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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내가 요리하는 이유

일상을 요리하다

난 세 자녀의 아빠다. 2016년 셋째가 태어날 무렵, 난 회사에 한 달 간 휴가를 냈다. 모두가 놀랐다. 그 당시 난 국내 대기업의 본사 인사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인사업무상 가장 바쁜 연말연시에 한 달 휴가를 냈다. 셋째가 12월29일에 태어났으니, 내 휴가 일정은 바쁜일정으로 뒤로 미루거나 앞으로 당길 수 있는 그런, 절대 협상이 가능한 부분이 아니었다. 당시 나의 상사는 난색을 표하면서 그 일정에 가는 대신 재택근무를 권했다. 그렇게 나는 한 달 휴가를 쓰게 되었다. 혹자는 '가능한 일인가?' 또 다른 이는 '제정신인가?', 또 누군가는 나에게 엄지척했다.


휴가를 낸 이유는 당연히 내가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인, 첫째와 둘째를 보살피기 위함이었다. 사람마다 일의 목적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족부양, 생계유지가 가장 큰 이유이다. 나도 그렇다. 뭔가 거창한 나의 자아실현이라거나 일의 성취는 미안하지만 제1의 목적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다. 그 목적에 충실히 생각해 휴가를 냈고, 그것이 내가 직장생활하면서 가장 잘한 일이다.


내가 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를 늘 뒤로한채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한 채, 원래의 목적은 잊혀져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은 없고, 빈 껍데기만 만들어 주는 그런 아빠라는 사실이 나를 꽤 오랜시간동안 날 힘들게 했다.


어쨌든 한 달 휴가를 시작하면서 아내는 친정집인 대구로 내려갔고, 셋째 출산 준비와 출산 후 산후조리까지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난 우리집에서 첫째와 둘째의 등하교를 책임지고, 삼시 세끼를 내 손으로 다 해결해 주기 위해 그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


그 기간동안 난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주고 싶었다. 짧은 시간일 수 있고, 평소에 더 잘하면 될 거 아니야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난 시간동안 너무 일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었는지, 내가 아빠로서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스스로 반성도 하고 반문도 하고, 그렇게 나의 휴가는 시작되었다.   

보통 우리의 가장 친밀한 관계, 가장 가까운 사람인 가족을 우리는 식구(食口) 혹은 식솔(食率)이라고 한다. 함께 먹는 사람, 한 집에 같이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그렇게 부르고, 개인적으로 난 식구라는 단어가 참 정겹다. 식구, 정말 좋다.


우리가 사실 잘 못느끼겠지만 함께 먹는 관계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같이 먹는 것에서부터 친밀함이 시작되고, 함께 먹음으로서 우리의 관계는 형성되고 발전한다. 함께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선 함께하는 일상의 즐거움 그 이상이다.


그런 의미를 스스로 깨달으면서, 아이들과 함께 먹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삼시세끼를 다 내 손으로 해 먹이고 싶었다. 이왕이면 맛있게 말이다. 사실 만들어 주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한 번도 요리를 제대로 해 본 적도, 배우지도 배울 생각도 못했다. 이곳저곳 레시피를 뒤지고, 블로그를 찾고 하면서 요리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미역국, 콩나물국, 볶음밥, 카레, 짜장, 소고기 등 식단을 짜기 시작했고, 가급적 적은 양을 하면서 세끼의 식단을 다르게 가져갔다.


그렇게 나의 요리의 일상이 시작되었다. 레시피를 가지고 그대로 하기 시작했고, 나만의 레시피가 나오기도 했다. 맛이 정말 맛있게 되기도 했고, 뿌듯하고, 기쁘기도 했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고, 맛있다고 엄지척을 하는 날이면 나 역시 너무 만족스러웠다.


나의 요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주기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 추억의 선물이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요리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요리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지금은 꽤 잘하는 요리가 몇 개 있다. 먹으면서 정이 생기고, 서로의 기호도 알게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기억이 점점 증가한다.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이 고맙고, 그런 음식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친밀도를 높인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억도 공유되고 좋은 추억으로 오래 남게 된다.


사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함께 먹으면서 가장 친해지고, 서로를 느낄 수 있는 공감을 배운다.


그렇게 우리는 요리로 우리의 일상을 기억하고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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