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은 나무의 화려한 뜨개옷을 입고
* 2025년 10월 25일 (토요일)
아침에 집을 나선 후 숲길을 걸어 도서관을 들른 다음 서점으로 출근하였다. 집에서 도서관까지의 숲길, 초반 나지막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도서관까지는 비교적 평지라 부를 수 있는 완만하게 숲길이 이어져 있다. 도서관을 지나면 본격적인 등반 모드가 시작되지만, 어쨌든 도서관까지 그 숲길을 걸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우리 동네는 은퇴 후 살기 좋은 동네라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몇 년 전부터 이사오 시는 어르신들이 많아졌고, 건강을 챙기시며 산을 찾는 어르신들도 많아졌는데, 고령화되는 지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서인지 숲길에 야자수매트는 걷어지고 맨발 걷기에 적합한 황톳길이 조성되었다. 황톳길에 대한 지역민의 사랑을 반영하듯, 시에서는 매월 어르신을 위한 황톳길 걷기 모임이 있다는 안내 현수막도 내걸었다. 이렇게 여러 좋은 점이 많은 황톳길에 단점이 있으니, 바로 비 오는 날이나 비 오는 직후 진창이 된다는 것으로, 다니기에 불편함이 만만치 않았다. 그랬는데, 그 사이 마법처럼 황톳길 옆에 데크길이 생겨 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 길을 얼마나 오랜만에 찾은 걸까? 시의 실행력에 한번 놀라고, 좋아한다 해놓고는 상당기간 찾지 않은 나의 무심함을 반성했다.
도서관에서 모임책을 반납하고 나오며 게시판을 둘러보노라니, 55세 이상 혹은 60세 이상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도서관 프로그램 안내가 많은 점이 눈에 띄었다. 주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것과 관련된 프로그램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주문을 받는 데 키오스크를 적용하는 매장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어르신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뉴스가 종종 보도되고, 그래서 키오스크 사용하는 방법을 어르신들께 교육하는 도서관 프로그램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또 자녀들은 부모님들께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대화 상대로 활용하는 법을 알려드린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세상이 바뀌는 속도가 가늠이 되지 않아 내가 더 나이가 들어 어르신이 되었을 때는 그 세상에 맞추려 어떤 교육을 받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서점에 도착해서 현관 옆 화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집 베란다에서 키웠던 미스김 라일락이 집에서는 본 적이 없는 신기한 잎색깔을 띠고 있다. 미스김 라일락도 단풍이 드는 걸 알았다.
서점문을 열고 들어가 청소를 막 마칠 때 미리 주문하신 책을 찾으러 손님이 오셨다. 아침 이른 시간에 손님을 만나니 반가움이 더 했는데, 혹시 반달서림 스탬프는 없냐는 더욱 반가운 질문을 하셨다. 반달서림에서 구입한 책이라는 인증을 남기고 싶으시다고…. 카운터 서랍에서 당당하게 스탬프를 꺼내어 책 첫 페이지 (북토크에서 면지라고 불린다고 배웠던 거 같다)에 예쁘게 찍어드렸다.
사실 한동안 서점 스탬프가 없이 지냈던 때가 있었다. 반달서림 초창기 마련했던 첫 번째 도장이 어느 날 사라져 버려 상심한 마음에 구매하지 않고 지냈던 것. 그런데, 종종 손님들이 스탬프를 찾으신다는 이야기를 다른 서점원들이 단톡방에 올린 것을 보고, 대표님이 그동안의 상심을 벗고 주문한 스탬프였다. 그렇게 돌아온 스탬프를 찍으니 이전 스탬프와 다른 것 같아 예전에 찍은 스탬프랑 비교하니 크기가 살짝 작아져 있었다. 어쩐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Guardians of the Galaxy)》 에서 죽었던 그루트가 베이비 그루트로 돌아온 것 같은 귀여운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반가운 친구가 서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근처 유명 식빵가게에 갔다가 겸사겸사 들렀다는 친구 서로의 근황이야기를 할 때, 서점 전화벨이 울렸다. 지역화폐로 적립한 독서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느냐는 문의 전화였는데, 나는 금시초문에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이건 어떤 정책일까 싶어 알아보고 다시 답변을 드리겠다고 한 후 전화를 끊고, 찾아보니 경기도에 정말 그런 제도가 "2025년 천권으로 독서포인트"라는 이름으로 있었다.
2025년 7월 1일부터 11월 24일까지 독서 관련 활동을 하면 포인트가 적립되고, 25일마다 지역화폐로 전환되면, 서점에서 도서를 구매할 수 있는 제도를 난 이제야 손님 전화로 알게 된 것이다. 손님께 가능하다는 답변을 문자로 보내 놓고, 오늘 오픈하는 경기도서관에 회원으로 가입이 필요한 것 같아 바로 가입하였다. 나 또한 독서포인트를 쌓아 지역화폐로 전환시켜 책을 구매해 보리라. 생각하면서……. (참고로 "2026년 천권으로 독서포인트"는 3월경 운영이 재개된다는 소식이다.)
밖에는 “마을에서 신나게 놀아용” 행사가 한창이라 간간이 음악이 들어온다. 음악과 함께 손님도 들어오시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양성원 첼리스트 음반을 들으며 반달클래식클럽에서 함께 읽는 책 『전쟁과 음악』을 읽었다. 초반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점점 흥미로웠던 책으로 1,2차 세계대전을 거친 현대 클래식 음악에 대해 많은 것을 접할 수 있어 좋았던 책이다. 그때의 음악가들과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 음악가들이 겪은 고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고......
문 닫기 직전 들어와 서가를 둘러보시고 예쁘게 인사하시고 나가신 손님을 마지막으로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영업을 마쳤다. 출근 길과 다른 길로 퇴근하는 중 색색으로 예쁘게 뜨개옷을 입은 나무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제 겨울이 머지않겠다 싶어 출근할 때 보았던 미스김 라일락의 가을 단풍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 참고자료
1.『전쟁과 음악』 존 마우체리/이석호, 에포크, 2025
2.『에코 오브 로망스 : 슈만 & 브람스』, Johannes Brahms, Robert Schmann, Clara Schumann 작곡/ 양성원, Emmanuel Strosser 연주 외 3명, Universal / Decca Record, 2024년
3. 나무위키 : 그루트(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https://namu.wiki/w/%EA%B7%B8%EB%A3%A8%ED%8A%B8%28%EB%A7%88%EB%B8%94%20%EC%8B%9C%EB%84%A4%EB%A7%88%ED%8B%B1%20%EC%9C%A0%EB%8B%88%EB%B2%84%EC%8A%A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