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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빈 Nov 21. 2023

한국 음식이 좋아 종업원이 된 브라질과 포르투갈 소녀들

포르투갈, 포르투(Porto)

사랑하는 일을 하며 목표 없이도 인생은 아름다울 수 있어요.



시각: 2023월 10월 14일, 16시 - 18시 - 포르투갈, 포르투(Porto)

장소: 온도 식당(Ondo Korean kitchen)




  전 직장 동료이지만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네덜란드인 친구가, 네 번이나 방문했다며 날 데려간 곳이다. 한국인인 주인아주머니와 다섯 명의 현지 스태프들이 모든 음식을 연구하고 만든다고 한다. 주인아주머니가 적극적으로 자리를 만들어주신 덕분에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들이 정의하는 '목표'의 개념은 곱씹을 만큼 내게 신성한 충격을 주었는데, 여러분과 공유할 수 있어 기쁘다.  


온도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아주머니와 현지 스태프






- 한국 음식을 만드는 주인공이라고 들었어요.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바르바라: 안녕하세요, 저는 온도(Ondo)에서 일하고 있는 바르바라(Barbara)라고 합니다. 브라질에서 왔고, 여기서는 작년부터 일을 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웨이터로 일을 시작했다가 지금은 요리도 하고 이벤트나 워크숍도 기획하는 일까지 담당하고 있지요.


아나: 저는 아나(Ana)입니다. 포르투갈 현지인이고, 일한 지 3년 정도 되었어요. 여기서 메인 요리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워낙 손으로 만드는 걸 좋아해서 레시피를 다양하게 시도하고, 다른 한국음식보다 더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연구해요. 음식 맛을 비교하려고 포르투의 한국 식당은 거의 다 가볼 정도로 일이 좋아요.




- 어떻게 한국 음식을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바르바라: 예전부터 K pop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저는 원래 영화(Film)를 전공했는데, 이후 예술을 전공하러 포르투갈로 이사 왔다가 코로나가 닥치면서 제가 공부한 것들과 관련해 취업을 하기가 힘들어졌어요. 마침 한국 식당에서 종업원을 구한다는 걸 알았고 어차피 한국 음식 좋아하니까 해보자, 하는 마음에 가볍게 시작했다가 여기까지 왔죠.



아나: 여동생이 김밥을 좋아해서 저한테 만들어보라고 시켰다가 시작됐어요. 아버지도 가족도 모두 한국 음식을 좋아해서, 제가 만든 김밥을 정말 맛있게 먹더라고요. 저는 원래 제빵을 전공했기 때문에 디저트에도 관심이 많아서 음식에 대한 관심이 한국과 합쳐지니 시너지가 났던 것 같아요. 이후 온도 식당에 취업하면서 더 배우고 제 실력을 다듬을 수 있는 직장을 찾게 된 거죠.



- 둘이 국적이 다른데, 포르투갈과 브라질이 문화적으로 원래 친밀한가요?


아나: 저희는 같은 언어를 구사하긴 하는데, 포르투갈에서 쓰는 포르투칼어랑 브라질에서 쓰는 포르투칼어는 좀 달라서 익숙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처음에는 끔찍하게 서로를 못 알아들었어요. 같이 요리할 때 서로 등을 돌리고 있으면 다른 외국어처럼 들리는 거예요. 바르바라의 말이 제게는 너무 빨랐고 바르바라는 제가 악센트가 강하다고 했어요.



바르바라: 포르투갈과 브라질은 역사적인 갈등과 서로에 대한 차별이 심한 편인데 저희 세대부터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전 처음 포르투갈로 이사 올 때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대할까 봐 두려웠어요. 근데 직장 동료이자 지금은 절친한 사이가 된 아나와 나를 챙겨준 좋은 포르투갈 지인들을 만나며 긴장을 풀었죠.


* 브라질과 포르투갈과의 외교적 관계는 매우 친한 사이인데 브라질이 과거에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언어, 문화, 생활양식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1534년부터 1822년까지 브라질을 지배하였다


브라질과 포르투갈의 지도상 위치



- 다시 본 질문으로 돌아가서, 한국 식당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공부한 전공이 매우 다르네요!


바르바라: 맞아요. 저는 영화도 전공했고, 텔레비전 일도 해봤고, 정말 다양한 일을 많이 해봤어요. 그렇게 여러 가지를 했던 건 관심거리가 많기 때문이죠. 한국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하다가 아이디어가 샘솟듯이 나오는 걸 어떡해요. 이런 워크숍과 이벤트도 기획해 보자, 칵테일 레시피를 한 번 만들어보자, 체인점을 하나 더 내보자, 온도 디저트 카페도 열자, 온도 갤러리는 어떨까 등등. 하고픈 게 끊이질 않는걸요.


