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어니언의 연극 「안검하수」
* 반달극장 연극, 인디어니언 「안검하수」: 2023년 6월 24일 (토요일)
용인책방데이 프로그램에 반달음악회와 반달극장 계획으로 참여한 반달서림은, 앞서 기술한 브런치 글(https://brunch.co.kr/@ebec0174a6a7411/37) 같이 첫 번째 프로그램인 반달음악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제 두 번째 프로그램을 위해 반달극장에서 연극을 상연할 차례. 3년 남짓 책방 단골손님으로 반달서림을 다녔지만 연극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반달서림 대표님의 공연 안내글 중,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 공연도 한 달 뒤 있을 거라는 문구와 함께 아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뭔가 자꾸 아쉬운 거예요.
연극이 빠졌으니까.
한때 연극에 빠져서 대학로에 매주, 매달 가던 때가 있었어요.
다시 그때의 느낌을, 두근거림을 되살릴 수 있을까?
집념으로 기획한 행사입니다.
소극장만큼의 몰입은 어렵겠지만, 함께 연극의 세계에 빠져봐요.”
반달서림 대표님에게는 시와 음악뿐 아니라 연극에도 열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연극을 향한 그 집념이 작은 동네책방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연극을 공연할 '인디어니언'이라는 이름의 공연팀은 구성이 단출했다. 연출과 연기를 담당한 따울과 음악과 소품을 맡은 부바, 이 두 사람은 부부였는데 일과 생활을 함께하는 그들은, 존경과 존중의 언어로 서로를 대하며 말 그대로 이심전심 최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소품이라고는 풍선과 긴치마, 그리고 의자 하나가 전부였지만, 따울의 진정성 있는 연기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특히, 의사 선생님으로 분한 따울의, 한 땀 한 땀 조심스러운 쌍꺼풀 수술 장면은 이 연극의 백미라 할 수 있을 만큼 표현 방식이 묘하게 현실적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도, 웃음이 새어 나오게도 만들었는데, 눈을 깜박여도 눈물이 흘려도 안된다는 극 중 의사 선생님 대사가, 마치 나를 향한 말인 듯 내 눈동자와 눈꺼풀도 무대에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쌍꺼풀 수술을 그렇게 유쾌하고 실감 나게 구현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의외의 즐거움을 순수하게 누렸다.
한때 연극에 빠져 지냈다고 하는 반달서림 대표님과 다르게, 사실 나의 연극 공연 관람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그러니까 연극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편에 든다 하겠다. 반달극장 공연 후 집으로 돌아와 지난 두 번의 연극의 기억을 떠올리며 공연 팸플릿을 모아둔 상자를 뒤져보았다. 그리고 빛이 바래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팜플랫 두 부,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지하철 1호선」를 찾아냈다.
1991년 극단 가교가 25주년 기념 공연으로 셰익스피어 작품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상연할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한국지리 수업 시간에, 항상 젠틀하셨던 한국지리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단체로 연극을 보러 갈 의향이 있는지 질문하셨다. 아마 짐작하건 데, 선생님께서 대학시절 연극동아리 활동을 하셨던 인연으로, 극단 가교에서 초대권을 받으셨거나 일정 분량의 티켓을 담당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시절, 공식적으로 야간자율학습을 빼먹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우리들은 아니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교복을 입은 채,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서둘러 대학로에 있는 문예회관 대극장으로 향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미 공연 시작 시간은 놓친 시간이라 숨이 차게 달려서 겨우 공연장에 도착하였기에, 처음엔 스토리와 무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또 스토리가 눈에 들어온 이후에도 사춘기 소녀의 감성과는 맞지 않은 내용이라는 생각에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다.
