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기하게도 그림에 푹빠져 있다. 그림 중에서 데생이 맞을 거 같다. 아니 장 자끄 상뻬에 빠져 있는 게 정확할 거 같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뭔가 모를 추억에 잠기고 생각이 많아진다. 보통 어떤 글을 보면 글쓴이의 생각과 경험, 가치관, 좀 더 나아가면 인생관을 알게된다. 그림이나 음악도 마찬 가지인 듯하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의 인생과 사회현실 혹은 사회비판, 지향점을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아직은 무엇을 의도하는지 모른는 게 대다수지만 말이다.
상뻬는 1960년 '꼬마 니꼴라'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프랑스가 낳은 매우 걸출한 작가다. 1932년생이니 28세에 빛을 보게 된 행운을 얻었다. 그 이후 지속적인 작품활동에 힘입어 1978년 미국 뉴욕의 부름을 받는다. 46세에 뉴욕으로 진출한다. 'New Yorker'라는 주간지의 주요기고가이자 1면을 장식하는 이로 말이다. 30년간의 작품이 '뉴욕의 상뻬'에 담겨 있다.
상뻬 그림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느낌이란게 있다. 상상이 어떻게 이미지로 되는지, 생각이 얼마나 자유로울수 있는지, 그 자유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림을 배우는 것보다도 상상하며 그릴 수 있는 재능, 생각이 중요한 것 같다.
뉴욕의 상뻬에서 충격받은 내용이 있다. 뉴욕커의 작가로 작품활동은 그 누구의 구속도 없이 자유롭게 하나, 한 사람(New Yorker의 숀 사장)을 만족시켜야 하며 그 한 사람이 만족할 때까지 수정작업을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재능을 넘어선 일상의 태도가 정말 중요함을...
'40세가 넘은 프랑스 제1의 예술가조차 이럴 수 있구나'
그리고 지금까지 30년 넘게 한 곳에서 작업을 해왔다. 자유로운 영혼이 말이다. 그리고 본인이 그린 일면의 삽화에 있어 '채택되고 발간되고, 안되는 기준이랄까?'이런게 뭔지 아직 잘 모른다한다. 그게 바로 'New Yorker'의 특징이다. 설명은 못하겠지만 누구나 다 아는 그런 느낌....
그림 속의 세계, 표현하고자 하는 무엇, 상상 속의 일상, 일상의 자유, 삶의 긍정, 희망, 나와 우리를 상뻬의 그림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냥 느끼며 상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