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 서점원 비밀책친구가 되다

- 서점원들과 함께 한 마니또 이벤트

by 줄기

* 2025년 6월 14일 (토요일)

화창한 6월의 아침. 둘토자봉(둘째 주 토요일 자원봉사) 서점원으로서 반달서림에 출근하였다. 환기를 하고, 전날 내린 비가 고인 화분 박스 안의 물을 버리고 청소를 한 후, 서점 내부를 정리하며 <장필순 reminds 조동진> 앨범을 반복해서 들었다. 아침 바람 소리를 닮은 장필순 님의 음색으로 전하는 차분하고 따뜻한 노래는 좋은 음악이었다. 그 속에서 읽는『올해의 좋은 동시 2024』. 동시는 어린아이들이 읽는 시, 어른이 읽기엔 왠지 부끄럽다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반달과5펜스에서 시필사를 하며 당당히 동시를 접할 때면 공감하고 감동을 받곤 해서 신기했다. 서유석 님의 노래 「너 늙어봤냐? 나는 젋어봤단다」를 넘어 더 어려봤던 나, 어렸던 동심이 내 안에 남아 시에 반응을 한 것인가? 시와 함께 어우러진 그림도 시를 더 가깝게 느끼게 해 준 측면도 있었고...... 내가 좋아했던 시를 가만히 돌이켜 보면, 곶감처럼 한껏 함축된 시보다는 감말랑이처럼 함축의 강도가 그다지 세지 않은 시, 이를테면 서정시나 생활밀착형의 시에 끌리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시에 대한 내공이 좀더 강해져 곶감같은 시의 달콤함도 누릴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길.

6월 14일 토요일 반달서림의 아침


<장필순 reminds 조동진> 앨범을 들으며 읽은 『올해의 좋은 동시 2024』

날씨가 좋아 손님들은 야외로 놀러 가신 걸까? 좀처럼 손님이 들지 않는 오후, 서점원 단체 카톡방에 반달서림 대표님의 메시지가 울렸다.

“상반기를 무사히 잘 보낸 것을 기념하며 책 마니또를 한 번 해볼까 하는데요.
뽑기 통에 이름 써서 넣어두고 자기 이름 나오면 다시 뽑고요.
누군가의 이름을 뽑으면 그 사람에게 주고 싶은 책 한 권을 고르고,
엽서 한 장 써서 선물로 두는 거예요.”

두 팔 벌려 환영. 이로써 뽑기 통을 만들어야 하는 미션이 생겼다. 적당한 상자를 찾아 뽑기 통을 만들고, A4용지 하나에 서점원들과 프로그램 운영 작가님들 총 13명의 이름을 프린트한 후, 이름별로 잘라 여러 번 접은 후 뽑기 통에 넣었다.

제일 처음 이름을 뽑는 행운은 나의 것.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쪽지 하나를 뽑았다. 이름을 확인하니 이름의 주인공과 나누었던 이야기들 장면들이 머릿속에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의 마니또에게 어울리는 책을 찾기 위해 다시 서점의 서가를 둘러보았다. 몇 번을 둘러본 서가이고 익숙한 서가이지만, ‘마니또 선물 고르기’라는 목적을 갖고 보는 서가는 또 다르게 보인다. 책 한 권 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니또가 그 책을 들고 읽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 모습이 어울릴 책을 찾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가 고른 책은 『창백한 지구를 위한 시』였다. 시필사를 하며 알게 된 많은 시인들이 ‘지구 지키기’를 주제로 쓴 시와 에세이가 각 한 편씩 실린 책이었는데, 지구를 지키기 위한 창의적 노력이 필요한 이 시대에 예술 활동을 하는 나의 마니또 영역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달서림 마니또 뽑기통에 담긴 이름들




6월 14일 토요일에 시작한 마니또 이벤트는 일주일 안에 마니또에게 보내는 선물과 편지를 준비하고 서점 한편에 모아 둔 후, 6월 23일부터 27일까지 일주일 동안 마니또가 자신의 이름 앞으로 보내진 선물을 가져가는 일정으로 계획되었다. 6월 14일 토요일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창백한 지구를 위한 시』 포장을 바로 하고 싶었지만, 이 날은 마니또 멤버 중 한 명 아르케컬처의 대표님의 무지카클래시카 <오르페우스와 별들> 음악회가 묵리459에서 열리는 날 (https://brunch.co.kr/@ebec0174a6a7411/58). 음악회를 충분히 즐기고 돌아오니 어느덧 늦은 밤이 되어 마니또 선물 포장과 편지 쓰기는 다음 날로 미루었다.

다음날 아침, 책을 가져와서 서툰 손으로 선물 포장을 시작했다. 생태주의 서점 반달서림의 월간 서점원으로서, 그리고 『창백한 지구를 위한 시』 책을 포장한다는 의미에서 별도의 포장지를 구매하기가 꺼려져 서류봉투를 재활용한 포장을 하고, 모아두었던 리본을 꺼내 꾸미고 필체를 감추기 위해 컴퓨터로 편지를 써서 고이 접어 선물의 형태를 완성했다.