하지만 처음 보는 멋진 연극 무대와 TV연기자들의 생생한 연기를 경험한 것은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특히, 학업에 지친 제자들에게 연극을 보여주어, 다양한 공연 문화를 접하게 해 주려 하셨던 선생님의 마음은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하다. 이제 그때의 내 나이가 되어가는 나의 아이들을 보며, 요즘 학교에도 제자들에게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게 해 주려 노력하시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1996년에 본 연극은 「지하철 1호선」이었다. 팸플릿에 록 뮤지컬이라는 장르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고 주옥같은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극의 큰 흐름은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로 이루어지는 「지하철 1호선」을, 나는 연극이라고 부르고 싶다.
1991년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본 「말괄량이 길들이기」 이후 5년 만인 1996년 학전 그린 소극장에서 본 「지하철 1호선」은 느낌이 달랐다. 원작이 독일 작품임에도 번안작이라고 인식할 수 없을 만큼 한국 정서와 사회 현실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작은 소극장을 가득 채운 음악과 연기자들의 표정까지 보이는 무대와의 가까운 거리가, 마치 관객을 지하철 1호선 승객으로 만들어 연극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팸플릿을 다시 찬찬히 보고 있노라니 30년이 지난 지금은 명실상부 대배우로 성장했지만, 당시에는 조연으로 출연했던 몇몇 신인 연기자들이 보여 반갑다.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얼마나 큰 열정과 간절함으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같은 시간 나는 과연 얼마만큼 성장한 것일까? 자문하게 된다.
반달서림에서 「안검하수」를 본 후 연극에 대한 관심의 싹이 트였고, 반달클래식클럽에서 회원분들이 공유해 주시는 연극 공연 정보나 감상을 들으면서 그 싹은 자라나고 있다. 그리고 작은 결실로 올 4월에는 연극 한 편 「세일즈맨의 죽음」을 보았다. 모처럼 보는 연극이라 연극을 보기 전과 후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을 읽었는데, 연극을 보기 전 활자로 되어 있는 극중 인물의 대사를 내 머리속 극장에서 등장인물이 말하는 것으로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면, 연극을 보면서는 내 머리속 극장의 연극과 현실의 연극이 일치화되어 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었고, 연극을 본 후 다시 읽는 희곡에서는 이전에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연극으로 보면서 기억에 남는 대사나 상황을 다시 희곡에서 확인하는 기쁨이 있었다. 그 즐거움이 꽤나 쏠쏠하여 반달클래식클럽에서 회원분들이 극찬한 여러 연극을 바탕으로 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희곡과 연극을 접하려 한다.
연극 무대 그 자체도 인상적. 윌리의 집과 직장, 출장지 숙소 등 그때그때 배경이되는 장소로 변신하는 무대를 보는 즐거움이 컸다. 특히, 현관 문을 통해 등장인물이 집 안밖을 드나드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같은 공간을 관객이 순차적으로 실내와 실외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연극 스토리를 생각해 감상을 말하자면, 윌리와 같은 나이대가 되어 청년이 된 두 아들을 둔 지금, 아버지로서의 윌리에 감정이입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연극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아마 젊었을 때 이 연극을 보았다면, 그때는 아들의 입장에서 고민에 공감하고 아버지 윌리를 바라보았을 것이기에, 지금 보았을 때와 감상이 확실히 달랐으리라……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 그러니 고전적인 연극이 긴 세월 반복되어 상연되고, 또 관객들은 동일한 연극을 시간 차를 두고 몇 번이고 다시 보는 것이 아닐까? 연극 무대와 배우도 변하지만 관객도 변하니까...... 그래서「지하철 1호선」와 「말괄량이 길들이기」 도, 그리고 「안검하수」와 「세일즈맨의 죽음」도……. 한 번쯤 다시 보고 싶다. 과연 나의 감상은 어떠할지, 내 안 어딘가 간직되어 있는 처음 보았던 그때의 감상을 소환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 참고자료
1. 반달서림의 반달극장 - 인디어니언 <안검하수> 연극 안내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3122392126)
2. 반달서림의 반달극장 - 인디어니언 <안검하수> 연극 후기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3138620248)
3. 1996년 연극 「지하철 1호선」 기사 (https://www.joongang.co.kr/article/3290217)
4. 『세일즈맨의 죽음』아서 밀러/강유나, 민음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