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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호칭

모든 사람은 저마다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부모님이 주셨든지 아니면 누군가가 불러주었든 각 개인에게는 매우 특별하다.


나의 이름은 부모님께서 지어 주셨고, 내 이름은  나와 나의 부모형제에게는 매우 특별하고, 내 아내의 이름 역시 그의 부모님께서 지어주셔서 매우 특별함에 틀림없다. 내 딸의 이름 역시 부모인 내가 지었고, 나에게나 딸에게나 특별한 것은 마찬가지고, 누구나 동일하지 않을까 싶다.


근데, 신기한 것은 어른이 되면 아무도 자기 이름을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특별한 이름을 제쳐두고 왜 다른 호칭으로 불리는 것을 선호하는 걸까? 굳이 선호가 아니더라도 불려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특별한 이름인데 말이다.


OO아빠, OO엄마, O과장, O부장, O선생님,....


우리는 언젠가부터 이름이 아닌 호칭으로 통하게 된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이름보다는 사회적 호칭, 지위에 따라 자연스럽게 불려진다. 유교적 문화, 전통, 그 어떤 이유에서건 어느 순간 우리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이름 부르는 것을 어색하게, 불편하게 생각한다. 특히 윗사람에게는 이름을 부를 수가 없게 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고 모두가 그렇게 익숙해 졌는데 또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저런 이슈와 부작용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창의와 자율이 중요해지고 있는데 기존의 문화에서는 수직적 위계문화에 따라 경직성이 높아지는 단점이 부각되고 있다.


사회문화적으로도 서구 문화가 급속도로 일반화되고 있고 영어권 사회의 경험이 중요해지면서 과거보다 많이 다른 문화가 조직사회를 중심으로 퍼져나고 있다. 일례로 국내 대기업에서 파격적 인사실험으로 호칭파괴, 직급파괴를 통한 수평적 조직문화 확산, 역할에 따른 인사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LG그룹, 삼성전자, 현대카드, SK, CJ 등 국내의 대기업이 주도적으로 호칭파괴에 앞장 서 이름+님을 쓰거나 영어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이유가 있겠지만 이름을 자연스럽게 부르지 못하는, 호칭에 부여되어 혹은 새로운 조직문화로 가기 위해 조직내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말 사회가 많이 바뀌었다. 발전의 속도, 의식과 가치관의 속도도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관행과 형식보다는 효율과 실질이 중요해졌고, 권위의 타파, 격식의 철폐를 사회 곳곳에서 하고 있고 불필요한 문화가 많이 사라지고 있음이 틀림없다.


호칭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애칭, 별칭을 쓰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또한 아무 의미도 부여하지 않고 그냥 이름보다 호칭을 쓰는 것이 편해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일 수도 있고, 존경의 의미를 담아 호칭을 쓸 수도 있다. 호칭을 통해 사회적 지위와 위치를 은연중에 드러낼 수도 있고 호칭이 주는 정서적 안정과 인정의 의미도 있다.


기존의 호칭중심의 사회에서 호칭을 씀으로 주는 편익과 효익은 무엇인지, 호칭에 역할의미를 부여해 무의식 중에 경직된 사고를 하는 건 아닌지, 나의 이름은 언제 어느 때 누가 불러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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