나의 마니또에게 줄 『창백한 지구를 위한 시』와 편지. 그리고 완성된 포장

마니또 선물을 두기 위해 서점을 들른 날. 마니또 선물 옆에 티백이 부착된 작은 봉투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셔서 6월을 끝으로 서점원 활동을 마무리하시는 J작가님이 서점원들에게 보내는 선물이었다. J작가님으로 말하자면 2023년 10월부터 무려 21개월간 에세이 쓰기 모임과 북클럽을 운영하시며 반달서림의 목요일을 지켜 주셨던 반달서림 1호 서점원으로 소위 반달서림 터줏대감. 남겨진 서점원들 마음에 커다란 기둥이 하나 빠져나가듯 밀려들어올 허전함과 그리움을 채워주려는 J작가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사)행복한아침독서의 ‘책으로 안부 묻기’에 기고한 반달서림 대표님의 글(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25/07/01/202507010900251653.html)에도 J작가님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이 나무의 안부에 실려 있었고, J작가님 또한 따스한 답장을 자신의 블로그(https://blog.naver.com/long_dream/223915957368?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에 올려, 이별에 대한 아쉬운 마음의 농도를 더해주었다.


일부 모인 마니또 선물과 J 작가님이 서점원들에게 보내는 선물
나의 마니또 선물, 이사로 서점원 활동을 멈추게 된 J작가님의 이별 선물, 보다 먼저 서점원 활동을 그만 두신 시인님의 손수건 선물과 함께

모여진 마니또 선물에 내 이름이 쓰인 상자가 눈에 띄었다. 선물을 들고 집에 와서 개봉, 상자 안에는 마니또 원칙에 충실한 포장과 쪽지가 있었다. 종이 재질의 완충재를 풀고 마침내 드러난 책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였다. 폴란드 출신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또한 시필사를 하며 알게 된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녀의 시 <두 번은 없다>를 나도 좋아한다. 결코 똑같은 것은 존재치 않으며, 단 한 번만 있을 뿐이다. 존재했으니 사라지는 존재, 동일한 실패도 같은 성공도 없으니 경험을 하는 것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용기를 주는 말이다. 쉼보르스카 시인은 어떤 책을 읽고 서평을 남겼는지 궁금해서 본 목차는 1967년부터 2002년까지 시대별로 책 목록이 구분되어 기재되었는데, 내가 읽은 책과 겹치는 책은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 균, 쇠』 단 한 권이었다. 해당 파트를 펴서 읽어본 인상은 1923년 생인 쉼보르스카 시인이 70대의 나이에 『총, 균, 쇠』를 읽고 감명을 받은 것 같다는 것.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감탄하는 70대 시인에게, 나이와는 무관한 젊음이 보였다.

보통 서평집을 읽을 때 해당 책을 먼저 읽은 후 서평과 비교하는 지라 『읽거나 말거나』는 빠른 시일 안에 완독 하지 못할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읽거나 말거나』에 언급된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노시인의 서평을 읽어볼 것 또한 확실하기에 마니또 선물을 서가에 잘 꽂아 두었다.

마니또로부터 받은 선물 『읽거나 말거나』와 편지

자신의 마니또를 추리하는 마지막 시간. 나를 뽑은 마니또는 컴퓨터로 짧은 글을 남겨 필체는 숨겼지만, 인쇄된 폰트가 무색하게 문체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약속된 날짜에 공개된 마니또 결과는 당연하였다. 신기했던 것은 13명의 마니또 멤버 중 2명을 제외한 11명이 자신의 비밀책친구를 맞춘 것. 요일이 달라 서로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반달서림이라는 물리적 공간과 단체 카톡방이라는 사이버 공간에 마니또가 누구인지 짐작케 할 수 있는 서점원들 개성의 실마리가 널려 있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나 생각한다. 뭔가 오류가 있었던 듯 자신의 이름을 뽑은 채 진행된 하나가 살짝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서점원들과의 유대감이 향상되어 즐거운 마니또 이벤트였다.


*참고자료

1. 반달서림 블로그: 2025 상반기 반달서림 마니또 리뷰 (https://blog.naver.com/bandalseorim/223922604035)

2. 『올해의 좋은 동시 2024』 안도현, 이안, 권영상, 유강희, 김제곤 (지은이), 배도하 (그림), 상상, 2024

3. 『창백한 지구를 위한 시』 이문재 외 21명, 마음의숲, 2025

4. 『읽거나 말거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최성은, 봄날의책, 2018

5. 강효진 작가님 블로그: 반달서림 마지막 출근 (https://blog.naver.com/long_dream/223918513661?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6. 강효진 작가님 블로그: 반달서림 대표님이자 나의 시벗에게 띄우는 답장 (https://blog.naver.com/long_dream/223915957368?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7. 행복한 아침독서 – 책으로 안부 묻기 (http://www.morningreading.org/article/2025/07/01/2025070109002516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