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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Issued by 중앙일보 20070926


최근 학력 위조 사건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를 보면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소설 주인공의 대단한(?) 권력은 사실 감춰진 거짓과 상대방에 대한 기만에 불과한 쇼였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똑같이 드러나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예술계의 경우 학력 위조 사건의 주인공들도 대부분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큰 교훈과 반성의 기회를 갖게 됐다.


과연 이 문제가 개인의 문제일까, 아니면 사회적 검증 체제의 부재로 인한 문제일까. 무엇부터 문제인지는 다각도로 생각해볼 수 있지만, 우선은 조선시대의 사대주의(주체성 없이 세력이 큰 나라나 세력권에 붙어 그 존립을 유지하려는 주의)가 현대까지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미국 박사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반응, 그런 학위만 있으면 실력을 그대로 믿는 사회적 관념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개인이 그런 기만 행위를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둘째는 학력 위조가 대학교수 임용으로 이어지는 마당에 다른 기관들의 실정은 어떨까 하는 의혹이 생긴다. 이것은 검증 체제와 검증 방법이 애초부터 잘못됐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신정아씨 사건으로 사퇴한 청와대 정책실장 변양균씨와 신씨는 부적절한(?) 관계란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미국에서도 명문 중의 명문인 예일대의 박사 학위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을까. 그런데도 신씨가 제출한 서류를 그대로 믿고 대학 교수로 임용하는 검증 체제와 검증 방법에 원초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주인공은 비극적인, 아니 안타까운 결말을 맞는다. 학력 위조 사건으로 얼룩진 개인들은 잠적하거나, 개인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칩거해 버렸다. 그들의 잘못, 우리 사회의 잘못이다. 안타깝다. 그 여파로 한동안 우리 사회는 검증 문제로 떠들썩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사회,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02&Total_ID=2894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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