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사이 지구 전체가 스캔되고 있다
당신이 Google Maps로 길을 찾는 동안, 구글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 18억 개 건물을 추적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농부가 7일 후 홍수를 미리 알 수 있고, 우간다 시골 마을에 전기가 들어가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이게 단순한 지도 서비스일까? 절대 아니다. 구글은 지금 우주에서 지구를 읽는 새로운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우간다 시골 마을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정부 관리가 지도를 펼쳤지만 백지나 다름없었다. 건물들이 표시되지 않은 채로. 하지만 550km 상공에서는 구글의 AI가 이 모든 걸 보고 있었다.
구글이 개발한 Open Buildings 프로젝트의 핵심은 놀랍도록 단순하다. 흐릿한 위성사진만으로도 완벽한 건물 지도를 만드는 것. 어떻게 가능할까?
비밀은 '지식 전수' 기법에 있다. 마치 숙련된 의사가 인턴에게 진단법을 가르치는 것처럼 AI도 지식을 전수받는다. 마치 경험 많은 선생님이 초보 학생을 가르치듯이 작동한다. 먼저 '교사 AI'가 매우 선명한 고해상도 위성사진을 보고 건물을 정확히 찾는 법을 배운다. "이렇게 생긴 게 건물이야"라고 정답을 알려주는 식이다.
이 교사 AI는 초고해상도 위성사진(4K 화질 이상)을 보고 건물을 찾도록 엄청난 양의 데이터로 훈련받았다. 마치 20년 경력의 도시계획 전문가처럼 픽셀 하나하나를 보고 "여기는 건물, 여기는 나무, 여기는 도로"를 정확히 구별한다. 이 AI가 작동되려면 슈퍼컴퓨터급 성능이 필요하다.
그다음 '제자 AI'가 등장한다. 이건 스마트폰에서도 돌아갈 정도로 가볍다. 흐릿한 사진(Google Earth에서 보는 정도)만 봐도 작동한다. 핵심은 제자 AI가 선생님 AI의 '사고 과정'을 그대로 따라 배우는 것이다.
여기서 독특한 동작 방법이 등장한다. 선생님 AI는 "건물이다/아니다"라는 확실한 답만 주는 게 아니라, "85% 확률로 건물, 10% 확률로 그림자, 5% 확률로 도로"라는 확률적 판단을 제공한다. 마치 경험 많은 의사가 "이 증상은 감기일 가능성이 70%, 독감일 가능성이 25%, 기타 5%"라고 설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자 AI는 이런 미묘한 판단력까지 배운다.
더 놀라운 건 '시간 여행 기법'을 추가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위성은 같은 지역을 최대 32번 다른 시점에 촬영한다. 1월, 3월, 6월, 9월... 각각 태양 위치, 구름, 계절이 다르다.
AI는 이 시간 차이를 영리하게 이용한다. 1월 사진에서는 나무 그림자에 가려진 건물이 6월 사진에서는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또는 겨울에는 눈 때문에 보이지 않던 지붕이 여름에는 명확하게 보인다. AI는 이런 시간적 단서들을 퍼즐 조각처럼 맞춰서 "아, 여기 분명히 뭔가 있구나!"를 추론한다.
마치 탐정이 여러 시점의 증거를 종합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과 같다. 한 장의 사진으로는 애매했던 것들이 32장을 합치면 명확해진다.
결과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정확한 데이터다. 각 건물마다 GPS 좌표(위도/경도), 실제 면적(㎡), 건물 테두리 좌표들, 그리고 "이게 정말 건물일 확률 92%"같은 신뢰도까지 자동으로 계산된다. 개발자들이 앱에 바로 넣어서 쓸 수 있는 형태로.
우간다 Lamwo 지구에서는 이 기술로 에너지부와 협력해 마을 전력화가 필요한 지역을 정확히 분석했다. 상업 중심지 같은 중요 지역의 전력 공급 우선순위도 결정할 수 있게 됐다.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이 기술은 이제 방글라데시, 태국 등 동남아시아 16개국으로 확장됐다.
구글은 지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지구와 비슷한 디지털 쌍둥이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의 한 농부가 휴대폰으로 긴급 메시지를 받았다. "7일 후 홍수 예상, 지금 대피하라." 하늘은 맑고 강물도 평온한데, 어떻게 AI가 미래를 내다보는 걸까?
