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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Sep 12. 2022

나의 사랑스러운 작은 사람들

열일곱 명의 에너자이저들을 소개합니다

“꽃 선생님이다~~!!”

“선생님~오늘은 무슨 꽃이에요?”


  오늘도 유치원 문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순식간에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질문세례를 받고 말았다. 아이들은 내 허리춤에 올망졸망 모여서서는 내 손에 들린 커다란 수업 재료 가방 안을 고개를 쭉 빼고 들여다본다. 그 모습이 마치 간식을 받아먹으러 온 강아지들처럼 마냥 귀여워서 나는 오히려 짓궂게 대답한다.

“글쎄~오늘은 무슨 꽃일까 아? 비밀이지 롱~”

내 목소리는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한 옥타브쯤 끌어올려진 하이 톤이다.


   꽃 선생님.. 언제 들어도 참 기분 좋은 호칭이다. 아이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처음부터 나를 그렇게 불렀다. 나는 아이들이 나를 “꽃 선 생니임~” 하고 부를 때마다 내가 왠지 꽃처럼 예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마음이 설렌다.


  내일부터는 추석 명절을 앞둔 긴 연휴가 시작되므로 오늘 수업의 주제는 <고향>이다. 고향… 그 단어는 늘 내게 드보르작의 음악 <Going Home>을 떠오르게 한다.

체코의 작은 마을에서 오랜 시간 무명 작곡가로 살아오다 마흔이 넘어서야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드보르작은 훗날 미국에서 활동하게 되는데 처음 본 거대한 나라에서의 낯선 경험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교항곡 9번 <신세계에서>를 작곡하게 된다. 그중 2악장 ‘라르고’는 고향을 향한 그의 그리운 마음이 담긴 아름답고 구슬픈 선율로 훗날 그의 제자가 그 주제에 가사를 붙여서 만든 곡이 바로 <Going Home>이다.


  아마도 아이들에게는 ‘고향’이라는 단어는 별 감흥이 없을 것이므로 나는 아이들에게  추석에 누가 가장 보고 싶은지 물어보았다. 아이들은 서로 앞다투어 할머니, 할아버지, 사촌 누나, 형아 등등 다양한 식구들을 호명하기 시작했고 또 어떤 아이들은 ‘나는 이미 할머니랑 같이 살고 있어서 별로 보고 싶지 않다’ 고 대답해서 나를 웃게 만들기도 했다.

시끌벅적 대화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 나는 체코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살던 작곡가 아저씨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고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게 된 그 아저씨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라는 물음표를 남기며 드디어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처음부터 슬픈 선율이 흐르자 여느 때와 달리 아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때 한 아이가 슬픈 목소리로 하는 말,

“나..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

아~! 나는 그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감정의 표현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마음속 어딘가 깊은 곳을 건드리는 구슬픈 멜로디에 아이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을 테고 동시에 그 마음을 달래줄 유일한 사람인 ‘엄마’를 떠올렸을 것이다. ‘슬프다’ ‘기쁘다’라는 정리된 감정의 표현이 아닌 내 몸과 마음이 느끼는 그대로 표현할 줄 아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 나는 드보르작의 음악보다도 몇 배는 더 찐한 감동을 받았다.


“오늘은 내가 선생님 찍어줄게요~”

수업을 마치고 늘 내가 아이들의 사진을 기념으로 찍어주는데 오늘은 일곱 살 여자 아이가 역으로 나를 찍어주겠다고 했다.

“정말? 고마워~~”

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구부리고 허리를 숙인 채 카메라 렌즈를 향해 웃으며 손가락으로는 브이를 그렸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문득 생각나서 휴대폰의 앨범을 열어보았다. 환하게 웃는 내 모습이 그 속에 담겨 있었다. 늘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어야지..라고만 생각했지 나도 아이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일주일에 한 번, 40여분의 수업 시간 동안 함께 음악을 듣고 꽃을 만지는 이 시간을 통해 나의 작은 사람들이 더 많이 울고 웃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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