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소에성터에서 발견된 고려 기와장은 마치 시간의 틈새에서 건져 올린 보물 상자 같았다. 낡은 기와장에 새겨진 '癸酉年高麗瓦匠造'라는 글귀는 나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나는 고려에서 왔단다. 먼 옛날, 바다를 건너 이곳까지."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 기와를 만들었을까? 류큐와 고려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
핵소릿지에 올라서자, 발밑으로 펼쳐진 풍경은 마치 거대한 회색빛 캔버스 같았다. 한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이곳은 이제 고요하기만 했다. 데스몬드 도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그의 용기는 내게 작은 울림을 주었지만, 동시에 내 안의 공허함을 더욱 크게 느끼게 했다.
우라소에성터와 핵소릿지, 그리고 고려 기와장.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모두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에 휩쓸려 변화하는 모든 것들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듯했다. 마치 낡은 재즈 레코드판의 침이 긁는 소리처럼,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우라소에성터와 핵소릿지를 방문하며 나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강물 속을 떠도는 작은 배처럼 느껴졌다.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인 채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