 개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혹은 마음속 구덩이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에 패인 자국이 있을 수 있으니, 그 패인 자국을 메워 나가는 연습 아닌 연습을 꾸준히 해야겠다.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메꿈이 재료는 시낭독, 시필사, 독서, 음악감상, 악기연습, 글쓰기, 대화, 산책, 요가 등등…… 용도에 맞게 선택해 써야지. 메꿈이 재료의 종류도 더 늘릴 필요가 없을지 생각도 종종 하면서…….


이렇게 에코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시를 쓰는 주민현 시인과 모든 폭력에 저항하는 시를 쓰는 김승일 시인의 시낭독회에서, 좀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데 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느낄 수 있었다. ‘시를 읽으며 독자들이 새로운 재발견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김승일 시인의 말에 용기를 얻어, 또 한 번 시를 읽는 자유로움의 단계를 올리며 시낭독의 즐거움을 누린다.


『킬트, 그리고 퀼트』시집의 「네가 신이라면」과 「스노볼」 필사
『프로메테우스』시집의 「화사한 폭력」과 『나는 미로와 미로의 키스』시집「여기 있는 모든 병장들이 널 사랑한다는 거 알지?」 필사
시낭독회 후『프로메테우스』 시집에 받은 김승일 시인 서명과 『킬트, 그리고 퀼트』시집에 받은 주민현 시인 서명


*참고 자료

1. 『킬트, 그리고 퀼트』 주민현, 2020, 문학동네

2. 『나는 미로와 미로의 키스』 김승일, 2022, 시인의일요일

3. 『프로메테우스』 김승일, 2016, 파란

4. 반달서림 블로그의 김승일/주민현 시인 시낭독회 안내문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2931768265)

5. 반달과 5펜스 온라인 시필사 카페의 김승일/주민현 시인 시낭독회 안내문 (https://cafe.naver.com/bandalseorim/7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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