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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맑음 Sep 12. 2024

[에세이] 내가 만든 레모네이드

11화 내가 만든 레모네이드.


휴직을 하고 수술을 하기까지 3주 정도의 시간이 남았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고 좋은 마음을 받았다.


마음을 받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먼저 표현하는 것이 지름길이었다.


“서운하던 것이 있었어요. 제가 서운하다고 이야기했으면 왜 그랬는지 설명해줄 좋은 사람들을 두고 저는 왜 혼자 꽁하고 있었을까요?”


내가 털어놓은 진심에 진심으로 응해주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꽁해지던 작은 사건들 뒤에는 늘 이유가 있었다. 서운한 뒤에 놓여있던 사연을 나는 여럿 알게 되었다.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도통 얼굴을 보여주지 않던 동굴 속의 친구는 내가 아프다는 말에 2시간 만에 머나먼 땅에서 나를 만나러 달려왔다. 내가 눈치가 빨라서 다행이다. 그녀가 말하지 않은 그녀의 다급함과 눈물까지도 나는 알 수 있었다.


친구가 했던 이야기 중에 가장 고마웠던 말이 있다.


“널 만나기까지 두 시간이면 되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 이젠 널 만나러 오기 위해서 망설이지 않을 거야.”


대한민국이란 땅은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다. 가장 멀다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차로 몇시간이 걸릴까. 채 하루가 걸리지 않는 도로로 우리는 연결되어있다.


물론 수술 전에 해주고 싶었던 말이 있어서 날 보러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응답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그 사람을 향하던 마음의 문을 조금 닫았다.


그리고 내 수술 날은 마침내 다가왔다. 수술 전날 병원에 입원하였다. 1인실이었기에 조용했다. 내가 입원한 곳은 산부인과 병동이었고 맞은 편에는 소아과 병동이 있었다. 아이들은 처치를 받을 때마다 울었는데 조그마한 아이들이 아픈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겐 작은 아이로 보인 모양이다. 남편과 아버지가 번갈아 가며 나를 간호하였다. 수술 전에는 침대에 멀뚱거리며 누워있었다. 수액을 꽂으니 수마가 몰려왔는데 진정 성분이 같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엔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기에 단비 같은 잠이었다. 여러 번 인터뷰하였고, 수술 날의 새벽은 받아야 할 처치들로 자다가 깨기 일쑤였다. 수술에 대한 설명은 들을수록 무서웠기에 의식적으로 잊으려 노력했었다.


그리고 수술용 혈관을 잡은 후 수술복으로 갈아입었고 수술실로 향하는 침대에 실리게 되었다. 수술을 자주 받아본 나는 일련의 과정을 알았지만, 당시 내 옆을 지키던 남편은 모든 과정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았다.


내 머리맡에 선 남편이 불안해하는 것이 보였는데 그게 조금 귀여웠다. 눈을 뜨고 이동하면 어지럽기 때문에 눈을 감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실에서 수술실로 이동하였다. 나를 마중 나온 의료진이 아빠와 남편에게 여기서 헤어져야 한다고 했다.


“잘하고 올게.”


나는 꽤 덤덤하게 말했다. 안녕하고 손을 흔들고 나서는 조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무서워서였던 것 같다. 나는 처치실로 들어섰고 따뜻하게 데운 거즈에 둘러싸였다. 체온을 데워주면서 연신 질문을 쏟아냈다.


“환자분 무슨 치료 받는지 아세요?”

“어떤 부위에 수술을 받게 되는지 아세요?”

“평소 알레르기는 없으세요?”


질문이 반복적으로 쏟아졌고 다섯번 정도는 같은 말을 하였다. 내가 입원한 병원은 기독교 병원이었는데 곧 수녀님이 오셔서 나에게 기도를 해주었다.


“오늘 수술을 통해서 환자가 아픈 곳이 없도록 다시 태어나도록 해주세요. 수술하는 의료진, 그리고 환자의 앞날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마 그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 사람이 왜 종교를 가지는지 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본래 나는 무교지만 그 순간에는 수녀님이 얼마나 자비로워 보였는지 아직도 기억한다. 그분의 기도처럼 수술 후 말끔하게 나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 후엔 수술실의 복도들을 지났다. 안쪽에 마련된 나의 수술실로 이동하였고 그 안을 꽉 채운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똑같은 질문을 다시 쏟아낸 후에 수술 시간이 1시간 반 정도 걸릴 것이라고 했다.


