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나의 팔레트에 담긴, 블랙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그래도 팔레트를 좋아하는 특이한 취향이 있다. 팔레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하나인데 나는 색의 민감도가 높은 사람이다. 색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겐 하나로 보이고 다른 누군가에게선 열가지의 색깔로도 보이기도 한다.
한때 상업광고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이 중에서 ‘딸기 우유색 립스틱을 골라보세요.’ 비슷비슷한 분홍색이 가득 찬 팔레트에서 아르바이트생은 정확히 딸기우유 색을 골라냈다. 그에게 핑크는 다 같은 분홍이 아니었다.
내 가치관을 이루는 것 중 하나는 색깔론이다. 나는 나와 상관없거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채색의 무언가로 본다. 그런 사람 중 나에게 색깔로 다가오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색깔이란 것은 사실 빛의 파장이다. 거기에 우리는 이 색을 무엇이라고 부르도록 합의한다. 그렇게 색깔이 태어났다고 나는 믿는다.
나에게 색깔로 다가온 사람 중, 모두를 팔레트에 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 팔레트에 담기로 결정했던 특별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소개할 색은 내 팔레트의 블랙이다.
블랙은 조금 특별하다. 그는 영원히 23살로 살아간다. 나는 그 친구를 23살에 남겨두고 혼자 나이를 먹어갔다. 그는 내가 25살의 나이, 한창 대학에서 일을 할 때 근로학생으로 만났던 학생이었고 23살에 죽었다.
같은 대학의 후배, 그리고 같은 학과인 근로학생에게 마음을 연 것은 당연했다. 그는 성실했고 내가 아는 누구보다 착했다. 그에게 어수룩한 면이 있다는 것을 나는 진작 알았다. 그래도 그 어수룩함이 싫지 않았다. 그가 그 성격으로 인해서 사고를 당할 줄 알았다면 나는 그가 싫어하더라도 잔소리하고 소리쳤을 거다.
그를 잃은 것은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사무실로 전화가 왔고 특별한 것 없는 하루였다. 그날은 그가 휴가를 낸 첫날이었고,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를 한 다음 날이었다.
‘근로학생 박**군이 실족사하여 사망하였습니다. 현장에서 즉사하였고, 시신을 고향으로 이송합니다.’
내가 전달받은 내용이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을까? 내 책상에는 어제 그가 떠나면서 건네준 캔 커피가 아직도 존재했는데 그가 사라졌다.
그가 떠나기 전, 그는 나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시간이 조금 걸리는 단순 작업이었다. 나는 그가 도와주지 않아도 일을 마쳤을 것이고 그가 내 일을 도와주다가 다른 선임의 지시를 놓쳐서 혼이 났기에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퇴근 무렵 내 자리로 온 그는 평소처럼 다정하게 웃으며 캔 커피를 건네주었다.
“오늘 일 다 못 도와드려서 미안해요. 쌤 커피 좋아하잖아요. 이거 드세요.”
그는 내가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혼이 난 사실보단 내 일을 도와주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 것 같았다. 나는 그가 기특해서 그저 웃었다. 잘 마시겠다고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괜찮아. 나머지는 내가 하면 돼.”
“쌤 힘들잖아요. 제가 도와주면 쌤이 편했을 텐데 죄송해요.”
그게 마지막 대화였다. 등산을 간다며 퇴근 시간 인사를 하던 그를 배웅하면서도 나는 그저 손만 흔들었다. 그때에는 등산이라는 것이 그렇게 위험할 거라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어린 나이였기에 하루아침에 내가 알던 누군가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했고 나는 차가 없었다. 그의 고향에 차려진 장례식장은 내가 대중교통으로 편도 3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에 있었다. 그래도 나는 가기로 결정했다. 처음 겪어보는 동생의 죽음에 갈팡질팡하던 내가 결국 가기로 결정해서 지금도 다행이다.
