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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M 퇴사하고 테크 공부하러 르완다로 갑니다

블록체인 잠시 안녕, 코이카 단기 프로젝트에 입사한 이유와 배운 것

by 이은빈

"왜 굳이 아프리카까지 가서 일해?"

한국에서도 할 일이 산더미인데 굳이 르완다까지 가야 하나 싶기도 하다.


내게는 세 가지 목표가 있었고, 이를 검증하려면 최전선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한국 청년들이 더 큰 그림을 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리콘밸리 아니면 국내 스타트업, 이 좁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저자원국가의 숨겨진 시장들을 봤으면 좋겠다. 아직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틈새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그 반대다. 저자원국가 친구들이 테크를 통해 가난에서 빠져나올 통로를 만드는 것. 학교나 정규 교육과정 없이도 독학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들. 개발도상국 개발자 한 명이 미국 회사와 원격근무를 하면 벌 수 있는 돈이 그 마을 전체의 생계를 바꿀 수 있다.


세 번째는 블록체인을 저자원국가 금융 시스템에 접목하는 일이다. IT 업계에서 쌓은 경험을 현장에서, 정말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회사를 찾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위해서는 한국과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에 각각 베이스가 필요했다. 사무소라기보다는 테크 커뮤니티와 깊게 연결될 수 있는 거점들을 만들어야했다. 또 이 꿈이 나를 위한 꿈이 확실한지 재고하기 위해서는 가서 경험을 해야했다. 인터넷 연결이 되어야 먹고 살 수 있는 내 직업이 오프라인이 주된 환경에서는 생존치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다. 내 능력치 또한 현실에서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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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전공에서 테크로 넘어오면서, 둘을 내 커리어에 결합할 방법을 찾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통하던 방법들이 인터넷 환경이 불안정하고 스마트폰 보급률이 낮은 곳에서도 먹힐까? 내가 그동안 쌓아온 테크 경험들이 과연 '실용적'일까? 이런 의문들에 답을 구하려면 직접 가봐야한다 확신했다.


르완다를 선택한건 코이카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유일하게 디지털적으로 아웃풋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ICT 정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한국이 디지털 부문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구글이 디지털 앰버서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기도 하다. 핀테크 인큐베이션이 활발하고 여러 디지털 결제 플랫폼들이 실험되고 있어서, 단순한 '후진국'이 아닌 디지털 전환의 현장이라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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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동부의 작은 국가 르완다


20일 코이카 합숙훈련을 받으면서 예상과 달랐던 점이 있었다. 생각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적 역량을 봉사자에게 요구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현지에서 정말 필요한건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그런 환경에 '노출'시켜주는 쪽에 가까웠다. 접해볼 기회가 없는 툴들을 가져다가 체험하게 하고, 그런 것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주는 것. 그래서 애초 계획을 수정해서 인근 직업학교까지 프로그램을 확장하기로 했다.


이번 주 PDM(Project Design Matrix) 작성하면서 팀원들과 논의한 내용들이 인상적이었다. 각 프로젝트마다 산출물과 성과지표, 검증지표를 짜야 하는데, 정작 현지 상황을 제대로 모른 상태에서 계획을 세우는게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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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AI 툴 활용 교육에 집중하기로 했다. 선생님들이 화학, 수학, 디자인, 기업가정신 등 각자 영역에서 쓸 수 있는 AI 툴들을 찾아주고, 국제적인 웹사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도구들 중에서 필요한 것들을 골라 쓰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에듀테크 제품들이나 르완다 내 교육 관련 스타트업들을 소개하고, 최신 교육 디지털 트렌드에 접근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주는 게 목표였다.




강원도 영월군에서 17일간 받은 코이카에서 받은 교육은 질이 굉장히 높았다. 안전 교육부터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 사용법, 공공문서 작성법까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보았다. '노션남매' 같은 외부강사까지 초빙되어 세 시간 동안 대화할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무엇보다 간식과 먹을 것이 끊임없이 제공되니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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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뵙게 되어서 너무나 영광이었던 '노션남매' 대표님


합숙훈련이 거의 끝나가고, 9월부터 내년 1월까지 출국을 앞두고 있다.


르완다에서의 경험이 단순한 봉사활동이 아니라, 내가 생각해온 것들을 현실에서 검증하고 더 구체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최전선에서 직접 부딪히면서 진짜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기술로 연결되는 세상, 숨어있는 기회들을 찾아내는 일, 정말 필요한 곳에 적절한 기술을 전하는 일. 이런 것들이 아프리카에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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