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 차이나타운에서 모스크 아잔 기도를 들으며
말레이시아의 첫인상은 굵고 강렬했다. 처음에 잡은 숙소가 불법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거리인 줄 모르고 예약했다. Central Market이라는 유명한 관광명소 근처에 있다 해서 안심했건만 어둡컴컴한 골목길에 있는지는 몰랐다. 그곳을 겁도 없이 드나들다 위험한 상황을 몇 번 마주했다. 노숙자가 백인 남성을 공격하거나 근처 식당에서 밥 먹다가 비위생적인 음식에 탈이 나는 등.
첫날에는 홍수 같은 비가 쏟아져 캐리어와 옷이 쫄딱 젖었다. 현지인들 언어로 '스콜'이라 부르는 이 비는 두 시간이 지나도 멈추지 않았다. 매일이 이럴까 봐 겁이 났다. 내 눈에 보이는 숙소 근처의 거리는 더럽기만 했고 썩은 냄새가 진동했으며 소형 파우치 크기만 한 쥐들이 지나다녔다. 게다가 남성들의 시선이 내게만 계속 꽂히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보통 한 나라에 도착하면 적응하기까지 3일이 걸린다. 태국에서 비행기로 1시간밖에 안 걸리는 이 나라가 마음에 들기 시작한 건 담배와 술이 공공장소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나서였다. 담배 냄새를 개인적으로 힘들어하고, 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이 국가의 보수주의가 나와 잘 맞는 듯했다. (와인은 제외한다. 와인을 좋아한다)
며칠 묵은 그 숙소는 마음에 안 들었지만 호스트와 사람들은 따뜻했다. 아랍 간식을 한 입 먹고 식중독에 걸려 하루 종일 방에서 앓은 날, 오후 늦게 파키스탄인인 호스트와 중국계 말레이 언니가 들어와 약과 음식을 건넸다. 하루 종일 내가 안 보여 걱정됐다는 것이다.
타지에서 혼자 아플 때 정말 서럽다. 재작년 서울 월세방에서 코로나 걸렸을 때 자가격리 오래 하던 때보다 더 힘들었다. 외롭다는 생각 할 틈도 없이 배가 아파서 몇 시간을 오열 중인데 음식과 약을 받으니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울지 말라며, 다 괜찮을 거라던 파키스탄 호스트가 내게 조언했다. "어려울 땐 혼자 앓는 거 아니에요. 이럴 때 주변 사람들한테 도움 요청하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하는지 은빈은 배워야겠어요."
차이나타운 근처에 머물게 된 나는 차이나타운에는 없는 게 없다는 걸 알았다. 여기는 내게 천국이다. 단식 날 해독주스를 찾다가 한약방에서 2500원 해독액을 찾았고, 사탕수수 음료, 코코넛 주스, 자른 망고 등 싸게 과일도 많이 찾아 먹었다. 천 원이 조금 넘는 일회용 목걸이도 찾았다. 점점 말레이시아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영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안다. 깊은 대화는 불가능해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으니 태국보다 거리 활보가 쉬웠다. 길을 물어보면 모두가 대답해줄 수 있으니 말이다. 구글맵에 나오지 않은 작업공간들도 많아서 걸어 다니기만 하면 비밀 카페와 식당을 찾을 수 있다. 이 얼마나 완벽한 공간인가.
다만 고민이 크게 되었던 부분이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차이나타운 근처에 머무니까 같은 현지 중국인처럼 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이 크게 빗나갔다. 내 옷차림의 어디가 외국인인 티가 나는 건지 계속 영어로 말을 걸고,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는지 궁금했다. 말을 걸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거리에서 내게 쏠리는 다수의 시선들이 불편했다. 특히 남성들의 시선이 심했다.
그래서 호스텔 거울 앞에서 내 옷차림을 점검했다. 내가 발견한 현지인과의 차이점은,
첫째, 마스크를 안 쓴다. 말레이시아는 마스크 규제가 법적으로 풀렸지만, 마스크를 안 쓰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은 관광객들밖에 없다. 나를 포함해서. 그러니 외국인으로 보일 수밖에.
