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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Sep 27. 2022

소심한 완벽주의자

대범한 데충주의자를 꿈꾸며

   오늘 아침에도 알람이 울리기 전 나는 이미 깨어있었다. 매일 아침 알람이 나를 깨우는 것이 아니라 늘 내가 먼저 일어나 알람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대체 이럴 거면 뭐하러 알람을 설정해 두는 걸까..?’라고 생각하며 나는 겨우 서있을 힘만 남아있는 것 같은 내 몸을 억지러 일으켜 멍하니 서서 양치를 한다.

샤워를 하고 조금 정신이 들자 내 머릿속은 이내 오늘 하루의 스케줄을 훑으며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긴장의 모드로 돌아왔다는 것은 오늘 하루가 시작했다는 뜻. ‘아이들 등교시키면 여덟 시 반. 꽃시장으로 출발. 다시 작업실로 돌아오면 1시쯤. 점심은 늘 가던 도시락집. 2시 반까지 도시락을 먹으며 작업. 세시에 유치원으로 출발하여 네시 도착. 두타 임의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여섯 시 반 수영장에 들러 막내 픽업. 집에 오면 일곱 시. 저녁은… 그때 해서 언제 먹나. 그냥 오는 길에 뭘 좀 사 오자’ 등등

아직 오늘 하루를 시작도 안 했는데 머릿속에 빠르게 스캔되어가는 오늘 하루의 일정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지쳐온다. 간단한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말리는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또 한 번 오늘 하루 일정을 시뮬레이션하고 난 뒤 드디어 실행에 들어간다.


“얘들아~일어나! 여덟 시야!!!”


   나는 철저하게 계획형 인간이다. 늘 잠들기 전 다음날 해야 할 일들을 수첩에 적어두고 그것도 모자라 잠들기 전까지 반복해서 떠올리는.. 한마디로 피곤한 스타일이다. 이런 나이기에 다양한 사람들 앞에서 음악과 꽃 수업을 진행할 때면 제법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같은 레퍼토리의 수업일지라도 매 수업마다 ppt와 음향 체크, 꽃의 컨디션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반복해서 체크해야 하고 또 내가 원하는 수업 콘셉트에 맞는 화기와 꽃등을 찾아 몇 군데의 꽃시장을 투어 하는 일정까지 소화하려면 수업이 있는 날이나 없는 날이나 나의 머릿속은 늘 풀가동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잠시 커피를 마시며 수첩을 들여다보다(또!) 나는 생각한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오늘은 그냥 오늘만을 살고 싶다고.

어떤 일이든 미리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닥치면 해결하면서 살고 싶다고.


  어제는 초등학교 6학년인 큰 딸이 학원에서 레벨 테스트를 보는 날이었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 원하는 반으로 레벨 업을 하기 위해 그동안 열심히 노력하며 준비해 왔던 터라 시험 당일 나는 아이가 혹여나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눈치를 살폈는데 웬걸.. 아이는 시험을 보러 가기 십분 전까지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보며 깔깔거리다 아무렇지 않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 당당히 원하는 반에 입성했다.

‘얘 뭐지..?’

어렸을 적부터 시험이나 큰 일을 앞두면 꼭 위에 탈이나 거나 전날 밤 잠을 설쳤던 나와는 너무나 다른 성향을 가진 내 딸이 나는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닮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이런 사람의 머릿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진심으로 궁금할 뿐!


  나도 쿨하게 일과 삶을 분리할 줄 알며 원할 때는 언제든지 나의 브레인의 오프 스위치를 작동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하지만 사십여 년을 그렇게 살아온 나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더구나 여자 나이 사십대면 한창 사람 노릇 하느라 바쁜 나이 아닌가.. 

아직 손이 가는 아이들 뒷바라지하랴 또 연로하신 그래서 이제는 나의 도움이 필요하기 시작한 부모님들 대소사에 참여하는 것까지.. 날마다 나를 대신할 에이아이라도 하나 갖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시간들 속에서 나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그런 나를 받아들이고 보듬어 주고 싶다. 바쁜 하루하루 속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불쌍한(?) 나에게 작은 ‘쉼’을 자주 주어야겠다. 정신없는 스케줄 가운데 일부러 찾아 먹는 따뜻한 한 끼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맛있는 커피 타임. 피곤하고 스트레스받을 때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에 미소 지을 수 있는 달달함의 시간들을 찾아내어 틈틈이 나를 위로해야겠다. 

그렇게 재정비된 나는 또 하루에도 몇 번씩 수첩을 들여다보며 소심한 완벽주의자로 살아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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