문제의 핵심은 격차였다. 최빈국의 절반이 홍수 등 재해에 대한 적절한 조기 경보 시스템이 없다. 측정 장비를 설치할 돈도, 인프라도 부족하다. 하지만 구글은 이 문제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핵심은 '가상 게이지' 기술이다. 실제 측정소가 없어도 위성이 강물 높이를 알아내는 것이다. 마치 의사가 환자 몸에 직접 손 대지 않고도 CT로 진단하는 것처럼.
위성은 550km 상공에서 강물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한다. 물이 탁해지면 색깔이 바뀌고, 수위가 높아지면 반사율이 달라진다. AI는 이런 신호를 읽어서 "아, 이 정도면 수위가 3m 정도구나!"를 추정한다.
여기에 시간 여행의 마법이 더해진다. AI는 과거의 패턴을 기억한다. 작년 같은 시기에는 어땠는지, 지난주 비가 온 후 강물이 어떻게 변했는지. 마치 경험 많은 어부가 구름의 모양만 봐도 내일 날씨를 아는 것처럼.
더 놀라운 건 '지식 전수' 방식이다. 센서가 많은 부유한 지역에서 학습한 AI가 센서 없는 가난한 지역에 자신의 지식을 전수한다. "이런 위성 신호 패턴은 홍수 전조야"라고 가르치는 식이다.
이 시스템은 현재 전 세계 80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만 2021년에 1억 건 이상의 경보를 발송했다. 아흐메드 같은 농부들이 7일 전에 미리 대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구글은 기상청이 되려는 게 아니라, 지구의 건강 상태를 실시간 진단하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구글은 왜 아프리카나 방글라데시같은 저자원국가에서 이런 실험을 할까? 단순히 좋은 일을 하기 위함일까? 답은 생각보다 전략적이고, 지속가능하다.
첫째, 데이터 부족 지역이 AI 성능 검증의 최적 환경이다. 기존 지도나 측정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 AI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어디서든 작동할 수 있다는 증명이 된다.
둘째, 문제가 명확하고 임팩트 측정이 가능하다. 홍수로 죽는 사람 수, 전기 없는 마을 수 같은 건 명확한 지표다. 기술의 사회적 가치를 증명하기 쉽다.
셋째, 확장성을 검증할 수 있다. 여기서 되면 어디서든 된다는 논리다.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성공한 기술들이 동남아시아, 남미로 확산되고 있다.
넷째, CSR을 넘어선 진정한 비즈니스 모델이 가능하다. 사회적 가치 창출과 장기적 수익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2018년 가나 아크라에 AI 연구센터를 설립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현지 연구진이 글로벌 팀과 협력해서 지역 특화 솔루션을 개발하는 체계를 만든 거다. 현지 중심 접근 방식이야말로 구글 전략의 핵심이다.
이제 구글의 진짜 야망이 보인다. 그들이 만들고 있는 건 단순한 지도 서비스가 아니다. 지구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로 만드는 것이다.
Google Earth Engine이 그 중심에 있다. 원래는 연구용으로 무료 제공됐지만, 2023년부터 상업용 유료 모델을 도입했다. 이게 구글의 장기 전략일 수도 있다. 전 세계 지리 정보를 구글 플랫폼에 종속시키는 것.
지금도 수많은 지리정보 서비스가 구글 API에 의존한다. 부동산 앱, 배달 앱, 내비게이션 서비스까지. 모든 위치 기반 서비스가 구글을 거쳐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미래는 더 상상을 초월한다. 스마트시티의 인프라 플랫폼이 될 것이고, 기후변화 대응의 글로벌 표준이 될 것이다. 우주에서 지구를 관리하는 운영체제 같은 역할까지 할 수도 있다.
앞으로는 더 개인화될 것이다. 내 집 화재 위험도를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AI가 최적 이사 시기를 추천하고, 개인 맞춤형 재해 대피 경로를 제공할 날이 머지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이 모든 데이터가 구글 하나에 집중되는 게 과연 안전할까? 우리는 구글이 만든 지구 인식 체계에 갇혀 사는 건 아닐까?
구글이 케냐에서 시작한 실험은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다. 지구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데이터로 세상을 읽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패러다임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케냐에서 어떤 다른 실험을 하고 있을까? 팔란티어는 또 어떤 방식으로 세상의 데이터를 읽고 있을까?
빅테크들의 경쟁은 정말 흥미롭다. 다음 화에서는, 팔란티어가 어떻게 데이터로 정부와 기업의 의사결정을 설계하며, 조정할 수 있는 프로덕트를 만들고 있는지 파악해보겠다.
이은빈
테크 PM. 글로벌 시장을 연구하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