둘째, 피부가 하얀 편이다. 화장품도 23호 짙은 파운데이션 컬러를 쓰는데 여기서는 피부가 하얀 편이라서 놀랐다. 특히 더운 나라인 이곳의 햇빛은 내 피부를 더 하얗게 보이게 만들더라.
셋째. 긴 검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다닌다. 이건 지극히 내 개인적인 견해인데, 대부분의 인도계 여성은 샤리를 머리 근처에 두르고, 중국계 여성들은 풀고 다녀도 내 길이만큼 기르진 않는 듯 보였다.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레이 인종의 여성은 머리카락 한 올 남김없이 히잡에 가리고 다닌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니 당연히 외국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결정적이라고 생각되는 네 번째 이유, 짧은 반바지를 입고 다녔다. 태국에서 자주 입고 다닌 반바지는 엉덩이 조금 밑까지의 허벅지 가리는 길이였다. 서양 관광객들처럼 나도 당당하게 입고 다녔다. 내 예쁜 라인의 다리가 훤히 드러나서 좋았고 몸매 관리를 잘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으니까.
말레이시아 거리 곳곳을 반바지를 입고 걷다가 늙은 인도계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비위생적인 패밀리 레스토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때 아차 싶었다. 히잡을 쓴 할머니와 전통 모자를 쓴 할아버지, 음식을 뜨던 그랩(Grab) 기사들, 밥 먹던 여자아기가 동시에 하던 일을 멈추고 지나가던 나를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그들의 시선이 너무 뜨겁게 느껴져서 괜히 바지 허리선을 밑으로 당겨야 했다. 노려보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신기하다는 눈빛이었다. 더 나아가 놀랍고 충격스럽다는 시선이었다.
반바지를 입은 수많은 관광객 중, 반바지를 입은 아시아인 중, 내가 그들에게 처음은 아니었을 거다. 다만 그들에게 익숙지 않은 무언가를 본 것이니 눈을 못 뗐을 거고, 그래서 그들이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 사실에 대해 불평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날 참 찝찝한 기분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말레이시아의 국교는 이슬람이다. 보수주의 성향이 강한 국가다. 나는 이 나라의 보수주의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서, 그 보수주의가 그들의 국교에서 왔음을 무시했던 것 같다.
그들의 종교를 존중한다는 뜻이기보단, 이 나라를 방문한 관광객으로서 예의를 최대한 지키고 싶었다. 나 같은 외국인들을 계속 반길 수 있도록, 현지인과 외국인이 건강한 교류를 해낼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은 이들이 불편할 거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게 옳아 보였다.
물론 말레이시아에 보수적인 공동체만 있는 건 아니다. 가장 보수적인 이들의 기준에 맞춰야 '안전'하다고 판단한 것이 크다. 되도록 모든 이들에게 수용 가능한 범위의 행위만을 지켜내는 것이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건강할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이곳이 내가 속한 공동체가 아니더라도, 오래 자리를 지켜온 다른 공동체에서 피해를 주거나, 그들의 관념을 자유롭게 변화시킬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 신분은 여행하러 온 관광객이 아닌가. 그래서 더 겸손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며칠 내내 불편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레 긴치마를 골라 입게 되었다. 그렇게 옷을 바꿔 입자 불편했던 남성들의 시선과, 늙은 어르신들의 혀를 차는 시선이 사라졌다. 내가 외국인처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시선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이제는 그저 상품을 팔기 원하는 상인들의 시선만이 자리할 뿐이다.
내가 기독교인이라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 적응을 못한다고 생각한 것도 컸다. 그게 아니었다. 이방인이 한 나라를 방문하여 이 나라가 나와 '맞다 안 맞다'를 판단하는 건 너무 오만하다. 문화와 관념과 가치관이 어떻든 서로가 편하도록 내 쪽에서 타협할 거리를 조금의 노력으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현지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