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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나는가 길러지는가

Issued by NEWLOOK Magazine


세계인의 축제, 스포츠 중에서 가장 많은 이들을 열광시키고 있는 월드컵이 한 창이다. 이 글이 읽혀질 때 즈음이면, 아마 올해의 월드컵 우승국가가 확정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4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월드컵에 매 번 치열한 지역예선을 거쳐 힘겹게 본선에 오르는 대한민국이 있어 자랑스럽기도 하고 축구를 통해 즐거움을 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의 Top player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언제쯤 그들과 진정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물론, 2002년 한일월드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떻게 저렇게 잘할 수 있었을까, 정말 대단한 한 때를 떠올려보기도 하지만...


이번 호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축구를 통해 생각해 본 개인 역량의 선천성과 후천적 개발가능성을 고민해 보고자 한다. 여기서 더 넓게 나아간다면, 개인 역량이 모여 조직역량에 대해 고민해 볼 수도 있고, 결국 조직역량은 그 집단과 더 나아가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차이에 대해 답을 얻을 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 고민의 수준이 미칠지 어려운 숙제이지만, 이번호에서는 선천적인 재능의 후천적 개발가능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역량(力量)은 기량(技倆),소질(素質),재능(才能),실력(實力),능력(能力)이 아마 비슷한 동의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역량은 타고난 것과 길러진 것이 있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축구라는 스포츠에서 타고난 것은 신체적인 조건이다. 체격, 순발력, 판단력, 지구력, 정신력이 그 것이고, 그 지역의 지리, 기후, 풍토, 경제력, 관심도, 음식, 문화수준 등이 후천적으로 영향을 발휘할 것이다. 물론 타고난 것도 후천적으로 개발될 수 있고, 후천적인 문화도 결국 선천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객관적인 축구 역량은 각 국가별 A매치 성적과 대회의 경기 결과를 포인트로 환산해 매달 발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지표인 FIFA Ranking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57위이다. 매달 발표하기에 순위의 변동폭이 크지는 않고, 국가의 실력을 비교하기에 무리가 없다. 이 순위로 미루어 볼 때 대한민국은 축구를 그닥 잘 하지 못하는 나라이다. 역량에 비추어 보면, 타고난 신체적인 조건과 길러질 수 있는 후천적인 환경도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말이 된다. 물론 2002년과 같이 주최국의 장점이 크게 작용하고, 지표로는 환산할 수 없는 정신력이 가미되어 기적과 같은 결과를 연출할 수도 있지만, 지속적이지 않는 일회성의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회성이었지만, 우리나라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고, 이것은 분명 우리의 역량과 기량도 개발될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굉장히 어렵다는 점이다. 그 때의 영광스러운 전사들이 영원하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하며,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적인 조건과 후천적으로 역량을 개발시킬 수 있는 환경이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1930년에 첫 월드컵이 개최되고 84년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나라는 이에는 못 미치는 1954년 첫 출전이후 86년부터 8회연속 본선 진출했다. 24년 늦게 출발한 셈이다. 후발주자의 어려움, 선천적인 역량의 부족, 역량개발이 가능한 환경의 부재 등이 작용하여 지금의 대한민국의 수준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역량이라는 것은 타고 나는 것인가, 길러 지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축구를 볼 때 개인 역량이라는 것은 타고 나는 것이 크다. 물론 조직 역량은 길러지겠지만, 개인적인 역량은 타고 나는 것이 크다고 보여 진다. 선천적인 신체적인 조건의 차이가 개인역량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감각적인 슛팅 능력, 패스를 해야하는지, 드리블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판단력, 경기전체를 볼 수 있는 넓은 시야, 상대를 압도하는 경기 운영은 후천적으로 길러지기 보다는 선천적인 소질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 난다. 그리고 이러한 소질을 가진 자가 후천적으로 더 길러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타고난 천재적 재능을 가진 연주자가 피나는 훈련을 통한 후천적인 개발로 세계적인 연주가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요약해 보면, 역량수준과 역량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천부적 소질을 가진 자를 발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이런 자를 지속적으로 개발시킬 수 있는 환경과 관심이다. 역량의 지속성장가능성은 바로 관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축구를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러한 역량을 가진 자를 발견하는 것과 발견된 자가 가진 역량을 지속 개발해 주는 것에 대한 관심의 부재 때문이다. 타고난 역량과 길러진 역량에 대한 결과적인 답은 이번 호의 마지막 질문으로 갈음해 보고자 한다. 과연 우리나라 국민은 K리그를 1년에 몇 번 관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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