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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독회] 시의 정서에 배어들다

-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하는 고명재 시인과 함께 하는 낭독회

by 줄기

* 제7회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한 고명재 시인과 함께 하는 낭독회 : 2023년 6월 27일 (토요일)

2022년에 있었던 여섯 차례 ‘반달과 5펜스 시낭독회’는 2022 년 인증서점 문화활동 지원을 받아 경기도 경기콘텐츠진흥원 후원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외부지원이 종료되었으니 더 이상 시낭독회는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아쉬움을 담은 채, 다채로웠던 시낭독회를 추억하며 일주일에 다섯 편 시를 필사하는 활동으로 2023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반달서림 대표님이 깜짝 발표를 했다.

외부지원은 없지만 횟수를 줄여 자체적으로 시낭독회를 이어가기로 했어요.
오랜만에 하는 시낭독회를 귀한 시인으로 재개하려고요.

나는 이제 시낭독회의 재미를 알아 버렸으므로 이 결정을 진심으로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었다.


8개월 만에 열리는 7차 “반달과 5펜스가 사랑한 시인들” 소중한 시낭독회에, 귀하게 모시는 시인은 바로 고명재 시인이었다. 고명재 시인으로 말하자면 2020년에 등단하고 첫 시집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 신인 시인으로서, 그가 쓰는 시의 매력을 알게 된 독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 미래가 기대되는 신인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인. 반달과 5펜스에서는 고명재 시인의 첫 시집이자 단 한 권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에서 발췌한 시 9편을 필사하였는데, 시인의 정서가 충분히 배어든 언어로 지어진 시를 필사하는 동안, 시가 포근하고 따스하게 흡수되는 느낌이었다. 건조한 기운 없이 촉촉한 기분이 들었다.

고명재 시인과 「페이스트리」와 「미더덕은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것처럼」 현수막, 그리고 시필사 노트 전시

고대했던 시낭독회날에 고명재 시인은 「페이스트리」와 「미더덕은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것처럼」 시현수막 아래 수줍게 앉아 시낭독회 시작의 문을 열었다. 현수막에 인쇄된 시에서 보듯, 음식 혹은 식재료가 고명재 시인 시의 주요 소재, 거기에 「노랑」,「초록」,「보라」와 같이 색깔을 제목으로 한 시도 쓴 터라, 그의 시에서는 시각, 미각, 후각, 촉각, 청각의 오감이 느껴진다.

고명재 시인의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시집의 「페이스트리」 필사

고명재 시인은 첫 낭독 시로 「페이스트리」를 선택했다. 처음 발표할 때는 ‘빵 가게 열기’라는 제목을 붙였다가 겹겹의 층으로 쌓인 사랑, 기억 등을 생각하며 ‘페이스트리’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겹겹의 층 사이사이 비어있는 공간의 의미도 생각하게 하는 좋은 제목이 되었다. 시의 ‘가장 아름답게 무너질 벽을 상상하는 것 / 페이스트리란/ 구멍의 맛을 가늠하는 것’ 시구를 만났을 때는 『도덕경』에 쓰인 구절, 수레바퀴의 빈 곳이 있어 수레로서 쓸모가 있고, 그릇은 가운데 빈 공간으로 쓸모가 있다는 구절을 떠올렸다. 비어있음의 소중함을 가늠케 하는 구절들. ‘비어있음’과 ‘없음’은 언뜻 같은 말로 들리지만 동의어가 될 수 없다. ‘없는’ 것이 아니라 비어 ‘있는’ 것이므로…… 무언가 ‘있다’. 비어 있는 공간과 아름답게 무너질 벽을 가진 페이스트리. 페이스트리를 먹으며 공실이 느껴질 때마다 겹겹이 쌓인 추억 하나하나 떠오를 것 같다.

고명재 시인의 무채색 에세이 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에, ‘목탁’이라는 제목을 가진 한 편의 에세이가 있다. 한때 고명재 시인을 키운 비구니가 세상을 떠나자, 자신의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하여 속을 낱낱이 파헤쳐 모든 걸 싹 다 비워서 사용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그럼으로써 자신처럼 아픈 사람이 없게, 그리하여 누군가는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비어있는 관으로 진행한 장례식. 시인은 목관악기처럼 엎드려 오래 울었고, 비구니가 지내던 사찰에 가 나무로 된 심장인 목탁을 보며 텅 빈 채로 가득 찬 소리를 보았다고 했다. 비어있음으로 커다랗게 존재함이란 이런 것이리라…..

자신을 느리게 공들여 시를 쓰는 사람으로 설명하고, 자기가 쓴 시와 거리를 두기가 어렵다고 설명하는 고명재 시인의 말은 참 진실되게 들렸다. 시낭독회에 앞서 그의 시를 읽고 필사하면서 어렴풋하게 느꼈던 감정을 확인받은 듯해 반가웠다.


다음으로 낭독한 시는 시집의 표제작 이기도 한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이 시 또한 처음에는 ‘접종’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하는데, 이 대목을 듣고 낭독회에 참석한 이들 모두 약속한 듯 경악의 비명을 낮고 짧게 질렀다. 이런 반응에 당황해하며 고명재 시인이 열심히 설명하길, 당시 율라 비스가 쓴 『면역에 관하여』를 읽고 영감을 받아 붙인 제목이었다고…… 그 모습이 마치 변명하는 막내 동생을 보는 듯 해 귀여우면서 대견했다. 사실 ‘접종’이라는 제목은 예방접종을 떠올리게 하며, 의료분야와 관련된 시일 거라 짐작하게 하지 않나? ‘페이스트리’와 함께 이 또한 바꾼 제목이 훨씬 시와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시에서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 미래가 빛나서’라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모두가 감동. 키스라는 행위는 빛나는 미래를 당겨오는 행위이고, 함께 하는 미래가 빛나 눈이 부시니까 눈을 감는 것이라 생각했다는 이야기에, 또 한 번 시인의 감각에 감탄하였다.