워크숍 공지 - 인스타그램


아나: 바르바라는 거짓말 안 치고 진심으로, 할 줄 아는 게 많아요! 노래도 잘하고 사진도 잘하고 배우는 것도 빨라요. 못하는 게 없어요. 언제는 새벽에 전화가 갑자기 온 거예요. 온도에서 메뉴를 만들다가 새롭게 떠오른 레시피에 대한 아이디어를 저한테 공유하려고요. 그때가 새벽 세 시였어요.


바르바라: 아나는 우리 중 가장 메인 셰프죠. 대부분의 요리를 아나가 관리해요. 없어서는 안 되죠. 아나는 아마 몇십 년 동안 지금 일만 해도 행복할걸요.


아나: 사실이에요.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작업은 오래 하면 지루하지만 그만큼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한국 음식과 Love and Hate 관계를 갖고 있어요. 김말이를 정말 좋아하는데 언제는 100개 이상을 만들어내야 했거든요. 이후 음식이 잘 나가며 150개까지 만들어야 하는 때도 있지요. 즐겁지만 고되니까 노동이겠죠.


일요일 오전 호떡을 만드는 온도 가족들



- 한국 음식과 포르투갈 음식이 많이 다르지 않나요?


아나: 그래서 많은 실험과 연구가 필요해요. 예를 들어 한국 음식은 맵기 때문에 덜 맵게 해야 하기도 하죠. 채식주의자가 많은 포르투갈 사람들을 고려해서 만두도 고기용, 채식용으로 나눠서 만들기도 해야 하죠(11월 신메뉴 출시 예정). 떡볶이에 어묵을 못 넣는 것도 같은 이유고요.



- '종업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가족과 주변의 시선은 어땠나요?


바르바라: '그렇게 많은 걸 공부했는데 내가 종업원이라니!'라는 생각을 먼저 했지요. 한 게 그렇게 많은데 웨이터라는 게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내 관심이 한국 음식이고, 이걸 만드는 게 난 재밌고, 이걸로 난 내 인생을 먹여 살리고 있는데 전혀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무엇보다 일을 하다 보니 점점 직업에 애정을 가지게 되며 처음 가졌던 마인드셋을 이겨낼 수 있었죠.


아나: 여기도 당연히 종업원에 대한 차별의 시선이 있지요. 웨이터라면 돈을 많이 못 벌겠구나, 실력이 별로 없어서 그 직업을 선택했구나, 생존은 할 수 있겠니, 등등 질문을 받기도 하죠. 그건 사회의 시선이고요. 제가 이 일을 좋아하는데 무슨 상관이겠어요. 일반적인 시선과 달리,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고된 작업이 들어가야 하는 건지 아는 사람들은 우리 일의 가치를 알아봅니다. 그런 분들이 제 음식을 알아봐 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가족들도 제 일을 응원하고요.


춤추면서 일하는 아나와 바르바라



- 앞으로 이 직업을 커리어에서 어떻게 가져갈 생각이세요? 계획이 있나요?


바르바라: 계획이 막 구체적으로 있진 않아요. 굳이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몇 년 온도 식당에서 일하다가 한국으로 영화 관련해서 석사를 따러 가는 것도 괜찮은 생각 같아요. 영화와 한국 음식을 결합해서 뭘 찍어낼 수도 있겠죠. 아니면 석사를 끝내고 돌아와서 온도 식당 종업원이 다시 되어 체인점을 차린다던가. 온도 커뮤니티를 만드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인생이 흘러가며 제 관심거리들을 합칠 순간들이 올 거라고 믿어요. 언니(한국인 주인아주머니를 부르는 그녀의 애칭)는 제가 무슨 선택을 하든 응원해 줄 거예요.


김말이


아나: 딱히 생각한 적이 없어요. 이게 제 커리어이고 직업이라 지금 매일이 행복하거든요. 커리어라고 이 직업을 취급하기보다는 음식을 만들며 '이 순간이 계속 지속되었으면 좋겠다'가 강해요. 그냥 최선을 다해서 더 맛있게 만들어내자는 생각뿐입니다. 앞으로 이 일을 20년을 계속해야 한다면 그것보다 행복할 수 없을 거예요. 여기서 일하는 내 모습 말고 다른 모습 상상이 잘 안 되네요.



- 당돌하고 자신감 넘치는 인터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바르바라: 목표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지금 순간이 좋고 행복하면 그만이죠. 굳이 가져야 하나요? 목표보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목표는 우리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지만, 모르겠다면 강요되지 않아도 되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싶은지를 알고 그에 따라 선택하는 거예요. 누군가의 위치가 부럽다, 그럼 비슷하게 따라 하려고 노력하면 나도 그 위치에 다다르게 되겠죠. 어렴풋이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아나: 목표가 없어서 한 동안 괴로웠어요 (웃음). 다들 가지라고 하는데 저는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모르겠는 거예요. 내 인생이 너무 소중해서 아무거나 정하기에 시간이 걸렸던 게 이유일 수도 있죠. 목표가 없다면 그냥 현재의 순간을 즐겨도 괜찮지 않을까요? 전 지금 너무 행복하거든요. 인생은 여러 형태로 아름다울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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