나는 마취되어 눈을 감고 있을 터이니 이제 그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잘 부탁한다고 말했는지 그저 울먹였는지 기억하지 않는다.


수술실을 비추는 조명은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그 아래에서 누워서 후회할 만할 일들은 해치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취약에 취해서 눈을 감았고 내 수술이 시작되었다.


잠시 잠이 든 것 같은데 웅성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정면에 시계가 보였는데 나는 9시에 수술실에 들어섰던 것이 기억났다. 시계는 12시를 조금 넘겼다.


‘아, 세 시간이 지났구나. 문밖의 가족들이 걱정했겠다.’


첫 번째로 든 생각은 그것이고 그 후엔 통증이 밀려왔다. 의외로 버틸 만 했다. 수술을 담당했던 교수님이 자궁 내부의 상태가 예상보다 좋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고 이야기했다.


곧 입원실로 옮기기 위해서 침대가 이동했는데 남편의 얼굴이 정면에 보였다. 나도 수술실 밖에서 애타게 기다려본 적이 있기에 잠들어있던 나보다 더 고생한 것 같은 남편이 걱정되었다.


“여보, 괜찮아?”


“괜찮겠어? 안 괜찮아. 아파 죽을 것 같아.”


내 식의 농담이었고 엄살이었다. 남편은 그제야 구겨진 인상을 펴면서 웃었다. 아빠도 같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순간엔 남편만 보였다.


내가 놓친 것은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 중 교수님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파 죽을 것 같다는 환자를 위해서 교수님은 강력한 진통제를 처방해주었고 곧 괜찮아졌다. 무통 주사를 주렁주렁 매달고 소변줄까지 한 채로 병실에 다시 누웠다.


잠시 멍하게 있다가 남편에게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 그 시간에 내가 수술을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았기에 늦은 연락에 걱정할 것 같았다.


휴대폰을 확인하고 잠시 감동했다. 7개의 문자 메시지와 175개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른 답해주고 싶었는데 기력이 없었다. 남편에게 답장을 부탁하고 다시 잠들었다.


나중에 깨어나서 차근차근 문자를 읽어보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따뜻한지 알게 되었다.


‘금방 나아야지. 여기서 제일 회복이 빠른 환자가 되어야지.’


그때 결심했다. 다음날 소변줄을 떼고 천천히 걷는 걸 연습했다. 교수님이 회진을 돌 때에는 이미 의자에 앉아있었는데 빠른 회복에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


그날 밤부터 병원의 정원을 걸었다. 기독교 병원이기에 치유의 정원이라고 불리는 그곳엔 성모상이 있었다. 한없이 자애로워 보였다. 그 아래를 걷다가 다시 병실로 돌아갔다. 병원 밥은 생각보다 맛있었고 매일 아침 수녀님은 기도를 해주러 오셨다.


복대를 한 달가량 차야 했고 할 수가 있는 것은 적었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내 주변에 날 걱정해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퇴원 후에도 나의 새벽은 조금 힘겨웠다. 진통제를 먹으면서 어두워지는 밤을 구경했다. 그래도 힘든 산을 하나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강경 수술을 두 번 한 나는 배에 7개의 구멍이 있는 여자가 되었다. 흉터를 조금 얻었지만 아픈 곳을 고쳤다. 그래서 남편에게 자랑했다.


“여보, 이것 봐라. 나 짱 센 여자다! 배에 구멍이 7개다!!”


애니메이션에서 들었던 대사인 것 같은데 ‘무인의 흉터는 살아남은 증거다.’ 그런 말을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아무나 얻을 수 없는 흉터를 여럿 가지게 되었다.


흉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곧 아물어 흉터는 내 살의 일부가 될 것이고 무사히 내 앞에 놓인 산을 넘었다는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흉터를 얻는 대신 희망도 함께 얻었다.


그래서 나는 이 경험을 조금 이르게 찾아온 [행운.]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처음 병을 알게 되고 수술받을 때까지 10개월가량의 시간 동안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삶이 나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걸로 레모네이드를 만들라는 말 말이다.


서양권에서는 레몬이라는 과일을 시고 맛이 없는 쓸모없는 과일로 치부한다고 한다. 그래서 레몬을 시련에 비유했다는데 나는 레몬도 좋아하고 사이다를 타서 맛있게 만든 레모네이드도 좋아한다.


아직 체력이 남아있는 젊은 나이에 큰 고비를 넘다니 완전 럭키 비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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