고명재 시인의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시집의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와 「미더덕은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것처럼」 시 필사

이어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와 「미더덕은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것처럼」 낭독이 이어졌다.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는 살가운 아들이 어머니와 콩국수 집에 가서 시원한 콩국수를 먹는 장면을 묘사한 한 편의 산문시. 한 페이지 가득 연갈이도 행갈이도 없는 산문시가 빈틈없는 사랑으로 대화하는 모자를 보는 듯하다. ‘… 엄마 엄마 왜 자꾸 나는 반복을 해댈까 엄마라는 솥과 번개 아름다운 갈증 엄마 엄마 왜 자꾸 웃어 바깥이 환한데 이 집은 대박, 콩이 진짜야 백사장같아 면발이 아기 손가락처럼 말캉하더라…’. 아들을 둔 엄마라면 좋아할 시, 아들에게도 읽어주고 싶은 시다.

「미더덕은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것처럼」은 제목이 직관적으로 이해되며 흡수되는 시다. 이전에는 생각조차 못했지만, 제목을 듣는 순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존재인 양 미더덕이 새롭게 보이고, 시를 읽으면 미더덕의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시는 ‘젖은 것들의 물주머니를 보고 있으면 / 당신을 데려간 물혹이라든가’ 도입부로 시작하여, 물혹으로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있어 그를 그리워하는 시가 아닐까 짐작하게 한다.

물주머니를 가진 미더덕은 한때의 바다를 손에 움켜쥔 채로, 그 속에는 짙푸른 고래가 웅크려 있다. ‘당신을 떠올리면 세상이 좋아서 / 나는 기어코 풍선을 터뜨려버렸다’. 세상을 떠난 당신을 떠올리면 미더덕의 ‘얇은 미닫이문을 열어’ 짙푸른 고래가 넓은 바다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게 한다. 아름다운 추억이 뭉게뭉게 피어나, 당신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준다. 아귀찜이나 해물찜에 들어있는 미더덕을 좋아하는 편이라, 입에서 조심조심 굴리다가 웬만큼 식었다 싶을 때 과감하게 씹어 약간의 화장품 향과 오도독오도독하는 질감을 즐기곤 하는데, 앞으로 미더덕을 터뜨려 먹을 땐 고래 한 마리가 큰 바다로 향하는 상상도 할 것 같다.

고명재 시인의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산문집

시는 아니지만 고명재 시인은 앞에서 말한 무채색 에세이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에 실린 「뼈」라는 제목의 에세이도 한 편 낭독하였다. 노년에 접어들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아진 부부의 티격태격과 그 모습을 보는 아들을 보여주는 이야기. 어머니는 반찬가게를 운영하면서 장조림을 손으로 찢느라 엄지가 하늘로 굽고, 고구마줄기를 매일 벗겨서 손톱 밑이 새까만 갈색으로 물들었으며, 아버지는 관절염으로 관절이 음표처럼 튀어나왔다.

너무 낙천적인 부부는 그걸 보고 깔깔 웃으며 서로를 놀린다. 까맣게 물든 손톱 밑을 보며 어디 매장이라도 하고 왔느냐며, 동그랗게 굳은 관절을 보며 당이 떨어져서 손가락에 알사탕을 박은 거냐며…… 이렇게 유쾌하게 나이들고 싶다.

아들이 보기에 장조림은 칼로 썰면 되고, 고구마줄기 반찬은 만들지 않으면 될 것 같은데, 어머니는 장조림은 손으로 찢어야 제맛이고, 고구마줄기 벗기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한다. 나이 듦에 따라 어느 정도 몸이 불편해지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즐거움은 유지하는 내가 되고 싶다.


어느덧 고명재 시인과의 시낭독회가 마무리되는 시간, 글을 혼자 써온 기간이 길었다고 한다. 한 청년이 오랜 시간 고독 속에서 잘 쓰이지 않는 시를 붙들고, 자신에겐 능력이 없다며 좌절했다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조금씩 써 내려가며 편안해지게 된 일련의 과정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래서 독자들과 만나서 읽고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고명재 시인의 말에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래 얼마나 좋을까? 참 좋겠지…… ‘ 그 좋아하는 마음이 참여자들에게 정성껏 저자 서명을 해주고 잉크가 잘 마르도록 ‘후~’하고 부는 입바람과 진지한 표정에 담겼다.

내가 가진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에 그렇게 받은 서명은 언뜻 ‘고맹새’로 귀엽게 읽힌다. 반달서림 덕분에 고명재 시인의 첫 시집부터 함께 하는 즐거움을 얻었으니, 앞으로 나올 고명재 시인의 시집과 기쁘게 동행해야겠다.

시낭독회 후『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시집에 받은 '고맹새'로 보이는 고명재 시인 서명
정성껏 저자 서명을 한 후 잉크가 잘 마르도록 ‘후~’하고 입바람을 부는 시인, 그림책을 살펴봄
고명재 시인의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시집의 「아름과 다름을 쓰다」, 「뜸」과 「자유형」시 필사


*참고 자료

1.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고명재, 2022, 문학동네

2. 『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2023, 난다

3. 반달서림 블로그의 고명재 시인 시낭독회 안내문 (https://m.blog.naver.com/bandalseorim/223136853734)

4. 난다 출판사 라이브 방송 https://www.instagram.com/tv/Cuf4iIbK5QX/?igshid=MzRlODBiNWFlZA%3D%3D

5. 반달서림 블로그의 고명재 시인 시낭독회 후기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3160077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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