동료 몇과 기차에 올랐다. 조용히 그의 페이스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진작 친구 요청을 했지만 무심한 나는 그제야 수락 버튼을 눌렀다. 울고 있는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울지 않았다. 어딘가 고장 났나 싶어질 정도로 덤덤했는데 나중에 알았다. 나는 그가 죽은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빈소에 도착해서 그의 이름을 찾았다. ‘박 블랙, 23세.’ 그제야 눈물이 흘렀는데 내가 너무 울어서 다른 사람들의 눈물이 가려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영정사진을 보면서는 오열했다. 제대로 된 영정사진이 없어서 원서에나 붙일 증명사진을 가져다 놓은 그의 장례식장.
대학에서도 먼 고향이었고 친구들이 아직 어렸기 때문인지 빈소에는 그의 부모님의 지인들만 가득했다. 거기에서 울고 있는 내 모습에 그의 어머니는 내 손을 잡으면서 고맙다고 했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친구예요?”
“아뇨. 직장 선배들이고 대학 선배예요.”
“우리 아들, 산에 못 가게 말리지. 위험하다고 해주지, 그랬어요.”
그녀가 속상해서 털어놓은 말이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지금도 사무치는 것은 내가 그에게 조심하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나는 그에게 두 가지 말을 해주고 싶다.
“괜찮아. 일은 내가 마저 하면 돼. 네가 꼭 도와주지 않아도 되었는데 도와줘서 고마워. 오늘 이렇게 도와준 걸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산은 위험해. 꼭 정신 똑바로 차리고 조심해서 다녀와! 건강하게 다녀오고, 또 평소처럼 덤벙거리면 안 된다!”
그 이야기를 해줬다면 어땠을까. 아직도 그는 보고 싶으면 가끔 볼 수 있는 동생이었을까.
그가 없음에도 내 일상은 이어졌다. 나는 가끔 이야기하다가 웃었고, 예능도 보았다. 웃다가도 갑작스레 굳어졌던 몇 달이 있었다. 그가 없는데 나는 웃어도 되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었다.
시간이 흘러서 페이스북에 그의 생일 알람이 떴다. 그의 친구들이 남긴 메시지를 훑어보다가 그의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보고 싶다고, 내가 알던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착한 사람은 너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노래를 보냈는데 [If i die young]이라는 노래였다. 노래의 가사는 덤덤하게 내가 어려서 죽게 된다면 나를 비단에 싸서 강물에 떠나보내고 사랑의 노래로 배웅해달라는 가사였다.
그것은 내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라면 분명 그런 말을 나에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답장이 왔다. 그의 아버지였다.
“블랙의 아버지입니다. 아들을 지금까지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의 메신저는 제가 이어서 쓰고 있습니다. 아들 옆에 이런 좋은 사람이 있었다니 고맙습니다.”
그때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잊어가는 부모에게 이기적인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했다. 몇번을 망설이다가 메시지를 지웠다.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그때에도 알았더라면 진심을 담은 위로와 부모가 몰랐을 그의 사회생활, 학교생활에 관해서 이야기 해주었을 것이다.
블랙을 떠나보내고 알았다. 해야 할 말은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영원히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그를 보내고 나서 나는 좀 달라졌다. 고마움도 미안함도 전해야 할 때 전하기로 결정했다. 아직도 잘되지 않지만 내가 누군가를 좋은 사람으로 여긴다면 이야기할 적당한 때를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아직도 나와 비슷한 나이가 된 그를 상상한다. 가끔 술 한잔 하면서 그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후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 팔레트에 담긴 블랙은 무채색이 아니다. 그보단 사무치게 그리워하지만, 색을 떠올릴 수 없는 블랙이 되었다.
시간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도 나는 캔 커피를 볼 때마다 내 블랙을 떠올린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이 보고 싶을 때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시는 그와 이야기할 수 없고, 만날 수도 없다.
나의 25살은 언제나 함께할 것 같은 친구, 동생들이 언젠간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나이가 되었다.
아이궁 드디어 에세이 복구 다 했네요
카카오톡 계정과 관련하여 사정이 있어, 기존 연재했던 계정을 삭제하고 재연재하는 작품입니다. :)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